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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May 04. 2020

그날의 사건과 글로컬 도시재생공간 MM

[마르쉐 영국연수기_14]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 1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사실은 GC 마켓에 가던 날 아침, 큰 사건이 있었다. 무사히 런던에서 4일차에 접어들며 시차에도 숙소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착각이 들 즈음이었다. 사실 연수 끝날 때까지 적응은 안됐는데 말이죠. 그날도 하루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일찌감치 나설 준비를 했고, 숙소에서는 간단한 아침을 먹기도 여의치 않아 일행 중 촬영작가를 포함한 2명은 먼저 나가 지하철역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했다. 


그리하야 아무도 틀린 적이 없다는 슬픈 예감조차 들지 않았던 그날 아침, 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담배를 든 그 둘은 소확행의 기분을 누리고 있었다는데… 낯선 사람이 다가와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해서 라이터를 잠깐 건내주었다가 돌려받고 나서 30초 후, 촬영작가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로 왔다 갔다 미친듯이 뛰고 있는 그를 눈으로 쫓으며, 운동이라기엔 너무 과도한데 왜저러나 싶던 차에 그가 돌아와서 말했다. 발 밑에 내려놨던 가방이. 설마? 없어졌다고. 커헉! 카메라 가방이라고! 꽈과광! 이번 연수 영상 촬영을 위해 새로 산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장비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고! 꽈아가갸가가각!!! 라이터 빌린 사람들이 가져간 것 같다고… 꾸아아어엉엉컥… 


순식간에 사건이 발생한 뒤 일행이 모두 카페에 도착했다. 일단 카페 점원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CCTV도 없고 이런 도난 사건이 워낙에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 안됐지만 되찾는 건 포기하란다. 말그대로 얼이 빠진 촬영작가와 함께 이번 연수에 초대된 연구자 선생님이 일행 중 영어가 가능하고 런던에 후배도 산다는 이유로 차출되었고, 우리중 제일 야무진 친구도 차출되어 경찰서로 간 후 나머지들은 망연자실 예정된 마켓으로 이동했다. 그럴 때 가장 하면 안되는 말이지만, 늘 섣불리 내뱉게 되는 말, ‘그러게, 왜 먼저 나갔어’ 등을 소심하게 주워삼기며... 

정 들뻔한 핀즈베리파크 Finsbury Park 

경찰서에서는 유리벽 뒤에서 접수를 받았다는데, 이 동네에서 도난 신고는 처음이라며 담당 경찰이 놀랐다는 것에 일행도 너무 놀랐다. 도난 관련 보험비라도 처리하게 서류를 좀 달라니까 본인은 접수만 해놓은 상태고 아직 정식으로 처리된 서류가 아니기에 절대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2~3주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해서, 그 때쯤이면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있을 일행은 또 한번 놀랐다. 서류가 접수되면 소송이 걸리는 거고 범인을 잡아서 처벌하려면 우리가 법정에 출두해서 증언해야 하는데 그럴수 있냐길래 단호히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담당 경찰이 다시 놀랐다. 어쨌든 접수하려면 영국 내 연락처를 달라고 해서 결국 연구자 선생님의 후배가 런던에 산다는 이유로 연락처를 제공하게 되면서, 난데없이 그 후배님도 놀라셨겠지... 최소한 보험비라도 일부 받으려고 했던 노력은 놀라움의 연속으로 이렇게 그냥 끝나는가 싶었다. 


끝난게 아니었다. 소풍가서 보물찾기가 끝나고 몇달 후에 발견된 너덜너덜한 보물쪽지들처럼 너덜한 놀라움들이 이어졌다. 연수가 끝나기 직전, 며칠간 농장 답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우편으로 편지가 와있었다. 타지에서 받은 영어로 가득한 문서에 약간 겁을 먹었는데, 경찰서에서 온 서류였다. 현재 범인을 열심히 찾고 있고 유사 사건들을 모아 합동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찾지는 못했다고, 관내 CCTV도 확인했으나 흐려서 확인이 불가하다고, 진행 상황은 계속 전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와! 생각보다 열심히 해주고 있잖아!? 우리는 이 서류에 희망을 가지고 보험사에 문의를 했는데, 그 서류로도 보험 청구는 안된다고 했다. 아니, 왜?! 놀라기도 지쳤다. 그것만으로는 도난의 증거가 안된다는 거였다. 경찰서에서 도난품이나 범인을 잡아야 증거가 된다는 건데, 아니 그럼 도난 보험을 도대체 왜 드냐고요… 어쨌거나 우리도, 경찰도, (의심스럽지만) 보험사도 모두 최선을 다했으나 찾지도 못하고 보상금도 못받았다. 그렇게 새 카메라는 가방째로 런던에 남겨졌다.


유독 스산하게 찍힌 사건현장. 

아, 그 숙소에는 계속 경찰서의 편지가 가고 있으려나…? 복도의 지독한 냄새와 현관문의 움푹한 자국들과 침대 뒤 오래된 때 등 모든 것이 십시일반 괴기했던 그 숙소의 미스터리에 한 숟가락 보탰군... 허름한 프랜차이즈이긴 했으나 역 앞 모퉁이에 있던 그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풍경이 아름다워보였고, 그런 여유로움에 대한 로망이 이 사건의 시작이었다는게 아픔이 좀 가신 뒤 내부 취조(?) 과정에서 밝혀졌다. 범인들은 3인 1조로 접근한 것으로 추정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진술에 더해달라며.. 


맞다. 사실 낯선 도시에서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까페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여행이 주는 기쁨 혹은 사치 중 하나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시간을 잠깐이나마 누리는 것이 여러날의 집단생활 중에는 꼭 필요하다. 우리는 그에 동의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는 여유를 가지되 경계심도 꼭 필요하다는 것 또한 뼈때리는 아픔을 동반하며 되새김했다. 몇달이 지났지만, 그때도 아프고 지금도 아프다.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그래서 이 곳 이후로는 작은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TMI를 전하기 위한 것! 이제 갑니다.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 Mercato Metropolitano (이하 MM) 로!

www.mercatometropolitano.com

사전에 미팅 약속을 잡을 때부터 MM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공식 문의처로 문의를 했더니 한국 단체들과의 미팅 약속을 대신 조율해주는, 이들과 연결된 한국 내 조직도 있었다. 먹거리를 테마로 한 글로컬 도시재생의 성공적 모델로 핫한 공간이라니, 먹거리 시장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보고 오자며 잡은 일정이었다. 


우리는 건물 입구에서 MM의 수석개발자 알레씨오 Alessio Giorgetti 와 만났다. 입구에서는 건장한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음료수병 등 가방 속의 플라스틱 제품들을 다 입구의 사물함에 맡기고 들어가게 했다. 이는 테러에 대한 안전 대책이기도 하겠으나 MM의 공간은 플라스틱프리 구역으로 특히 대형기업의 플라스틱 제품들이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부의 판매부스들에서도 극히 일부의, 치즈 비닐 포장 등 대체할 수 없는 몇가지 빼고는 플라스틱이 하나도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판매제품 부터 포장 용기, 조리도구까지 모든 것에서 말이다. 경호원들이 지켜보니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우리도 사물함에 물품을 맡기고 입구로 들어갔다. 

좀 삭막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거리와 달리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다른 세상처럼 아기자기한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붐볐다. MM은  소외된 지역에서 20년동안 버려졌던 종이공장을 재생하여 작은 숍들이 촘촘히 들어서게 하고 나무와 식물들을 심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방치되었던 공간이라 쓰레기를 치우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다고 하니,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된 것 맞다. 공간을 재생할 때에도 이곳에서 나온 재활용 건축자재들로 리모델링을 했고, 현재 100여 개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MM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다. 2015년 밀라노 세계 엑스포의 파일럿 프로젝트로 이탈리아의 유휴 기차역에 자리를 잡고 시작하여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큰  매출을 얻었고, 이 성공을 바탕으로 2016년 런던에도 MM London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대기업/다국적 기업 제품은 판매하지 않고 소농과 로컬 생산자를 지원하는 푸드마켓 이외에도 체육관, 커뮤니티 오피스, 도시 텃밭, 팝업 호텔, 먹거리 구조 개선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 생산과 연구를 담당하는 독립 싱크탱크 ‘The Farmm’ 등 다양한 문화 기획과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글로컬 도시재생을 지향하는 문화 공간이다. 이 공간을 통해 먹거리 생산, 소비, 분배의 구조에 지속가능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알레씨오는 먼저 공간을 둘러보고 이야기 나누자며 앞장 섰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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