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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May 14. 2023

배드민턴합시다. 나랑, 같이.

이러다 골로 갈지도 몰라

“다음 주부터 매주 두 번 월, 수 이렇게 가족 배드민턴의 날로 정해. 저녁 일찍 먹고 운동하러 가자!”


역시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 선수인 나에게나 나올 법한 즉흥적이면서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계획되시겠다. 아들은 물개박수, 신랑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마음 반반인 표정으로 “그렇게 해”하고 일단 찬성표를 던져주었다.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배드민턴부 출신이라고!! 하며 니들 다 죽었어! 하는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런데 왜 월요일과 수요일이지? 다른 날은?

아이가 수학 학원을 가는 화, 목, 금은 제외.

금요일에 철야 예배를 가야 하기에 금요일도 제외.

주말은 나도 좀 쉬자 싶어 제외. 그렇게 제외시키고 나니 남은 날이 월요일, 수요일이었다. 중간에 하루 정도 쉬고 나면 수요일엔 다시 원래 체력으로 돌아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난 보기보다 상당히 계획적이다.




드디어 가족 배드민턴의 시작을 알리는 5월 1일이 돌아왔다. 근로자의 날이라 쉬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들. 아들은 학교에 보내놓고 남편과 나는 둘만의 달콤한 외출을 준비했다. “어디 가?” 물어보는 남편에게

“책을 좀 팔아야 하니까 알*딘에 갔다가 그 근처에서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갈까?”

“오케이!!”


전날 미리 골라 놓은 책을 바리바리 들고 서점에 갔다. 연필로 그었던 흔적이 남지 않게 지우개로 박박 지웠는데 혹시 흔적 남았다고 거부당할까 봐 살짝 쫄아있었지만 무탈하게 통과! 근 6만 원이 나왔다. 책을 사러 갔지만 또 사기도 해야 하는 법! 그러려고 직접 발품 팔아 매장을 간 것이다. 평소에 눈여겨보고 있던 책 세 권을 겨우겨우 골랐다. 사고 싶은 책은 늘 넘쳐나고 주머니 사정은 그에 비해 늘 부족하다. 다행히 책 판 돈이 있기에 그 돈으로 결제하고 남은 금액은 적립금으로 돌렸다. 내가 다시 책을 살 것이 분명하다. 아니다에 내 손목을…



책을 사고 남편과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가격이 저렴한데 손님이 바글바글한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오징어볶음”. 일 인분에 8천 원? 세상에 왜 이리 싸?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칼국수 한 그릇에 만 원하는 시대니 그런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콩자반, 다시마&초장, 콩나물, 어묵볶음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맛있다. 빠알간 반찬 오랜만이네? 매콤하면서 달달한 오징어볶음에 밥 한 그릇 뚝딱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이럴 때 사춘기 아이의 이유 없는 짜증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오면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고 타인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일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오후에 있을 운동을 위해 쉬어주기로 했다.

체력 안배!!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생각보다 굉장히 치밀하다.




저녁으로 잔치국수 한 그릇 후루룩 말아먹고 운동 나갈 준비를 한다. 목이 마를지 모르니 물도 챙기고, 혹시 출출할지도 모르니 간식도 챙긴다. 소풍을 가는 건지 운동을 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터가 넓고 평지이며 나무가 많지 않은 장소를 고르고 골라 집에서 도보 10분이면 도착하는 도서관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저녁 6시 30분. 한 시간만 치면 될 것이다. 이것 봐라 나란 사람 굉장히 철두철미하다.



첫 게임은 남편과 아이!! 서브부터 불안한 두 남자.

배드민턴 할 줄은 알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공중권을 장악한 남편과 민첩한 아들의 경기. 승부가 잘 나지 않을 만큼 경기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없이 메다 꽂아버리는 강 스매싱을 자꾸 시도하는 아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노안으로 초점 흐려지는 남편. 도저히 안 되겠기에 “당신 나랑 바꿔!” 하며 혜성처럼 내가 등장했다.

첫 서브를 넣고 아이가 받고 셔틀콕이 내게로 넘어오는데 방향이 묘하게 빗겨나간다. 달려가서 치면 되는데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 족저근막염.

여기서도 너 내 발목 잡을 셈인 것이냐! 우쥬 플리즈 꺼져줄래?를 외쳤지만 셔틀콕을 받으러 뛰어갈 때마다 발바닥에선 화닥화닥 불이 난 것만 같았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치자는 심정으로 팔만 뻗어 쳤고 그러다 보니 역시 나의 경기도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그 지지부진한 경기가 왜 재밌지? 놓친 셔틀콕 잡으러 다니기 바쁜데도 우린 계속 웃으면서 라켓을 휘두르고 있었다. ’ 몸을 움직여 그런가?‘

한 시간 정도 지지부진한데 재밌는 경기를 치렀다. 합이 잘 맞으면 셔틀콕이 라켓에 착착 붙을 만큼 잘 받아치는 시간으로도 이어졌다. 묘하게 빠져든다. 오 재밌는데? 점점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셔틀콕은 잘 보이지 않고 다리는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집에 가자는 말에 아이는 더 치고 싶다고 하는데 더 이상 칠 수 없는 몸. 한 시간 배드민턴을 쳤는데 왜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와 30분 정도 대자로 뻗어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를 내는 나와 신랑은 새삼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한 것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그 후로 네 번의 배드민턴 경기를 치렀다. 말이 경기지 그냥 엄마 아빠 아들 셋이서 돌아가며 셔틀콕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배드민턴을 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체감하는 건 한 두 달은 된 것 같다. 그런데 묘하게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가족이 다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동질감과 유대감이 느껴진다. 힘은 들지만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음에는 이렇게 쳐 봐야겠다, 너 자세가 그게 뭐냐, 엄마는 배드민턴 부였다면서 그게 뭐예요 하며 주고받는 말도 즐겁고 재밌다. 집에 돌아와 30분 대자로 뻗어 휴식을 취하고 각자 샤워를 하고 나와 먹는 아이스크림도 꿀맛이다. 책을 읽는다며 들어간 아들의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너도 힘들지?’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끄응~ 걸을 때마다 욱신거리는 발바닥 때문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고, 다리에는 쇠붙이를 붙여놓은 것처럼 무겁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가볍고 즐겁다. 남편은 너무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그 시간을 함께 해 주니 그것도 감사하다.



아이들이 유튜브나 게임에 빠지는 것이 시각적인 자극과 중독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혹은 그것보다 더 재밌는 것이 없기에 차선으로 택한 것은 아닐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삶. 자신의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기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는 아이에게 엄마인 난 무엇을 제공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일부러라도 움직이게 해 주고 싶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즐겁게, 가족이 함께 하면 가장 좋고!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하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고민 끝에 해낸 생각이 배드민턴이었는데 생각 외로 아이가 좋아해 줘서 굉장히 뿌듯하다.



“엄마, 되게 힘든데 이게 왜 재밌죠?” 하며 돌아오는 일요일에도 치자고 말하는 아이. 발바닥과 발목, 종아리는 왕왕거리고 아프지만 며칠 쉬면 그것은 또 가라앉을 터이니 난 그 자리에서 콜을 외쳤고, 신랑은 니들 둘이 치라며 자기는 쏙 빠져버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누군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즐겁게 보내면 되는 것을!! 이러다 골로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보자는 마음이다. 관절과 발바닥아 조금만 더 버텨주렴. 아이가 즐겁고 기뻐하는 걸 더 오래오래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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