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의 DNA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만...

by 심 코치

내가 어렸을 땐 유치원에 가는 게 요즘처럼 보편적인 시절은 아니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은 사립유치원과 달리 교육비가 저렴해 원생 모집에 꽤 많은 부모들이 신청했는데 모집 인원보다 신청 인원이 많으니 추첨제로 뽑았다고 한다. 평생 살면서 딱히 행운이 따랐던 기억이 없다는 엄마는 병설 유치원 원생 추첨에 내가 뽑힌 그날 정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는 말씀을 몇 번 하신 적이 있다.


난 어린 시절 기억력이 유난히 좋은 편이다. 모두 다는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상황이나 사건들이 있다. 유치원 입학실이 있던 날도 그중 하나다. 그날의 장면 하나가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난다. 강당이었는지 아니면 운동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학식이 끝난 후 반이 배정됐고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실에 들어섰다. 해당 아이들의 학부모들도 복도 창문 밖에서 자기 아이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앞 다퉈 앞자리로 움직이기 바빴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키가 큰 편인 엄마 얼굴도 얼핏 보였다.


그렇게 교실 의자에 잘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걸상과 의자를 모두 뒤로 옮기고 앞으로 와서 모여 앉자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빈 시간에 교실을 이용하다 보니 유치원생 수에 비해 교실이 너무 크기는 했다. 교탁과 걸상 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랬던 건지 명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편한 의자를 두고 굳이 선생님 앞에 옹기종기 모여 딱딱한 나무 바닥에 앉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내 자리를 혼자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복도 쪽에서 큰 움직임이 느껴졌다. 흘끗 쳐다보니 엄마가 나에게 계속 손짓을 하고 계셨다. 멀리서 봐도 엄마의 표정과 손짓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화가 나에게까지 전달됐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님 잘못 본 건가?'싶었고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 나 혼자 의자에 덩그러니 남아 앞 쪽 나무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같은 반 원생들과 선생님을 빤히 쳐다봤다.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그다음 상황은 얼마 전에 엄마에게 들어 알게 됐다.


"어머 쟤 좀 봐요. 다들 나가서 앉아있는데 혼자 자리 지키고 있네"


복도에 있던 주변 학부모들이 그 이상한 아이의 엄마가 옆에 있는 줄 모른 채 나를 신기해하며 수군거렸다. 엄마는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렸고 복도 창문 밖에서 빨리 아이들 있는 앞으로 가서 앉으라고 나를 향해 힘껏 손짓을 했지만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다 고개를 돌려버리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결국 창피함을 무릅쓰고 살짝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선생님께 면구스러운 웃음과 함께 목례를 하고는 나의 손을 강제로 잡아끌어다 앞에 앉히셨다고 한다. 내가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당시 나의 두 가지 생각이다. 편한 의자를 두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는 게 이해가지 않았고 이해가지 않는 요청에 바로 앞으로 쫄래쫄래 나가 앉는 같은 반 아이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생각해보면 난 겨우 일곱 살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다니던 교회 연말 송년 예배 때 초등부 학년 별로 서는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일요일 공과 공부 후 매번 남아 찬송가를 부르며 율동 연습을 해야 했는데 난 그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왜 저런 유치한 율동을 꼭두각시처럼 따라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집에 가서 불만을 터트렸고 당시 엄마는 네가 그럼 어린애가 아니면 뭐냐고 나무라시면서도 그런 딸내미가 귀여웠는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셨다. 명절에 왜 여자는 절을 안 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거실에서 TV 보는데 왜 여자들은 하루 종일 부엌에만 있어야 해요? 정말 궁금해서 엄마에게 돌직구로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물음에 엄마는 '너네 때는 달라지겠지?'하고 웃으셨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착해서 당하기만 하는 동화 속 여주인공들보다 할 말 하고 표현하는 작은 아씨들의 둘째 '조'와 빨강머리 앤의 '앤 셔리'에게 본능적으로 더 끌렸다. 여주인공이 단지 허영심 때문에 너무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학교 수업 시간에 접했을 때도 선생님이 얘기하는 교훈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책이라고 보기엔 내용이 너무 잔인했고 빨간 구두를 탐한 게 다리까지 잘릴 정도로 잘못된 일인가 싶어 어린 마음에도 이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느낀 점을 얘기해 보라는 선생님께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어린 나도 알고 있었다.


"콩쥐와 신데렐라는 너무 착해 빠져서 맘에 안 들어요"


"빨간 구두를 욕심낸 게 그렇게까지 벌 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 디즈니 공주들은 하나같이 왕자 만나 결혼하는 거에서 끝나요?"


"흥부는 찢어지게 가난하면서 왜 애들을 그토록 많이 낳은 건가요?”


라고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거니와 그런 목소리를 높일 용기도 없었다. 어쩌면 다수에 묻어가는 게 항상 안전한 선택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뱉지 못한 말은 나의 머릿속에서만 아우성을 칠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착하기만 해 현실감 없이 느껴지는 어린 시절 동화책 속 주인공들과 나와의 접점이 거의 없다 느껴져 뭔가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한 발 떨어져 있는 소외감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10대 시절까지 실제 '나'와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 간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날 항상 차분하고 얌전하게 봤다. 낯을 가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그냥 보이는 이미지 만으로 차분함의 프레임은 마치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대명사처럼 이미 씌워져 있었다. "너는 정말 조용하고 차분한 것 같아. 부럽다" 칭찬으로 건네는 급우들의 이 말이 당시 나에게는 스트레스였지만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네가 실제 나를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말 해도 믿지 않는 눈치였기에 나중에는 굳이 강조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남녀 공학이었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튀지 않고 조용히 묻어가는 성향은 더 강해졌다. 아주 친한 친구들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걸 일찍 깨달았고 학교라는 단체생활에서 이게 얼마나 큰 강점인지를 알아버렸기에 불협화음을 만들만한 소지를 애초에 차단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묻어간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비판적 사고의 DNA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장착된 일부로 오랜 시간 함께해 왔는데 의도적 노력으로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런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갖고 있는 많은 페르소나들 중 반항과 냉소를 담당하는 페르소나가 학교의 악명 높은 선생님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훅 튀어나갈 때가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늘 조용하고 차분한 학생이라는 고정된 이미지 탓인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학생의 반항이라는 데서 오는 당황스러움 때문인지 늘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대단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선생님들의 학교 내 악명 정도를 고려했을 때 대놓고 튀어나간 나의 반항에 대한 대가는 교무실에 끌려가 당황 섞인 훈계 정도를 듣는 것에 그쳤으니까...


개인보다는 단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전체주의와 권위적 유교주의가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깔려있었다. 당시 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옮음과 나의 마음속 옮음이 충돌할 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저게 말이 돼?’,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마음 한 구석에만 담아둔 차마 표현되지 못한 말들을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대상은 주로 엄마였다.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옳으니 학생의 본분을 다 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반응이기만 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교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탁 의자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하루 일과를 엄마에게 조잘거렸다. 때로는 공감해주셨고 때로는 그건 네가 너무 나간 거라며 제동을 거셨다. 그러면 난 내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엄마를 설득하려고 무지 애썼다. 물론 인정하기 싫어 내 의견을 관철하려는 고집이 반이었지만…


학창 시절 내내 마음속 자유로운 생각과 다양한 의견들은 밝은 빛 한번 보지 못한 채 무의식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 자유로운 생각이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어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표현해본 적이 없으니 뭘 잘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존재감 없는 나의 10대가 지나갔다. 오히려 억누르고 표현되지 못했던 내가 맘껏 드러나기 시작한 건 성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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