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시작된 나에 대한 탐구
10대 시절 차분하지만 차가워 보이는 인상은 나에게 스트레스 요인이었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꽤 장점으로 작용했다. 좋은 사람들에게는 다정함을 꺼냈고 권위적이거나 갑질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의도적인 차가움을 무기처럼 꺼내 들었다. 10대 시절 주류에 속하지 못한 것 같은 소외감을 느끼게 했던 비판적 사고의 DNA도 제대로 된 방향성을 찾았다. 오랜 기간 애써 억눌러 무의식에 웅크려야 했던 자유로운 생각과 의견들이 바깥세상을 맘 껏 구경하게 된 건 조직생활과 대학원에서였다. 토론이나 회의에서 나의 의견을 얘기하는 게 오히려 강점으로 통하는 곳이었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꺼내는 건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와 대학원에서 유독 프레젠테이션이 잦았던 나에게 나의 의견이 명확하다는 점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의외로 긴장하지 않는 담담함은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나도 모르던 내 안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남들과 다르다 느껴져 주류에 속하지 못한 것 같았던 소외감은 오히려 자신감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시작된 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때가 아닌 HR직무라는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던 그 순간부터였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IMF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 일자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97년도였다. 암울한 시기였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대안을 선택해야만 했다. 눈높이를 낮춰 경력부터 쌓자는 결단을 내렸고 작은 기업에서 그렇게 이년의 시간을 보낸 후 원하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했다. 좋은 사람들, 좋아진 환경, 수평적인 조직문화, 야근 없는 직무... 모든 게 내가 원했던 (아니... 원한다고 생각했던) 이상적인 곳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만족스러운 조직 생활과는 달리 나의 개인 삶 속에서의 불만 욕구는 점점 쌓여만 갔다.
그렇게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처럼 HR직무 기회가 주어졌다. 본사 CFO가 한국지사 대표님에게 오히려 역으로 제안한 결과였다. 당시 대표님은 나에게 업무적 부담이 될까 봐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며 말씀을 꺼냈지만 사실 난 속으로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본능적으로 중요한 기회란 걸 알았고 전혀 경험이 없는 새로운 직무를 한다는 두려움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가 안정적인 직무에서 오는 편안함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당시 외국계 기업에서만 가능했던 주 5일제, 야근이 별로 없는 안정적인 직무, 국내 기업에 비해 비교적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내가 바랐던 조직의 조건이었다. 그 조건들에 부합하는 곳에 근무했으니 목적을 이룬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공허함은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후 자신감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갖고 있지만 표현되지 않아 몰랐던 숨겨진 욕구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나에 대한 탐구는 그렇게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출발했다.
그 출발점에 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전까지의 나는 매년 조금씩 쌓여가는 알 수 없던 화(火)와 불만 욕구로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내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 마음을 탓하며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