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러다 정말 큰일 나!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거지?

by 심 코치

반복되는 야근으로 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광역버스가 도착하기 무섭게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좌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교통카드를 탭 하기 전 뒤쪽을 흘끔 쳐다봤다.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서서 가느니 다음 차를 탈 심산이었다. 다행히 맨 뒷자리에 좌석 몇 개가 남아있어 얼른 걸어 올라가 앉았다.


내 옆자리엔 교복을 입은 건장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앉기가 무섭게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지 긴 시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야근으로 피로에 절어 가뜩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결정적인 한 방은 몇 초 간격으로 내뱉는 습관적인 욕설이었다. '열여덟'이라는 숫자가 스타카토처럼 반복되었고 어떤 지점에 이르러 내 인내심의 마지막 끈을 훅 당겨버렸다. 나도 모르게 남학생의 전화기를 잡은 팔을 의도적인 불친절을 담아 툭툭 쳤다. 통화를 하다 '뭐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남학생에게 양미간 주름에 짜증을 섞어 앙칼진 목소리를 귀에 꽂았다.


"저기요, 욕 좀 그만 하실래요? 용건도 좀 간단히 하시고요"


존댓말로 포장된 비난을 내뱉은 후 화가 섞인 한숨을 토해내는데 입 밖으로 '에이씨'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남학생은 좀 놀랐는지 멈칫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불편한 공기 아래 조용한 적막이 흘렀고 난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정류장을 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쳐 달렸고 곧 내릴 때가 되어 벨을 눌러야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남학생이 먼저 벨을 누르는게 아닌가? '이런...' 같은 곳에서 내리다니 서로 참 불편한 상황이다. 한 정거장이라도 거리가 꽤 긴 편인데 학생은 얼른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가 서 있었다.


하차할 때가 되어 남학생이 먼저 내리고 나도 뒤 따라 내렸다. 남학생이 앞서 가고 내가 뒤에서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이건 뭐 쫓아가는 것도 아니고 동선이 계속 겹쳤다. 같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고 하필 같은 동이 아닌가? 이쯤 되니 앞서 가던 남학생도 좀 당황했나 보다. 밤의 정적 속에 천천히 뒤 따라오는 여자의 성격을 담은 또각또각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내가 걔라도 이상했을 듯....' 같은 동이긴 했지만 우리 옆 라인이라 다행히 들어가는 입구는 달랐다. 남학생이 자기 집 아파트 1층 현관 입구에 들어서는데 걸음 속도가 조금 느려지더니 살짝 뒤쪽을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난 모른 척 담담하게 옆 라인을 지나쳐 우리 집으로 직진했다. 집에 들어가 거실에 있던 여동생에게 좀 전에 있던 상황을 얘기했다.


"엄청 웃기지? 같은 동 옆 라인이지 뭐야! 걔가 놀라는 게 느껴지더라. 지도 어이가 없었겠지. 뭐라 했던 여자가 계속 쫓아와 흠칫했는데 알 보고니 이웃사촌이었으니"


동생이 심각한 얼굴로 어이없어하며,


"언니, 진짜 조심해. 큰 일 날라고.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겁도 없이. 게다가 고등학교 남학생한테... 걔네들이 제일 위험해. 그렇게까지 이상한 애가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그럼 옆에서 계속 18 18 거리는데 그걸 음악 소리처럼 듣고 오냐?"


"농담 아니야 진짜! 이상한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는 괜히 나서지 말고 그냥 모른 척 해"


동생은 공무원이라 아무래도 동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 소식을 자주 접하는 편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난 생긴 대로 살 거라며 괜히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몰라서 못 고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 되는 거였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대 중반을 지나며 어느 순간부터 증상은 매해 더 심해졌고 20대 후반을 지나 서른 즈음엔 초 절정이었다. 이유 없이 화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는 점점 더 늘어갔다. 예전에는 그래도 정말 그럴만한 상황에서만 그랬다. 주로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만 강한 사람들, 상호 존중이라는 건 대체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갑질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 대상이었다. 진심 어린 경멸을 담아 따박따박 할 소리를 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조금씩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올라오려는 짜증이 제어가 안되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까칠한 성격까지 더해졌고 양미간의 주름은 시도 때도 없이 골을 만들었다. 엄마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종종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나 혹시 분노조절 장애인가? 이러다 양미간 주름 고정될까 봐 겁나. 나 아무래도 요즘 미친 것 같아"


변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고 방법 이전에 내가 왜 화로 가득 차있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원인 모를 불만 욕구로 종종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했고 그런 기분에 식사를 하면 어김없이 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과 화는 점점 더 늘어갔다. 감정의 주인은 나인데.... 주인인 내가 감정에게 휘둘려 매번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고 있었다. 짜증, 화, 그리고 자책이 일상이 되어 갈 무렵 이래선 안 되겠다는 강한 경각심이 들었다.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거지?!'


나름 노력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나아지는듯 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했고 그때마다 자기 감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꺼번에 들이닥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난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감정에 휘둘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를 감정의 시한폭탄을 떨어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위태롭게 버티던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졌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keyword
이전 02화소외감이 아닌 자신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