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어느 순간 그렇게...

무언가가 나의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by 심 코치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이라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마치 섬광처럼 나타나 나의 의식에 내리 꽂히는 그런 건 아니다. 적어도 평소에 내가 고민해 왔던 무언가에 대한 해답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는 거에 가깝다. 기회가 기회인걸 아는 것도 그 사람의 그릇이다. 방금 나에게 온 게 무언지 알지도 못한 채 놓치고 흘려버리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니까.


음악회사 근무 당시 인사 업무를 총괄했던 나에게 어느 날 대표님께서 비즈니스 코칭 과정을 듣고 임원들한테 사내 재교육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내 돈 들여 역량계발도 하는 마당에 회사 비용으로 평소 관심 있던 코칭 과정이라니... 난 당연히 그러겠다고 말씀드렸고 바로 코칭 16시간 과정을 등록했다. 20대 후반부터 배움은 나에게 일종의 습관 같은 거였다. 누군가는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듯 난 교육 과정이나 체험처럼 직접 경험을 통한 사고 확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업 대상 유명 교육 기관에서 진행하는 16시간의 비즈니스 코칭 과정은 꽤 의미 있었다. 하지만 뭔가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나이기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껴졌다. 전문 코칭 교육 기관을 알아본 후 회사와 병행 가능한 주말 6개월 과정을 사비로 등록했고 대표님께는 좀 더 배워 깊이를 쌓은 후에 사내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교육과정 등록 당시에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과 직무 역량계발의 의미가 더 컸다. 조직에서 면담 문화를 정착시킨 후 임직원 1:1 면담을 자주 진행했기에 코칭 과정을 수료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6개월 과정이니까 내 경력계발에도 도움이 될 거고 혹시 모를 코칭 전문가 자격증에 대한 미약한 가능성까지도 염두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공적 영역이 아닌 나의 사적 영역에까지 미칠지도 모를 그 어떤 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단 1%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난 수술 후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체력적으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평일에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할 체력 딸리는 직장인에게 토요일 전일 과정을 반년 간 지속한다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침대에 철퍼덕 쓰러져 그렇게 한참을 미동도 않은 채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는 심연 어딘가로 몸이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이 세상 모든 중력을 내 몸 하나로 버티고 있는 듯한 아주 묘하고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시간이 단지 지적 호기심과 경력계발이라는 원래의 목적에만 충실한 시간은 아니겠구나 싶은 직감 때문이었다. '허를 찌르다'라는 표현이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약하거나 허술한 곳을 치다'라고 정의한다. 교육 내용 중 일부가 정확하게 나의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아주 오랜 기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과 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체기처럼 명치에 걸려 있었다. 어느 순간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스멀스멀 올라왔고 어떤 날은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긴 시간 고민을 했고 그래서 변하기도 했다. 변화는 엉뚱하게도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부터 시작됐다. 조직에서 HR직무 기회가 주어졌고 멋진 리더를 만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직무를 덕질하는 덕업 일치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조직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우니 이유 없는 짜증과 화의 절반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새롭게 이것저것 일을 벌인 것들이 가시적 성과로 돌아왔고 성취감과 자긍심도 함께 높아졌다.


변화의 시작이었고 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미흡하다 느꼈다. 예전보다는 만족할만한 삶이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드는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냥저냥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의도적인 자기 암시와 화가 올라올 때마다 이래선 안된다는 이성의 지배 아래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코칭 교육을 받으며 뭔가 허를 찔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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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있다. 각각의 위치에서 떠돌던 정육면체의 큐브 조각들이 어느 순간 완벽히 맞춰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오랜 기간 자존심으로 덮었던 건 결핍과 콤플렉스이고 짜증, 냉소, 때로는 화(火)로 덮어버린 건 불만 욕구였구나 하는 깨달음.


코칭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과 매트릭스를 활용한 검사지들이 있다. 그중 의도 매트릭스를 바탕으로 한 '선호가치'를 찾는 시간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개발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최종 선호가치는 '성장'이었다. 이게 개발이 되지 못하고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타인에게 책임 회피를 하거나 외부로 비난을 돌리는 등의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는 설명을 들었다.


콤플렉스라는 것도 나의 욕구가 개발되지 못했을 때 생긴다. 예를 들면, A와 B라는 사람이 있는데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A라는 사람은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반면 B라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아마도 A는 예뻐지고 싶은 미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발 욕구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거고, B라는 사람은 미적인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에 대한 선호가치가 있기에 중요도의 우선순위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콤플렉스를 덜 느끼는 게 아닐까? 재벌이라면 무조건 싫어하고 거품 물며 욕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돈이나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개발 욕구가 남들보다 더 강한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그 부분이 개발되지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니 비난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 불평불만이 많다는 건 어쩌면 개발해야 할 숨겨진 욕구가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욕구들이 개발되고 실행으로 옮겨진다면 삶이 만족스러워지겠지만 단지 불평불만으로만 그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내가 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순간부터 30대 초반까지 알 수 없는 짜증과 화로 일관했는지에 대한 답이 눈 앞에 그려졌다. 타고나길 고집이 세고 인내심이 부족한 성정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자책했지만 늘 의문을 제기하고 불만을 나타내는 건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일 수 있으며, HR직무를 맡기 전까지 짜증과 화로 일관했던 건 선호가치인 '성장'에 맞지 않는 직무를 너무 오랜 시간 했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끊임없이 '성장'이라는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데 편하기는 하지만 큰 동기 부여를 주지 못하는 나의 직무에서 오는 불만이 나의 일상에도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거라니.... HR직무를 맡고 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사비 털어 교육을 받으러 다녔고 조직에서는 계속 일을 계속 벌였다. 하고 싶은 일들이 끊임없이 보이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가끔 지인들이 신기해하며 나에게 물었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 월급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좀 쉬엄쉬엄 해"


"네가 회사 사장인 줄 알겠다. 건강 생각해가면서 해. 그러다 탈 나"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농담 섞인 얘기란 걸 알기에 기분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만 적당히 하라는 건 덕후에게 덕질을 하지 말라는 거나 같은 의미였다. 난 당시 나의 직무를 덕질하고 있었다. 직무가 나의 선호가치인 '성장' 욕구를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성장을 도와 조직의 성장을 이끌고 이 과정을 통해 '나'라는 개인도 함께 성장하는 삼위일체의 선 순환 고리.


짜증과 화가 조금씩 사라졌던 건 나의 의도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성장'욕구를 채워주는 직무의 영향이 컸었던 거다. 그래서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 느껴졌던 건 나의 변화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해서였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렇게 엉뚱한 방향에서 나의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모든 교육 과정이 그렇듯 코칭 과정에서 배운 모든 내용이 의미 있다거나 공감 가는 건 물론 아니었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렸다. 내용에 공감하고 몰랐던 관점을 배우면서 나만의 것으로 흡수해 사고 확장에 도움을 줬다면 그 교육은 어떤 의미로든 제 역할을 한 거다. 코칭 교육은 그런 의미로 내 인생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원인을 깨닫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로부터 현재의 나까지로 이어지는 많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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