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터널에 갇힌 지 벌써 30분 째다. 초반의 웅성거림도 어느새 잦아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한숨 소리와 나지막한 욕설만이 간간히 버스 안의 침묵을 깼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습한 공기와 시큼한 땀 냄새에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어두운 터널에는 우리처럼 갇힌 차량들의 미동 없는 라이트 불빛만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시끄러운 견인차와 구급차 소리가 현재의 상황을 명백히 알려주니 기사님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승객들도 없었다. 1990년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달리는 버스 창문을 열고 얼굴을 때리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채....
1990년대는 일반버스에도 순차적으로 에어컨 설치가 도입되던 시기였다. 당시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가 여러 대 도착할 경우 뭔가 신형처럼 보이는 버스로 우르르 몰려가곤 했다. 뒤의 버스가 텅텅 비어 있더라도 더운 버스에서 앉아가느니 시원한 버스에서 서서 가는 걸 선택하는 거다. 신호가 바뀌면 한꺼번에 정류장에 들어서는 여러 대의 버스 번호를 얼른 스캔하고 자신에게 덜 불편한 선택을 한 후 버스를 향해 달린다. 날씨가 더울수록 서서 가는 걸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날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에어컨 있을 것(?) 같은 버스를 마냥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터널 안이니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져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져 갔다. 하필 이날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지만 나의 20대 시절에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계절 구애받지 않고 애용하는 청바지 덕분에 허벅지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가슴골로 땀이 또르륵 흘러내렸고 이마와 콧잔등에도 송골송골 맺혔다. 손으로 이마의 땀을 쓰윽 훔쳐도 몇 분 후 다시 베어 나왔다.
나만 겪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짜증스러움을 뱉어내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느껴져 멍하니 그렇게 앉아 있었지만 점점 양미간의 주름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해 한 숨을 크게 '후우'하고 내쉬었다. 하지만 갑갑함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문 열어 달라 소리 지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시내였다면 기사님도 그렇게 해주셨겠지만 남산터널 밖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곳 없는 도로변이니 요청한다 한들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의 인내심에 한계치가 느껴질 때쯤 기적처럼 앞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여전히 터널 안에 갇혀 있었지만 시동 거는 소리 만으로도 명치를 꽉 누르고 있던 체기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터널을 지나 달리던 버스가 드디어 목적지인 명동 근처에 섰다. 승객 대다수가 급하게 우르르 몰려 내렸다. 밝은 곳에서 마주한 그들 역시 나처럼 땀범벅이었다.
여전히 무더운 8월의 날씨였지만 바깥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폐가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 10분만 더 갇혀 있었다면 바깥 도로가 위험하든 말든 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이미 상상속의 난 열 번도 넘게 버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걸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버스가 움직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저 닫힌 공간을 남들보다 조금 더 싫어하는 정도라고만 생각했었다. 내 증상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린 건 내가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30대 이후 언젠가부터였다.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후 크고 작은 일상의 깨달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까지 영향을 줬다. 마치 물꼬가 트이듯 나에 대해 갑자기 새롭게 깨닫고 알게되는 것들이 이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동네 목욕탕 갔다가 빈혈로 쓰러졌던 일, 학생 때 TV에서 해주던 재난 영화의 대표작인 '포세이돈 어드벤처'와 '타워링'을 보며 재미는 있는데도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불편함, 남산 터널에 갇혔을 때 느꼈던 극도의 갑갑함, 20대 때 종로에 있는 영화관을 갔는데 하필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이라 영화 관람 내내 집중력이 떨어져 비상구 초록불만 쳐다보고 있었던 경험, 꽉 막힌 독서실 대신 도서관 창가 옆 오픈 테이블 자리를 선호했던 일 등 여러 가지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그제야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나 지장은 없기에 거창하게 폐소 공포증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애매해서 내 맘대로 폐소 답답증이라 이름 붙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일이 있을 때 난 폐소 답답증이 약간 있다고 말한다.
사는데 딱히 불편함은 없다. 그냥 다 감수할만한 것들이다. 스스로에 대해 알고 나니 딱히 지장 없는 경우라면 알아서 피하면 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에 회사 동료들과 단체로 '인터스텔라'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나는 피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보지 않은 영화가 유일하게 '인터스텔라'여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예상대로 역시나 중간에 나오고 싶었다. 영화 내용에 관계없이 닫힌 공간인 영화관에서 닫힌 공간인 우주선을 소재로 한 영화는 내가 가장 꺼리는 장르다. 그런 종류 영화는 차라리 집에서 IPTV로 본다.
방 탈출 게임을 굳이 내 돈 내고 갈 일은 없을 거다. 갔다 온 사람들의 설명만 들어도 나 같은 사람이 딱 싫어하는 것만 모아놓은 종합세트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나를 잘 알면 여러가지 면에서 삶이 편해진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