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게 아니라 타고난 오감각 때문입니다
난 오감각이 다 발달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까지... 하지만 살면서 발달된 감각으로 인해 느꼈던 이점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평균치보다 뛰어난 감각은 삶을 피곤하게 할 때가 더 많았다.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공공장소에서 후각을 괴롭히는 고기 냄새, 담배냄새, 주종별 술 냄새, 땀냄새, 진한 화장품 냄새, 머리를 어지럽히는 향수 냄새, 누군가의 입냄새, 쉰내.... 남들보다 발달된 나의 후각 더듬이는 귀신같이 이를 감지하고 나의 양미간에 주름을 만든다.
하이톤의 큰 목소리에 유난히 귀가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 사람과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 청각이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으니 에너지를 뺏긴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장소에 오래 있어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빨리 에너지가 소진된다. 약간의 좋은 점이라면 음악 덕후로서 라이브 공연 시 보컬의 음정이 정확하지 않거나 미세하게 불안할 때 바로 눈치 챈다는 것 정도.... 근데 그게 딱히 좋은 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평가하고 분석하려고 공연장에 가는 건 아니니까...
이유를 몰랐을 땐 나의 인내심 부족과 예민한 성격의 모남이라 생각해 스스로를 탓했다. 유난히 발달된 감각 탓인지는 몰랐다. 20대 때의 까칠함이 세월에 깎여 조금씩 둥그레지며 양미간을 덜 찌푸리려 노력하는 인내심도 같이 늘기는 했다. 그렇다고 발달된 오감각의 본질이 변하건 아니다. 나의 코는 여전히 냄새나 향기에 예민하게 킁킁거리고 나의 귀는 시끄러운 소음과 귀를 긁는 하이톤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쫑긋거린다. 나의 촉각은 타이 마사지나 초음파 검사에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고 나의 미각은 칼이나 도마에서 옮겨온 출처가 불분명한 미세한 맛을 감지하곤 한다
언젠가 잇몸 통증이 심해 치과에 가니 약간의 치경부마모증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 증상으로 그 정도의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느끼는 통증 정도에 대해 상세히 얘기하니 드문 경우인데 나보고 신경이 예민해 통증을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는 하다 하다 촉각도 모자라 신경까지 예민하단다.
조향사가 되었다면 발달된 후각 덕이라 했을 거고 요리사가 되었다면 발달된 미각 덕이라 했을 거다. 하지만 나의 발달된 감각은 아직까지는 어떤 쓸모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혜택을 보는 게 있다면 시각 정도... 뭐든 적당한 게 좋다. 모자라도 문제지만 넘친다고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특히나 후각과 청각의 예민함은 수시로 삶의 피로함으로 다가온다. 농담 삼아 후각과 청각 기능을 조금 덜 예민하게 하는 치료가 있었으면 좋겠단 얘기를 지인들한테 한 적이 있다. 적당한 평균치로 묻어가고 싶다고.
어쨌든... 적어도 탓할거리는 생겼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야, 타고난 감각 탓이야'. 남이 아닌 나를 탓하면서도 반드시 내 탓만은 아니라는 합리적 의심...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참을성의 부재와 지나친 예민함에 대한 자책을 조금은 내려놓았을 텐데. 30대의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과거의 나를 이해하게 된거다. 내가 보이니 남도 더 잘 보였고 사람과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로 시선이 점점 확장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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