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에너지 총량의 법칙

저질체력을 타고난 자의 생존법칙

by 심 코치

어릴 때부터 나의 체력은 항상 평균 미달이었다. 살면서 나름 몇 번의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더 큰 병이 아님에 항상 감사했다. 정말 친한 지인들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한테도 스스로의 상태를 마치 남의 일인 양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걸로 주목받는 것이 싫었고,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의 징징거림을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내 가족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고 하는 과거 소환의 단골인 20대...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다는 젊음의 서사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딱히 체력적인 면에서 소환할 왕년의 20대가 나에게는 없다.


그래도 나이라는 젊음에 기댄 자신감으로 20대 때는 그냥저냥 신경 쓰지 않고 남들처럼 살았다. 그러다 30대가 되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변화를 시작으로 체력 유지를 위한 몸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좋은 음식, 규칙적인 운동이라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한 덕분에 들어가는 나이에 비해 점점 체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남들만큼 느끼지는 않게 됐다. 워낙 가지고 있던 기본이 약했으니 출발점이 달라 그런 건지도...


하지만 좋은 음식과 규칙적인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단 걸 깨달았다. 타고난 기본 자체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면 나만의 생존 방식이 필요하다. 그때 깨달은 게 바로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다. 나를 알고 바라본다는 건 정신이나 심리적인 부분에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나의 육체 즉, 몸이 주는 신호에도 귀 기울이게 만든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분명한 총량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거다. 써도 고갈되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좀 유난스럽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한테 이런 법칙은 매우 유용하다. 인간관계, 일상의 삶, 나의 감정에서의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것이 에너지 총량의 법칙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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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의 에너지 총량의 법칙

사람 간 관계에서 우리는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뺏기기도 한다. 난 상대방에게 집중해서 경청하는 성향이다. 때로는 건성으로 듣고 흘리면 편할 텐데 함께 하는 그 공간에서는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하고는 그런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집중이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게 엄청난 노력을 요하게 만든다. 후자의 경우 난 '기 빨린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일종의 에너지 뱀파이어다.


말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끊임없이 떠드는데 요점이 없거나, 듣는 것보다 자신의 얘기만 들어주기를 바란다거나 나만 늘 옳은 사람이 그런 경우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네버엔딩 스토리, 부정적인 에너지를 계속해서 뿜어대는 어조와 태도, 누군가에 대한 험담, 길게 이어지는 연예인 가십, 깊이 들어간 정치와 종교 얘기 등이다. 이럴 경우 에너지를 받기보단 뺏긴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쓰러져 지하 2백 미터까지 암반수 파고 들어간 것처럼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난 그런 관계는 되도록이면 피하거나 거른다. 더 가까워지기 전인 관계 초반에 그런 사람과는 조금 거리를 둔다. 계속 봐야 하는 경우라면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의 관계만 유지한다. 체력을 위한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그런 관계에 사용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다.


일상에서의 에너지 총량의 법칙

체력적으로 큰 노동이 들어가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다. 입은 옷이나 사용한 물건은 바로 제 자리에 갖다 두고 설거지는 나오는 즉시 한다. 5분 편하려고 뒀다가 한 시간의 체력 낭비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직장에서 격무에 시달리거나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떨어지는 기간에는 대중교통 대신 무조건 택시를 이용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이동해야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유일하게 고민 없이 누리는 작은 사치가 아닐까 싶다.


체력적으로 힘든데 자리도 없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서서 갔을 때의 에너지 낭비가 택시를 탔을 때의 돈의 낭비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업무상 중요 프로젝트가 길어질 경우 소소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고 자기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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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의 에너지 총량의 법칙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나의 감정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에는 더 많은 감정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좋지 않은 감정의 에너지는 곧 몸과 연결된다. 주말 드라마나 막장드라마에서 왜 어른들이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지 수년 전에 누군가로 인해 확 열 받았을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 갑자기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목덜미에 담이 오는 경험을 한 후 드라마 속 장면이 결코 과장된 설정이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았고 시간이 지나 안정되었을 때는 이미 맥이 빠진 후였다. 반차를 내고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안 그러면 뭔가 그 의 응어리가 내 목과 어깨 근육에 며칠간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나 상황으로 인해 내 몸이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되자...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나 상황에 절대로 휘둘리거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라는 결심을 꽤 오래전에 했지만 아직도 그런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내려놓은 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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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한번 앓은 적 없고 병원 신세 진적 없는 왕년의 나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도 40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나이 드는구나... 나이 앞에는 장사 없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체력을 얘기하며 왕년의 나를 소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나의 최상은 항상 현재다. 건강하다는 게 당연하지 않은 나이가 되고 나니 나와 비슷한 연령대 대비 내가 평균치 미달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인생은 늘 방심하는 순간 나의 뒤통수를 쳤기에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당연하다 과신하지 않는다. 나에게 건강이란 과신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살펴야 할 변덕스러운 어린아이와 같다. 저질체력을 타고난 나 같은 사람에게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생존법칙인 이유다.



*커버이미지 :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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