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디에 감정 에너지를 주로 낭비할까?
외로움이나 고독은 '지금까지는' 나와는 다소 무관한 감정이다. 굳이 '지금까지'라 강조하는 건 인생은 모를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남기는 일종의 '여지'다. 난 심심하다는 감정과 외롭다는 감정의 차이조차 구분 못한다. 정말 모르겠어서 심심한 게 무거워지면 외로움이 되는 거냐고 아주 오래전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 대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긴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라는 대답을 듣기엔 이미 난 나이가 많이 들어버렸다. 블로그 이웃 중 한 명이 '외로움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감정인데 외로움이나 고독의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는 건 인간관계에 대한 기본 이상의 재능이 있지 않고서야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는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마주했다. 집에 놀러 온 언니한테 같은 질문을 했다.
“난 지금까지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언니는 어때? 그런 감정 느낀 적 있어?”
망설임 없는 즉답이 돌아왔다.
“아니, 한 번도 없는데”
같은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니 가족이 채워주는 부분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임엔 분명하다. 가족과는 늘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부모님과 우리 세 자매는 각자 사는 곳이 다르지만 실시간 수준으로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안다. 오프이든 온라인이든 서로 보고 듣는다. 40 중후반에 걸쳐있는 자매 셋 다 지금까지 커리어를 놓지 않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나로 서지 않고 의존하기엔 셋 다 독립심이 강하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삶의 영역이 달라지면 형제자매 간 경제력, 삶을 바라보는 관점, 처한 상황, 판단력 등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 심리적 간극을 만든다. 난 다행히 그런 간극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가족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채움이 아닌 서로의 삶이 주체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채움이다. 서로 간의 채움이 일방적 의존으로 발전하게 되면 독립된 각자의 삶의 영역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오래전 한 연예인의 방송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참 잘 나가던 시절 갑자기 돈을 많이 벌게 되면서 가난에 익숙했던 가족들이 어느 순간 변해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면서 이제는 아무런 활동이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가족들은 자신이 돈 많이 벌던 시절의 높아진 눈높이에 여전히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고 어쩌면 내가 가족들을 이렇게 무능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함께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에 무조건 다 퍼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가족들이 기존에 하던 일을 놓아 버리고 각자의 삶이 아닌 돈 많이 버는 누군가에게만 의존하며 이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 사실 연예인 가족들의 이런 얘기는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대상이 부모든 아니면 형제자매든, 가족 구성원의 재력은 종종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담보 잡히는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다. 너무 잘 나가는 가족 구성원에게 기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으나 내가 이룬 것이 아닌 누군가에 기대는 편안함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한다. 양날의 검 같은 거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채 나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주체성을 조금씩 저당 잡히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당연한 건 없다. 부모니까 당연하고, 장남 장녀니까 응당 그래야 하고, 아들이니까 혹은 딸이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구성원 간 보이지 않는 심리적 불편함이 생긴다. 가족 구성원 한 명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이 당연한 게 되어 버릴 때 가족관계의 균형이 깨진다. 의존하더라도 그건 정말 힘들 때 잠깐 쉬어가는 개념이지 오랜 기간 당연하게 머무는 개념이 아니어야 한다. 일단 성인이 된 후에는 각자의 삶이 주체적일 때의 상호보완적 관계이지 각자의 삶이 바로 서지 못한 상황에서의 당연한 상호 의존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나 지인과의 관계는 가족관계와는 결이 다르다. 나이가 든 지금 나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만나는 횟수에 관계없이 100세 시대의 남은 여정을 나란히 걸어갈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있다. 우정은 가족처럼 필연적 관계가 아니다. 원하면 인연을 멈추는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필연적이지 않기에 서로에 대해 더 알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가족처럼 그러려니 넘어가주는 융통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인이 나에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들과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거였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친구가 있고 감정표현이 풍부한 친구가 있다. 난 후자다. 하지만 그건 나의 성향일 뿐 상대방에게 나와 같은 정도의 표현을 바라는 건 나 중심의 기준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이면 감정 표현에 인색하다고 해서 섭섭할 이유는 없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가뭄에 콩나기 식으로 표현하는 몇 마디가 나에게는 더 울림이 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친구나 지인 간 관계에서의 다름은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채우는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음악회사 근무 시 자사 아티스트 앨범이 발매되어 몇몇 동창 단톡 방에 지나가듯이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노래 괜찮으니 음원 사이트에서 듣고 좋아요 눌러 달라고.... 그냥 가볍게 한 의례적인 메시지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다 완료했다는 인증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 바로 했다는 내용부터 회원가입 일부러 했다는 메시지, 본인은 이용하는 음원 사이트가 없어서 아는 지인들 몇 명한테 부탁했다는 내용까지....’엥??? 이건 뭐지??’ 싶었고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40대 가정주부들이 월정액을 내고 음원 사이트를 이용할 확률은 20 - 30대에 비해 매우 낮다. 큰 기대감 없이 가볍게 던진 얘기였는데 너무 번거롭게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 해달라는 건 아니었는데.... 난 그냥 혹시 음원 사이트 가입되어 있음 해달라는 거였어... 에고... 괜히 번거롭게 했나 보네 ^^;;'
그러자 몇몇 단톡 방에서 비슷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 원래 부탁 같은 거 잘 안 하잖아. 별거 아니더라도 너 부탁이니까 무조건 해줘야지 싶었어'
여기에 동의하는 다수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들이 따뜻한 울림이 되어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그래서 뭔가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작고 소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작고 소소한 일들에 감사할 줄 아는 감수성이 관계에서는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우리 일상에는 큰 사건보다는 작고 소소한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과 말 뿐인 우정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 노력도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내 옆에 함께 한다는 것에 나이 들어갈수록 든든함을 느낀다.
가족과 친구나 지인과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서적인 풍요로움..... 그렇다면 이게 과연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완전한 답일까? 이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지인과의 관계는 이차적인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관계를 떠나 나 자신이 온전히 채워져 있어야 한다. 나의 감정은 누가 대신 채워주는게 아니니까.
나 스스로 느끼는 결핍과 낮은 자존감, 생각할 것도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는 낮은 호기심, 상황마다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 자기 관대화 등이 일상이라면 가족이나 친구 관계가 충족된다고 해도 외로움의 감정과 멀어질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라면 관계 또한 건강할 리 없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채움은 분명히 나의 삶과 감정을 풍요롭게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이 채워져 있지 않다면 일시적인 만족감일 뿐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떠나 나를 채우는 건 무엇일까? 결핍은 지금도 종종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한 결핍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데서 오는 결핍이다. 남을 통한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 못 미쳤을 때 나 자신에게 느끼는 실망감과 자책에 가깝다. 결핍의 원인이 외부와의 비교에서 오는지 나에게서 출발하는지는 자존감과도 연관이 있다. 외부와의 비교를 멈추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성장하는 노력을 했을 때부터 나의 자존감도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20대 시절 나를 괴롭혔던 결핍과 이로 인한 불만 욕구.... 당시의 난 결핍은 자존심으로 덮었고 불만 욕구는 짜증과 냉소 때로는 화(火)로 덮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원인을 깨닫고난 후 결핍은 오히려 나의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과의 비교로 인한 결핍으로 시작했지만 무언가 하나씩 이루어가며 비교에서 오는 빈곤이 아닌 채움을 통한 성장을 경험했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총량이 존재한다면 각자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감정 에너지의 총량이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100이라는 숫자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각각 다른 비율로 자리하고 있다. 나의 결핍은 외로움이나 고독이라는 감정보다는 불만, 짜증, 냉소, 때로는 화로 표출됐다. 어떤 사람은 그게 외로움이나 고독으로 표출되는 거고 누군가는 애증이나 질투로 표출되는 게 아닐까? 중요한 건 그런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거다. 난 그 과정을 30대가 되어서야 직시했다. 외로움을 너무 자주 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왜 발생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나의 불만, 짜증, 냉소, 화의 원인이 사실은 타인이나 환경이 아닌 나의 불만 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가 자각했던 것처럼. 내가 나의 감정을 인지해야 내면세계가 단단해진다. 나의 내면이 단단하게 채워져 있어야 타인과의 관계 또한 건강해진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불필요한 감정 낭비가 줄어든다.
나는 어디에 나의 감정을 많이 낭비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결핍이 주로 표출되는 감정은 무엇일까?
12년 이상 1:1 코칭 면담을 하면서 간혹 면담을 받던 직원이 눈물을 쏟는 경우가 있었다.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줄 때도 그랬지만.... 긴 시간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경우는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내가 질문했을 때였다. 본인이 긴 시간 고민했던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말을 멈추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본인이 몰랐던 억압됐던 감정, 결핍, 자라온 환경, 가족 간의 문제, 혹은 학창 시절 겪은 좋지 않은 경험 등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항상 현재 눈 앞에 벌어진 사실만으로 문제를 판단하려 하면 본질에서 벗어난 결론에 이를 때가 있다.
어떤 감정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그리고 더 나아가 불필요한 감정 낭비 대신 나를 채우는 노력을 하는 것....그 과정이 오랜 시간에 거쳐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변해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 들어가며 그 나이에 맞는 어른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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