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나와 실제 나'간의 간극
20대 때의 나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긍정적인 의미의 자존심이라기보다는 조금 과한 경우였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그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세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방어기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나와 실제 나'간의 간극, 스스로가 멋이 없게 느껴지니 고슴도치처럼 자존심이라는 가시로 나를 보호했던 것 같다. 그 가시 안에서 나의 나약함을 숨길 수 있어서였다. 이런 부분을 누가 건드리거나 건드릴 위험성에 노출되려 할 때 자존심이라는 가시를 세워 나를 보호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야 하는데 스스로가 못마땅하니 나오는 심리적인 반응이었다. 불만 욕구,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오는 심리적인 위축, 인정 욕구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나 자신이 변화하려는 노력이나 실행 대신 처한 현실을 탓하며 외부로 책임을 돌렸다. 자존감이 외부를 의식하지 않는 온전히 나라는 개인에 집중된 개념이라면,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나 반응에서 다소 자유롭지 못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균형 잡힌 자존심이 오랜 시간에 걸쳐 좀 더 긍정적인 형태로 발전된 게 자존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자존감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걸까?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고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자존감이 높아지는 그런 일은 없다. 생각이나 결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 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기까지 나 역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급행은 없다. 꾸준한 인내와 자기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존심에서 자존감으로 가기 전 내가 거쳤던 중간 단계가 바로 자긍심이다.
불필요한 자존심에서 자긍심으로 변화한 건 나에 대한 자기 확신이 생긴 후부터였고 나에게 그 계기의 시작은 조직에서였다. 운이 좋게도 멋진 리더를 만났고 재능을 펼칠 기회가 주어졌다. 인생에 있어서 나를 성장시키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쩌면 '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운을 기회로 알고 움켜쥐느냐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리느냐는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좋은 리더를 만나 성공 경험을 통한 자긍심이 자리하니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자존심의 거품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자기 확신을 통한 자긍심이 생기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존감이 높아져있었다. 의도가 아닌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차곡히 쌓인 시간만큼 나의 정체성도 단단해졌다. 시작은 조직에서였지만 변화된 의식은 나의 삶 전체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자존심과 나의 정체성을 지속하려는 자존감은 내 안 어딘가에서 힘겨루기 중이다. 어떤 시기에는 불안함과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자존심이 머리를 들었다가 어떤 시기에는 자존감이 더 높게 자리했다가...... 그러나 이제는 불필요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려할 때 자존감으로 자존심을 누를 줄 알게 됐다. 자존감도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흔들린다. 지속적으로 같은 무게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존감을 단단하게 유지시켜 주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중심이 단단하지 않다면 자존감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거다. 삶이 평탄하게 흐르고 잔물결 정도의 약한 흔들림만 있는 상황에서 자존감을 유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버거울 정도로 힘든 장애물을 만날 때가 있다. 잔물결이 아니라 급류를 만나기도 하고 잘 빠져나왔다 생각하면 또 다른 급 물살이 기다리기도 한다. 이러한 반복이 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이 된다면?
옳은 선택을 할 건지 아니면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할 건지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똑같은 자존감의 크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상황이나 순간의 변수들에 따른 진폭이 크다면 그건 진정한 자존감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세우고 그 중심이 확실하다면 나의 자존감이 상황에 따른 미약한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큰 진폭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을 하위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는 상위 개념이 필요한 이유다. 올바른 삶의 가치, 삶의 철학, 자기 신념과 같은 나의 존재의 이유 말이다. 큰 개념이 바로 선다면 그 밑에 있는 하위 개념은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큰 개념이 바로 서 지 않은 채 자기 계발서나 명사들의 강연을 통해 머리로만 이해한 자존감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들은 실제 나의 자존감을 높여 주지 못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결심만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삶에 있어서 나만의 상위 개념을 세우고 그 가치 아래 차곡차곡 쌓인 나의 시간들이 오늘의 결과물인 현재의 나다.
돌이켜보면 나의 성장의 시작점은 스스로의 민낯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내가 원하는 나와 실제 나'간의 간극이 불러온 자존심이라는 뾰족한 가시가 결국 방어기제였다는 깨달음처럼 말이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왜?'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결심과 신념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내가 현재의 나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해답을 얻는 과정에서부터 시작 됐다. 앞으로도 난 계속 성장을 이어갈 거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그건 바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 여정은 일정 수준이 된 후 멈추는 완료형이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진행형일거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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