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눈치없는 소름
난 소름이 잘 돋는 편이다. 사람들은 보통 추울 때나 공포감을 느낄 때 소름이 돋는다. 근데 난 맘에 없는 얘기를 해야 할 때도 눈치 없이 종종 소름이 돋아 혼자 뻘쭘해지곤 한다. 살다 보면 맘에 없어도 무언가 의례적인 반응이나 얘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새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친구에게 지금보다 예전 스타일이 훨씬 좋았다거나, 지인의 아이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버릇없는 아이는 난생 처음 봤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때와 장소에 맞게 적절히 에둘러 반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놈의 눈치 없는 소름이 목과 뺨에 번진다. 쌀쌀한 날씨면 온도 탓을 하겠지만 따뜻한 계절에는 나의 뻘쭘해진 큰 손바닥으로 얼굴을 어색하게 가리거나 슥슥 문지른다.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나 혼자 뭔가 거짓말을 들킨 것 같은 멋쩍음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더 추가됐다. 누군가가 나에 대한 좋은 얘기나 칭찬을 내 앞에서 할 때다. 의례적인 칭찬이 아닌 진정성이 느껴졌고 나의 얼굴에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상대방의 칭찬을 담을 그릇이 되지 않는데서 오는 민망함 때문이었다. 나를 잘 안다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언젠가부터 남들이 나에게 느끼는 '나의 삶'과 내가 느끼는 '실제 나의 삶'간에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속 불편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고 자문해보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아는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나에 대한 누군가의 좋은 평가나 칭찬이 그 사람들의 진심이라는 걸 알기에 그 진정성 앞에서 나의 마음은 오히려 작아진다. 고마움과 민망함의 비율을 굳이 따지자면 4:6이다. 민망함의 크기가 고마움보다 크니 얼굴에 소름이 돋는 건가? 새로운 경우라 몇 번 더 관찰해야 할 듯....
"그렇게 생각해주니 내가 오히려 고맙네. 근데 한 40%만 덜어내고 받을게. 칭찬이 너무 과해서 내가 체할까 봐..."
웃음 섞인 농담으로 민망함을 감추긴 했지만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괜한 겸손이 아닌 '실제 나'라는 사람의 철저한 팩트에 근거한....
근래 나 자신에게 계속 실망 중이다. 출판 계약이 마무리 된 후 지난 2개월 동안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강박 아닐까라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해보려고도 했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절박하지 않음에서 오는 명백한 게으름이라는 걸...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가는 올 한 해, 동시대 사람들이 모두 겪고 있는 일을 좋은 핑계 삼아 무계획한 시간을 보냈다. 작은 성취에서 오는 여운을 너무 오래 안고 있기도 했다. 빨리 빠져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공백이 너무 길었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예전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실행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뭐가 부족했던 거지? 신청했던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외부 활동이 제한되었던 코로나 때문에?? 어느 정도 맞긴 하다.
MBTI에서 구분하는 내향성과 외향성의 특성을 보면 내향성의 경우 외부 세계보다는 자기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에서 에너지를 받기에 사고나 사색에 집중하며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쌓고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외향성의 경우 외부 세계를 지향하고 바깥에 나가 활동을 함으로써 에너지를 받기에 폭넓은 대인관계를 쌓고 글보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편한 행동 지향형이라고 설명한다.
난 MBTI상 외향형이지만 내향형과 외향형의 정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사람 간 관계에서 에너지를 받기도 하지만 혼자 끊임없이 사색하고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좋아한다. 머릿속 생각이 한번 더 글로 정제된 후 지인들과의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말로 표현했던 생각들이 글로 옮겨지기도 한다. 혼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외향형이 조금 더 높긴 하지만 두 성향의 비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이유일 거다.
나만의 시간을 통해 받는 에너지와 외부세계를 통한 인간관계와 활동을 통해 받는 에너지가 나에게는 모두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난 반년의 시간은 외부에서 받아야 하는 에너지가 철저히 배제돼 내부 에너지만으로 버티는 시간이었다. 상반기 원고 집필 기간 중에는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책상머리를 지켰던 날도 비일비재했다.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충전 없이 내부 에너지만으로 꾸역꾸역 버티니 집콕이었음에도 식욕은 더 떨어져 오히려 살이 빠졌다.
'음.... 쓰고 보니 정말 그럴듯한 이유 같네'.
중요한 건 이 또한 이유로 내세우기에는 구차하다는 거다. 남 탓 외부 탓은 얼마나 없어 보이는 일인가!
"언니 또 뭐 하려고? 아이고, 뭐가 그렇게 맨날 바빠?"
"한 동안 쉰다며? 뭘 또 배우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뭔가 하나를 끝내고 긴 휴식보다는 짧게 쉬고 다른 실행으로 넘어갔다. 누군가는 여행이나 휴식에서 에너지를 충전하지만 누군가는 무언가를 실행함으로써 에너지를 충전한다. 난 후자다. 뭔가 한다는 건 나의 체력적인 에너지를 쏟는 일이지만 정신적으로 받는 에너지가 나에게는 더 크다. 그 에너지는 일상의 활력으로 돌아온다. 그걸 잘 아는 내가 지난 2개월 간 2개월이 마치 4개월이라도 되는 양 늘어져 있었다. 뭐가 부족했을까? 아마도 절박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까지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 여력이 되는 것에서 오는 막연한 안정감이 계속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반성 중 과한 평가를 들었으니 나에게 떳떳하지 않아 소름이 돋았던 거다. 어떻게 나는 소름조차도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것인지!!! 내가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 채우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잘 알고 채우기 위해서는 사고하고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과정을 지금처럼 계속 반복해야 한다. 아마도 평생의 과제가 아닐까? 잘 알면서도 삶에서 항상 실천하는 건 늘 어렵다.
나의 삶의 목표는 멋있는 어른으로 나이 드는 거다. '멋있음'의 기준은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다. 남이 나를 인정하는데서 오는 만족감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 기준치를 낮춰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 낮춘 들 모를 내가 아니니까. 자기반성을 끝내고 다음 도전을 이어가야 할 적절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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