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
JTBC '청담동 살아요' 130화 '행복 전도사들' 중에서
전도사 : "저희랑 같이 나가세요, 여기서 별로 안 멀어요, 진짜 행복이 눈앞에 있는데 왜 안 가시는지 정말 답답해요"
김혜자 : "두 분이요 별로 행복해 보이질 않아서요, 옛날에 정말 행복한 어르신 옆에 간 적이 있었는데 나한테 아무 말 안 하셔도 그분 옆에 있으면 그냥 편안하고 좋더라고요,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 같고요. 전도라는 게 별거 있나요? 자기가 먼저 자기 인생에 깊숙이 빠져 들어가서 정말 행복하게 살면은 옆에 사람은 뭐 자동적으로 배우려고 하고 시키지 않아도 따라 하고...... 이 나이 되니까 그러네요, 정말 행복한 사람이 하는 얘기 아니면은 귀에 이렇게 별로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전도사 : (흠칫 놀라며) "어머! 모르시나 보네. 우리 정말로 행복해요, 우리 진짜 행복한데!! 어머 모르시는구나!"
김혜자 독백 :
진짜 행복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닦달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확실히 안다. 내 자식 닦달하는 것도 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고로 세상 아버지들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대사다. 김혜자 님의 대사와 독백이 특히나 마음에 와 닿았던 건 평소 내가 생각했던 부분을 건드린 대사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인품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품격이나 됨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낮은 확률이지만 살면서 아주 가끔 인품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스스로를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지식을 과시하지도 않고, '나 이런 사람이에요' 하는 존재감으로 어필하려 하지도 않는다. 매사에 조급함이 없다. 그냥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안다. '이 사람이 뭔가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인품이 느껴지는 사람은 스스로 의도함이 없이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스스로 알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다.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란 그럴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향기란 주체의 의도함 없이 퍼져서 누군가의 후각에 스며든다.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갖은 사람이 풍기는 인품은 그런 향기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맡지 않으려고 해도 그 존재감이 나에게 와 닿는 그런 거 말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종교적 성인 (聖人)들이나 마더 테레사 같은 위인전에나 나오는 분들 말이다. 난 그런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분들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같은 현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드물게 좋은 향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다.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는 그 사람이 전달하는 좋은 에너지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 그 좋은 에너지가 향기처럼 스며들어 계속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같이 있으면 내게도 그 좋은 에너지와 기운이 미칠 것 같으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품격이 완성되려면 정의(正義), 신의, 신뢰, 선의, 인덕, 진정성, 올바른 가치관, 자기 성찰, 언행일치, 선행, 기여 등 수많은 요소들을 품는다고 생각한다. 요소들 모두 각각인 것 같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궤를 같이 한다.
어느 정도의 의식 수준에 도달해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품으려면 살아가면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수행이라는 긴 여정의 시간 없이 어느 순간 벼락 맞은 것처럼 큰 깨달음을 얻어 변하는 건 없다.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인간이 원래 생각의 습관대로 돌아가려는 관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스스로를 잃지 않는 자기중심을 갖고 같은 향기를 품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
우리는 일상에서 존재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미친 존재감, 압도적인 존재감, 강렬한 존재감 등등... 바로 앞에 강조하는 형용사와 함께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이런 존재감은 보통은 위치나 영향력을 포함한다.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갖는 사회적인 위치가 뒷받침되었을 때 나오는 존재감인 경우가 많다. 난 이런 존재감을 일시적인 존재감, 사회적인 존재감이라고 칭한다.
회사 혹은 사회에서 높은 위치로 올라갈수록 그 사람의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감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런 사회적 위치가 모두 사라졌을 때도 그 사람이 똑같은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느냐는 거다. 사회적인 위치에서 오는 존재감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이다.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나의 위치에서 오는 사람들의 존중인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거품들을 다 걷어내고도 여전히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가질 때 비로소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를 갖추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거다. 사회적 위치나 영향력에서 오는 존재감은 그 껍데기가 사라지고 나면 공허한 경우가 많다. 무소불위의 위치에 있을수록 스스로에 대해 더욱 냉철히 판단하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에게 만약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오는 달콤함에 넘어가지 않고 늘 그래 왔던 어제의 나의 신념과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나의 위치나 영향력에 의해 쉽게 흔들릴 '나'의 중심이라면 그건 상황에 따라 변할 일시적인 존재감일 뿐이다.
나 역시도 인품에서 우러나는 향기, 존재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갖추는 건 지금으로서는 대. 단. 히.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고... 지금 현재가 아닌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언젠가 먼발치에라도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향기있는 어른으로 나이들고 싶다. 대단히 요원해 보이는 그 원대한 소망을 조심스럽게 마음에 품은 채 지금도 나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는다. 나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타이틀 이미지 : 개인소장
*개인소장 사진 외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