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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리셋코치 Mar 15. 2022

에너지 뱀파이어를 대하는 나의 자세

예의 바른 거리두기와 적당히 거르기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표현이 있다. 내가 들었던 표현 중 무릎을 탁 쳤던 몇 안 되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뱀파이어'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체력이 허약했던 난 나의 에너지를 뺏어가는 모든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살았다. 어려서부터 그래 왔는데 그게 나의 생존본능이라는 건 서른을 넘기고서야 깨달았다. 


무거운 거 드는 걸 싫어하고 체력이 방전될 땐 무조건 택시를 탄다. 처음 본가에서 독립 후 온라인으로 조립가구 몇 개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글만 읽으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난이도인 양 불친절한 설명서에 어이없어 한숨이 절로 나왔고 결국 그 한 숨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다음부터는 비용이 들더라도 무조건 완제품만 주문하거나 매장에서 확인 후 구매한다. 


비용을 아끼는 대가로 다른 건 포기해도 나의 체력만큼은 언제나 협상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무리한 노동의 대가는 이후 며칠 간 컨디션 난조로 이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것, 내 몸의 상태를 스스로 깨달아 모든 에너지를 다 쓰지 않고 적당히 남겨두거나 조절하는 것으로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그래도 무리 없이 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심했음에도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그래도 몸이 안 좋아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용어에 무릎을 탁 쳤는지 이해가 갈 거다. 불 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난 그런 종류의 사람들도 피한다. 같이 있으면 힘들고 기운을 받기보다는 나의 기운을 뺏는 사람들. 에너지 뱀파이어들...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UCLA 정신과 임상교수인 '주디스 올로프'라고 한다. 원래는 정서적 뱀파이어[emotional vampire]라는 표현을 썼는데 올로프 교수는 정서적 뱀파이어에게 시달린 사람은 피곤해지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며 기분이 가라앉게 된다고 설명하며 사람들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관계에 있다는 걸 지적했다.     



에너지를 아끼려는 생존 본능이 강한 내가 피하게 되는 에너지 뱀파이어는 보통 세 종류다.



끊임없이 떠드는데 요점이 없는 사람



듣는 건 싫어하고 들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네버엔딩 스토리를 쏟아내는 사람



이 밖에 번외 몇 가지를 살짝 더 얹자면…



그칠 줄 모르는 연예인 가십, 누군가의 험담, 부정적인 에너지 뿜뿜, 상대방 성향을 고려하지 않는 열혈 종교 혹은 정치 얘기...



눈치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보통 이런 사람들의 경우 상대방 감정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 자신이 먼저다. 느낄 정도로 표 내지 않는 한 그칠 줄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뺏어 자신들의 에너지를 채우는 에너지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뱀파이어를 퇴치하는 법은 없는 걸까?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가까워지기 전인 관계 초반에 거르는 거다. 그러려면 사람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빼도 박도 못하는 어중간한 시기까지 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계속 봐야 하는 관계일 경우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직장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다. 내 맘에 들고 안 들고는 중요하지 않은 곳, 내가 누군가를 대놓고 싫어하거나 거르게 되면 오히려 나의 평판에 문제가 생기는 곳... 


이런 곳에서 에너지 뱀파이어를 만난다면? 


나는 이런 경우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의 관계만 유지한다. 또래이더라도 일부러 말을 트지 않고 존댓말을 유지해 예의 바른 거리감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난 공감과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과 있을 때는 평소처럼 공감 언어[일종의 본능적인 추임새]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들보다 공감 언어 사용에 능하다. 


어머, 진짜요?

웬일이야!

되게 속상하셨겠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아! 그래도 진짜 다행이네요!


진심이 담긴 채 저절로 나의 입이 뱉어내는 이런 공감 언어가 에너지 뱀파이어와 있을 때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감이 가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신의 부정적인 언어나 험담에 동의하는 언어를 보태고 싶지 않으니까. 그건 나 자신의 격까지 떨어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계획된 의도성도 살짝 얹는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대화나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 좀 길어지는 것 같을 때 이러한 계획된 의도가 나의 말과 행동에 살짝 묻어 나온다. 


'너의 얘기가 나는 지금 쫌 지루해'라는 걸 상대방이 살짝 눈치챌 정도로만 표현한다. 긴가민가 할 정도로만 건성으로 흘려듣고 무심히 반응하는 고도의 스킬을 활용하는 거다. 그런데 중요한 건 상대방과의 관계성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 자칫 과하면 탈 난다. 




세상은 넓고 좋은 사람은 많다.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 줄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라는 건 아니다. 그건 나만 손해 보는 행동이니까. 나의 에너지를 뺏어가는 에너지 뱀파이어에게는 예의 바른 거리를 두고 나에게 무례함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화나 분노 대신 단호함으로 대처하는 것. 


무례함에 화나 분노로 대응하는 것 또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한정적인 직장 생활! 인간관계에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우리는 더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 관계에 있어서의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가 필요하다. 에너지 뱀파이어에게 적당히 예의 바른 거리 두기, 평소대로 온전히 공감과 경청 표현하지 않기, 때로는 집중력 떨어지는 나의 상태를 살짝 알리기...


사실 관계에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각 상황과 관계성에 맞게 나 스스로 표현 정도를 조절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다. 


소중한 나의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지 않기 위해 관계 초반에 적당히 거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적당히 예의 바른 거리를 두면서 살자! 관계의 질을 고려한다고 해서 관계의 양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이건 내가 경험해보아서 확실히 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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