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sns를 보다가 가끔 현실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일면식도 없고 살아서 스칠 인연도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내 눈과 관심은 이미 온통 화려한 명품으로 가득한 삶 속을 정신없이 훑어내려간다. 집도 차도 번쩍이지만 일상도 온통 세계 여행에 가구는 물론 식기까지 유명한 명품으로 갖춘 걸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순식간에 비교지옥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돈은 언제 벌며 쓰기만 하는 삶을 저렇게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떨어지지도 않고 유유히 살 수 있을까 싶어 현타가 왔다.
대체로 나무나 꽃을 좋아하고 친환경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품에 아예 관심이 없지는 않다.
가장 사치스럽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모아 무료로 관람하는 박물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사치스러움을 뛰어넘는 명품만이 가진 고상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들 가격은 모르지만 특별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물건에는 무의식적으로 집중시키는 부분이 있다. 가격을 알고 나서는 바로 거리감을 느끼긴 하지만 말이다.
서울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했을 때 유독 마음공부를 시켰던 감정은 위화감이었다. 마침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일을 한참 하게 된 경험이 심미안을 높여주기도 했지만 살림살이의 격차를 제일 많이 느끼게 해 줬던 동네이기도 했다. 그때 여러모로 부러움을 많이 느끼고 체념하고를 반복해 무뎌진 경험이 내 속에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 sns를 보자 삶의 격이 다른 학생들을 가르쳤던 어린 내 모습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 어린 학생들은 이제 대부분 결혼을 했고 자기 사업을 하거나 유학을 가서 잘 살고 있는 것을 봤고 또 내가 보는 sns에서의 삶을 살아갈 걸 상상하니 이유도 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초라함을 느낀 것이다.
친정은 산골에 귀농을 하고 있어 작은 텃밭이 있다.
그 작은 텃밭에 얼마나 많은 곡식들이 자라나는지 수확하기 바쁘게 자라난다.
오랜만에 간 딸이라 돌아오는 길에 오이며 가지며 수북이 박스째 담아주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를 털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전에 오며 가며 받은 채소들이 그득그득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라 제일 풍성할 때 이기도 하다. 정신없이 다듬어 정돈하면서 문득 이 채소들이 나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정성 들여 길러 주신 채소라 너무 감사하다. 이 감사함은 간사하게도 금방 시들해져 버린다.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쩔 때는 너무 많아서 먹지도 못한 채 버려진 것도 많다. 그렇게 가득 쌓인 채소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가 점점 저걸 다 영양소로 흡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자산만이 자산으로 매겨지는 요즘이라 텃밭 채소들을 나도 모르게 저평가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엄마가 금융자산을 남겨주지 않아 서글픈 눈물보다 그득그득 담아주셨던 채소박스가 더 그립고 마음 깊게 사무치지 않을까 돌이키게 됐다.
유산을 유산답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지성호우와 함께 집 안 가득 습기가 가득 찼다.
습기가 가득 차니 사람도 못살겠지만 우려했던 대로 작은 화초들도 무름병이 오거나 병충해로 점점 죽어나갔다. 화초가 죽을 때 끝까지 지켜보는 편인데 애써 만든 작은 잎새까지 마르면 그때 처분하는 방법을 쓴다.
그때 그 화분 속에 채 녹지도 못하고 남아있는 비료가 보인다. 비료가 채 흡수되기도 전에 죽어나가는 것을 보니 허탈했다. 그럴 때면 죽어간 화초가 아까운지 흙이나 비료가 아까운지 내 속마음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내 냉장고 속에 채소를 가득 넣어주신 부모님 마음속에서 답을 찾은 것 같다.
내 모습이 장마에 죽어버린 화초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내 화분 속에 흙과 비료가 가득한데 마치 저 멀리 보이는 화초에 집중하다가 채 자라지도 못하고 말라버리는 화초 같았다.
적어도 부모님이 주신 유산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자각이다.
sns 속 일면식도 없는 그녀는 아마도 부모로부터 금전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나는 정성이 깃들인 무공해 채소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sns 속 그녀는 돈을 써도 써도 계속 생겨나서 명품을 사게 되고 나는 채소를 먹어도 먹어도 계속 생겨나서 끊임없이 요리를 해 소비하게 된다. 그뿐이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좋다고 평가할 필요도 내가 그녀보다 더 좋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도 자신도 모르는 유산이 있는지 돌이켜 보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 너무도 당연해서 빛을 낼 생각도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잘 다듬어 당신만의 밑거름으로 써보길 기대한다.
여름이 되니 제라늄은 무름병이라는 것이 흔하게 찾아온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자라는 듯한데 어느 순간 까맣게 물러서 죽어간다. 우리 마음속에 혹시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생각을 하진 않는지 마음을 잘 살피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
* 이번주 미션
나만의 유산 찾기
내 안의 무름병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