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생각보다 불쑥 찾아온다.
오히려 내가 비참하게 구를 때는 그런 감정이 주인공처럼 찾아오지는 않는다. 뒤엉켜 흔들릴 때는 기억이라는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 그저 구르는 것만 멈추기 바쁘니까 말이다.
날씨가 참 좋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고 시간적 여유가 피부로 느껴질 때 그런 불청객이 찾아온다.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기억이 맑은 물에 떨어진 아주 작은 잉크 한 방울처럼 전체를 물들일지 한 부분에 더 어둡게 머무를지 고민하는 사이 내 모든 시야는 그 잉크가 도대체 뭔지 분석하기 바쁘다.
처음엔 그저 기억을 덜어내려 물장구를 쳐본다. 그래봐야 생각 속의 생각이라 꿈속에서 꿈을 모른 척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 기억은 불쾌함으로 다가온다. 거부감으로 온종일 다른 일을 하며 덮어본다.
정신없이 다른 일에 몰두해보기도 하고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두어 그 일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진심을 다해해보기도 한다. 몸과 생각이 마치 기억 하나가 전혀 다른 영역인 것처럼 따돌려본다.
그럴수록 그 기억은 맹렬하게 더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나조차 거들떠보고 싶지 않고 다시는 누군가에게 떠올려질까 봐 덮었던 일이었다.
어른이 된 내가 본 그 일은 하찮은 실수 같은 일인데 그게 아팠고 그 일이 수치심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제 우연히 밥을 먹으며 보게 된 프로에서 매머드의 상아를 발굴하는 장면이 나왔다. 특이한 직업 소개였다.
꽝꽝 얼어버린 얼음과 진흙을 세척하고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상아를 찾는 엄청 힘들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 작업은 무의식에서 나를 소리 없이 조종하는 감정적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것과 매우 비슷했다. 일상에 조용한 볕이 스며들면 그때 오히려 내 마음속 무의식이 보이는 시야가 트이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의 감정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 일은 여전히 싫었고 그걸 기억하는 내가 더 싫었던 것 같다. 그런 일은 누군가에게 쉽게 공감받기 어려운 일이고 나 자신이 담담히 나의 업보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알고 있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도망쳐 돌아 돌아 그 일이 일어난 장소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때서야 떠올랐다.
내가 이 장소에 우연히 오게 된 것일까?
이것은 필연적으로 기억이 부른 것이다.
나의 마음속 깊은 무의식이 이젠 그만 그 증오심을 나의 수치심을 놓아달라고 기억이 부른 것이다.
내 일상은 마음속 요동치는 감정과는 다르게 매우 잔잔하고 심지어 아름다울 때가 많았다.
심지어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 머릿속은 복잡해도 그야말로 생각 속의 나쁜 생각이고 꿈 중의 나쁜 꿈을 덜어낸 것이라 그저 얼굴 빛깔에 새로운 등 하나가 켜진 것과 같았다.
그러니 생각 속의 나는 뒹굴고 있는 느낌이지만 겉으로는 오히려 나쁜 기억에서 분리돼 맑은 얼굴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면 내가 되려 그 속에 휩싸일까 봐 걱정했다.
다행히 기억과 감정이 분리되어 떠올랐고 그 시절의 내 불행을 온전히 봐줄 수 있게 되었다.
봐줄 수 있다면 놓아줄 수도 또 가끔 찾아와도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잉크방울처럼 번질 줄 알았던 그 사건은 오히려 표상으로 떠올리자 감정이 마르고 실밥처럼 본질이 드러났다.
내 일상을 짜는 큰 짜임 중에 작은 실밥이었다.
감정의 파도를 타고 있을 때는 내가 일렁일 수밖에 없는 바다인 줄 알았는데 감정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맑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내가 직시되었다.
온전히 바라봐 주자 잉크 방울은 말라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물론 잉크방울을 담고 있던 감정도 말라버렸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