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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에몽 Dec 10. 2021

유라쌤네 교실_학급자치(3)

레슨3. 다수결의 의미

2021학년도의 키워드는 '학생 주도성'.

학생 주도성을 기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유념하며 진행하였습니다.


1.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스무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이니 천천히.

2. 갈등을 무서워하지 말 것 - 갈등을 잘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목표니까 

3. 교사가 쉽게 해결하지 말 것 - 앞장서서X 한발짝 뒤에서 등불을 들고. 아이들 스스로 더듬더듬 갈 수 있게.


레슨1. 기본법 만들기 https://brunch.co.kr/@uraura/7

레슨2. 규칙에는 금지만 있을까? https://brunch.co.kr/@uraura/8



평화로운 일주일이 지났다.

금요일 청소 쉬기를 얻은 아이들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매주 금요일 6교시를 학급회의 시간으로 정하고 진행하는데,

별다른 안건이 없으면 선생님 시간으로 쓰겠다고 한 터.

하지만 금요일 청소를 얻은 아이들이었기에 수업을 1시간 더 안 하고 싶은 마음에 꼭 회의를 하겠다 한다.

(나중에 따로 쓰겠지만 주도성을 키워주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의 시간을 가지고 주도권 싸움이 심해진다.)


안건을 생각하다 "체육 자유시간에 뭐할지 정하기"로 잡았다.

체육 선생님은 수업 1차시당 스탬프를 2개씩 주는데 20개를 채우면 자유시간 1시간을 준다.

이때 자유시간에 뭐할지를 정하고 싶다는 것. 

학급회의 순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편하게 이야기를 해나갔고 "피구"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피구 팀을 어떻게 할지. 

이때는 몰랐다, 피구팀 정하기가 이토록 치열한 토의 주제가 될 줄이야. 총 7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피구팀 짜기 1차 회의 #다수결 #비슷한아이들끼리가위바위보

아이들은 그동안 피구팀을 어떻게 짜왔을까. 내는 의견을 보면 알 수 있다.


-비슷한 애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한다.

-홀수 짝수로 나누어서 한다.

-뽑기로 정한다.


아이들이 그동안 했던 3가지 방법 모두 반발이 많았다.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고, 이에 따라 아이들은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으며,

다수결에 따라 15표를 얻은 '비슷한 애들끼리 가위바위보 하기'가 결정되었다.

이유는 아직 서로의 피구 실력을 잘 모르는 상태고, 

그런 상황에서는 피지컬(!)이 비슷하게 분배되어야 하기 때문.


그렇다면 다음 질문, 

"비슷한 아이들은 어떻게 정할까요?"

1) 피지컬이라는 단어가 이전에 나왔으므로, 키 순으로 정하는 것이 결정.

2) 남녀 분배를 위해 남자, 여자 따로. 


그래서 결론은 키 번호 순으로 2명씩 짝을 지어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팀과 진 팀으로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1차 피구팀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나름 만족스러워 보였다. 꽤나 멋지게 꼭 해야 할 과정을 지켜 결과를 도출했으니.


피구팀 짜기 1차 회의 결과 #다수결이좋은걸보장하진않아


그 다음주 목요일, 피구하고 돌아오는 아이들 표정이 영 별로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어요."

한 쪽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는데 이긴 팀도 진 팀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아이들 표정이 안 좋은데 선생님은 속으로 아싸 하는 상황.

아이들의 실제 상황을 그대로 수업에 가져올 좋은 상황이라 그렇다.

바로 '회의의 결과가 항상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는 않는다'는 중요한 진리와,

더 좁게는 '다수결은 단지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 뿐. 그것이 옳다, 좋다 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민주주의 의사결정의 원리를 알려줄 좋은 기회!!!!



아이들과 사회(정치-민주주의의 원리)시간에 다시 이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사회수업 시간.


"여러분, 왜 재미가 없었나요?"

"한 쪽이 너무 잘해요." 

"잘 하는 팀은 그럼 재미가 있었나요?"

"아니요. 시시하기도 하고."

"그럼 팀 구성이 잘못되어서 재미가 없었다, 맞나요?"

"네!!! 팀 이상해요!!!" (하며 서로 갑자기 티격태격함.)


"이 팀은 어떻게 정해진 거죠?"

"학급회의로 정했어요." "다수결로 뽑았어요."

"맞아요. 학급회의를 통해 여러분이 의견을 직접 내고, 다수결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잠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이야기해보도록 했으나 정확하게 이 내용을 설명해내기는 어려웠다.

뭔가 다수결이 틀린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맞는 것은 아니고? 이런 식의 아이들의 대답. 


"우리는 무언가를 공정하게 정할 때,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다수결로 결정을 해요.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공정한 과정을 위한 것이지, 즐겁거나 재미있거나 바른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다수결이 틀린 것일까요?"

"...음.. 아니요..."

"맞아요 다수결이 틀린 건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또 여러분들이 그동안 경험한 대로,

다수결은 공정한 과정을 위한 것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결과를 내주는 방법이라

민주주의 의사 결정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예요. 

다수결이 틀리지 않았다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요?"

"음..."

"선생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볼게요. 

비슷한 사람들끼리 가위 바위 보 해서 팀을 정하자에 손 들었던 15명 한 번 일어나 보세요."

(아이들은 혼내려고 하나..쭈뼛거리며 일어나고 서로 너 그때 손들었잖아 난리난다... 우리 반도 똑같다.)


"여러분은 이 의견에 찬성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나마 3개 중에서는 제일 공정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우리는 피구 실력을 잘 모르니까..."

"그래도 제일 비슷한 실력으로 나뉘지 않을까.."


이번에는 다른 의견에 손을 든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럼 다른 의견에 손을 든 친구는 그 이유가 뭔가요?"

"그래도 뭐.. 실력을 모르는데 뽑기로 하는게 팀이 잘 섞일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냥 운에 맡기려고요."


"방금 여러분들이 한 말 속에 문제점에 관한 답이 있어요. 뭘까요?

힌트는, 그나마. 어차피. 그래도, 그냥... 이라는 말입니다."

"아!!!!!! 어쩔 수 없이? 제일 좋은 게 아니라?"

"정답! 맞아요. 


"손을 들어 투표를 할 때 여러분 중에 이게 가장 좋은 의견이고 최고의 선택이라 손을 든 친구가 없었어요. 

다들 그래도, 그나마. 이런걸 차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다수결의 선택이 조금 더 올바른 결과로 가게 하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요?"

"음.. 의견이 좋아야 해요...?"

"맞습니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좋은 의견이 나와야 하죠.

그럼 좋은 의견은 어떻게 해야 나올까요?"

"음 의견을 많이 내면?"

"생각을 많이 하면?"

"맞아요. 많은 의견과 많은 생각. 이런 걸 우리는 토의 토론이라고 해요."

토의 토론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매우 싫어한다. 

"여러분은 토의 토론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토의 토론은 이럴 때 쓰기 위해서 있어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어떤 것은 선택되고 어떤 것은 탈락되고, 이런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나오게 하고, 

혹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상대방의 질문을 통해 돌아보게 하고,

그렇게 나온 의견들을 조합하고 더하고 빼가며 우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 

모두가 공감하는 해결책을 마련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머리를 맞대는 방법이지요.

충분한 논의, 다각도의 관점에서 바라본 후에 나온 의견이 나왔을 때,

그 의견 중에서 다수결, 즉 다수의 공감과 지지까지 얻었을 때,

조금 더 나은 결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수결을 배우기 전에 먼저 대화를 배웁니다. "



(4편에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오늘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1. 다수결의 결과가 항상 옳은/재미있는/바른 결과를 장담해주지는 못한다. 

2. 조금이라도 은 선택이 되려면 다수결 전 충분한 토의 토론, 서로간의 대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토의 토론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리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멋진 방법이다. 




-


피구 팀 정하기에 쏟은 시간은 어마어마했다.

학급회의 시간을 7번 썼고, 그 와중에 사회 수업을 3-4시간 정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피구팀이 잘 돌아가는지) 창체-학급특색시간도 썼다. 

이 과정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었는지야, 아이들의 마음 속을 몰라 알 수 없지만,

굳이 고작 피구 팀 정하기에 이렇게 시간을 쏟아야 하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100%의 확신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교사 교육과정, 학생 중심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학생의 삶이 앎이 되도록 연결하는 재구성이고,

아이들의 삶의 장면에서 교육을 구성하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13살 아이들의 삶에서 피구 팀 정하기는 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이니,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유치해 보이고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분명히,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로 보였다.


그래서 (안전,건강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제외) 갈등이 일어나면 아싸, 한다.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앎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신이 난다. 그것이 곧 수업이 된다. 

그렇게 아이들이 질문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질문하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을 놓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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