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대 중반 서른 즈음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sns와 영상으로 소통을 하지만, 당시에는 포털 사이트가 대세였습니다. 각종 정보가 한 곳에 모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인터넷 공간입니다. 인터넷이 뻥 뚫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새로운 IT기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디지털카메라와 mp3 플레이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정보의 속도가 사람들의 인식의 속도보다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흔히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은 고삐 풀린 IT기기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열광하며 쫓아가는 시대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시절의 상징이었고 초고속과 혁신이 모든 광고의 문구에 담겨있었습니다.
모든 정보가 포털 사이트로 모였습니다. 사이트에는 주제별로 게시판이 만들어졌고 서로가 원하는 정보를 찾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게시판이었지만 당시에는 혁명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생각을 남기면 거기에 댓글이 달리고 댓글에 댓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세대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지만 그 당시만 해도 포털 사이트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 세대가 중심이었습니다.
비슷한 세대가 비슷한 생각으로 글을 남기다 보면 생각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신념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 독일의 가난한 청년 아돌프 히틀러는 뮌헨의 맥주홀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에 감동한 군중은 나치당의 모태가 되었으며 십여 년 뒤 그들은 독일의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신념은 때론 무지성을 지성으로 둔갑시키기도 합니다. 모든 글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게시판에 올라오는 몇몇 글들은 신념과 다른 신념의 대립으로 난장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로 서로의 공감을 이끌다가도 누군가 다른 생각을 표현하면 공격적인 언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그런 글을 보고 있으면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유저(user)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시글이나 댓글도 그리 많이 남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논쟁이 길게 이어지는 글을 읽다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짧은 댓글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만 좀 하지...."
그런데 글을 남긴 유저가 제 아이디를 지명하며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네가 제일 재수 없어."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 말고도 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은 많았고 심지어 입에 담기도 실은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내 댓글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아주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저는 내 글에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언급했습니다.
왜 내 글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묻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내 글에 그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과 그도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흘러 불쾌한 기분이 가시자 인터넷 공간에 남기는 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 없이 글을 남긴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지 않으면 악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 악플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에서 글을 쓸 때는 낮은 자세로 글을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인생 첫 dslr 카메라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취미로 사진을 배우고 있었던지라 잘 찍은 사진을 골라 종종 사진 사이트에 올리곤 했습니다. 그중 하나의 사진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화이트 밸런스 좀 잘 맞춰봐라."
'뭐지? 이 인간?'
순간 신나게 사진을 작업하고 올리던 감흥은 사라졌고 불쾌한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뒤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은 '당신이 뭔데!'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다행히 손가락은 생각과 반대로 흘렀습니다. 그리고 짧게 댓글에 대댓글을 남겼습니다.
"제 사진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남긴 댓글입니다. 사진이 부끄러워 하루 이틀 즘 지나면 게시물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상대방의 댓글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제가 말이 짧았네요. 니콘의 화이트 벨런스가 엉망이긴 하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남겼다면 절대로 이어질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생각과 반대되는 글을 남겼고 상대방에게 예상하지 못한 대응을 이끌었습니다. 결코 내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그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움에 올린 사진도 지워버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마음에도 없는 말이 대화의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글로 남기는 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대방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글을 남겼을까요? 진심 어린 충고일 수도 있고, 기분이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뭔가 화가 나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나는 모릅니다. 글로 만나는 사이는 서로의 삶이 어떠한지 추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글로 나누는 대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에도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글에는 좋은 대답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즈음부터 누구에게나 높임말로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를 자극하는 글에도 높임말로 글을 이어나갔습니다. 모니터 속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습관의 연장으로 내가 하는 일도 바꾸어 나갔습니다.
대학원을 진학 후, 지하철 사랑의 편지 편집일을 아르바이트 겸 맡았습니다. 협업을 하던 출판 업체들이 모두 그만두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본업이 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을 만드는 일입니다. 다른 작가의 글을 공공장소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문체로 바꾸는 과정이 내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대부분의 글은 평이한 문어체로 주어졌습니다. 나는 그 글을 모두 경어체로 바꾸고 누가 읽든지 오해하지 않도록 문장과 문체를 바꾸었습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 중에는 마음대로 바꾸었다며 기분 나빠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해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고집을 꺾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사랑의 편지는 읽고 싶어서 돈을 주고 구매하는 서적이 아닙니다. 뜻하지 않게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글입니다. 가르치는 글이 아닌 겸손한 글로, 높고 낮음이 없는 평등한 글로, 고압적이지 않은 희망과 위로를 주는 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집을 피우다 몇 번은 잘릴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경어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니 맘대로 해라.'라는 말을 듣고 지금은 마음대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더욱 무겁습니다. 책임이라는 무게가 매 달 글이 나올 때마다 어깨를 짓누릅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건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경어체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내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도 경어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왜 경어체로 글을 쓰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냥'이라는 대답이 생각났지만 돌아보면 나는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한 순간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는 여러 번의 선택을 거쳐 지금의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나의 글쓰기는 공공장소가 아닌 나만의 글쓰기 공간에서도 높임말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습관의 무서운 힘 같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 속에서 편안함을 얻습니다. 추천하는 글쓰기는 아닙니다. 친절도 과하면 생각의 속살을 감추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나만의 문체에 거짓을 빼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된 문장으로 가다듬는 훈련입니다.
솔직한 고백 하자면 내 글에는 여전히 위선의 때가 끼어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허물을 감추는 글이 생산되곤 합니다. 솔직함에 이르기란 참 어려운 길 같습니다. 그래도 경어가 나에게 편안한 글이 되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린 걸 생각하면 진솔한 글쓰기도 10년, 혹은 20년 뒤에는 가닿아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달라질 내 모습과 변하지 않을 모습을 함께 기대하며 꾸준히 글을 써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