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처음엔 대학원을 다닐 때 아르바이트 겸 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지인의 부탁으로 지하철 역사 내에 설치된 사랑의 편지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사랑의 편지는 제법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87년에 엽서 형식으로 시작된 편지는 지금의 포스터 형식으로 바뀌기까지 오랜 기간 열차 승강장의 한 편을 지키고 있습니다. 개통 초기, 지하철 승강장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흔한 광고판도 스크린 도어도 없었습니다.
신문 가판대가 음료 자판기와 나란히 양쪽 승강장에 있었고 쓰레기 통 옆에는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지하철 개통 초기에만 해도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철로에 버려진 담배꽁초 줍는 일과 승강장 바닥에 눌어붙은 껌 떼는 일이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지금의 깨끗한 지하철 환경은 시민의식의 놀라운 성장
덕분입니다.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지금은 볼거리 읽을거리가 많지만 당시에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2호선이 개통할 때쯤 종교 기관과 지하철 공사와 협업으로 시민들에게 좋은 글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엽서 통을 벽면에 부착하고 짧은 우화나 에세이가 적힌 우편엽서를 하나씩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비치되는 순간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공사 측과 협의 끝에 지금처럼 포스터 형태로 벽면에 부착되게 되었습니다. 운영 초반에는 출판 업체의 도움으로 글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책 광고가 조금씩 실리다 보니 공사 측의 요구로 비영리 단체에서 글을 전담하게 되었고 지금은 상업성을 배제하고 종교단체와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20년 전, 학업을 진행하면서 용돈을 벌기에는 이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읽을 만한 글을 매 달 4개씩 포스터로 제작하면 아르바이트 생들이 전국의 지하철 역을 돌며 교체했습니다. 내 이름의 글은 아니었습니다. 종교 단체의 지원으로 시작된 사랑의 편지는 주로 목회자, 교수, 수필가, 시인 등이 참여하였고 글이 보내지면 포스터 규격에 맞춰 글을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편집이었습니다. 대부분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 편집했고 내가 하는 일은 교정 정도에 그쳤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저 깔끔하게 정돈된 글을 만드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들어온 원고를 확인하고 공공장소에 게시할 만한 글을 고른 뒤 오탈자를 고치거나 문법에 맞게 수정을 한 뒤, 인쇄를 맡기면 내게 주어진 일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내용에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책을 홍보하거나 약간의 광고성의 글이 실려도 괜찮았습니다. 오타가 있든, 비문이 있든, 문맥이 매끄럽지 않아도 약간의 감동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단어 하나, 오타 하나, 종교적 색채가 짙다거나 책 소개가 들어가면 광고성의 글이 아니냐는 항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손에 스마트한 전화기 하나씩 들고 다니게 되면서부터 였습니다. 승강장에 설치된 사랑의 편지를 읽고 포스터 한 편에 적힌 전화번호를 따라 전화를 합니다. 불편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분들의 전화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한 달에 4개의 글이 제작되어 전국의 지하철 승강장에 부착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다 보면 미흡한 부분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8, 90년대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던 글들이 2천 년대에 들어서는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편집자에게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원고가 주어지면 글을 편집하기 전에 내용의 사실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글이 공공장소에 붙일 수는 없습니다. 내용이 부합하면 읽기 편한 문장으로 변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정도만 해도 한 달에 4개의 글을 포스터로 제작해 부착하는 과정이 제법 오래 소요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승강장의 읽을거리에 눈을 두지 않습니다. 저자의 글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길고 난해하면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문장을 좀 더 간결하게 줄이고 500자 이내의 짧은 글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더 짧게 줄여보기도 했습니다. 글은 단문으로 줄이고 그림이나 사진으로 대신해서 가독성을 높이려고도 했습니다. 나쁘지 않았지만 사랑의 편지가 만들어진 최초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글의 적정 길이를 유지하는 것은 독자의 최소한의 관심을 통해 교감하면서 글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려는 의도도 숨어 있습니다.
사랑의 편지는 이름 그대로 편지이며 글로 소통하는 매체입니다. 글이 불편한 시대이지만 글이 주는 편안함을 찾는 분들도 계십니다. 많은 작가들이 전자책 보다 종이로 출판된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그럴 것입니다. 문자가 주는 편안함, 한 가지 이야기로 이어지는 리듬감, 완독 한 후 찾아오는 잔잔한 감동까지, 사랑의 편지는 짧지만 짧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꿋꿋이 문자를 통한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편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공감해 주시며, 감동을 나누고, 글을 소장하고 싶다고 연락을 남기는 분들은 대부분 여유가 없거나 외롭고 힘든 삶을 고백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분들은 이런 서비스가 있는 줄 알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이 생활이며 일상인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은 사치가 아닙니다. 부디 외롭고 무너진 삶 속에 마지막 친구와 같은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합니다.
여전히 많은 연락을 받습니다. 최근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늘어 다행입니다. 시험에 떨어진 손주를 위해 글을 보낼 수 있는지, 시골의 작은 학교에 포스터를 보낼 수 있는지, 현실의 고통을 풀어내고 위로를 받아서 좋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준 분도 계셨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50대 남성은 무작정 집을 나가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사라진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화가 난 아들은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살겠다고 작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머물 거처와 직장을 알아보던 아들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아들은 지하철에서 사랑의 편지를 읽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분은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하철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아들의 고백을 마음에 담고 지하철 사랑의 편지를 수소문해서 직접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게 실제로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으셨다는 재밌고 감동적인 고백에 감사와 뿌듯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지하철은 공공재입니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기관이 공익성을 잃어서는 안 되겠지요. 공익이라는 것은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이야기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편리함, 단축되는 시간, 업무의 효율성 등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단체는 그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 시민의 정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서비스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철거될 수도 있습니다. 35년 동안 여러 번 그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글을 씁니다. 다만 이번 달 글이 마지막이라면 그 글도 내가 작업하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한 달에 4개의 글은 시민들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20년 동안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랑의 편지는 문학적인 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글을 통해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사랑의 편지는 평범하고 단순한 글을 추구합니다. 평범하다 못해 누구에게도 불쾌하지 않을 밋밋한 감정을 찾아갑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은 작가보다 독자의 마음을 더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마음대로 쓸 수 없고 제한된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찾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다가가는 마음을 배웁니다. 지루하고 힘들고 귀찮은 과정이지만 내 마음속 세상을 더욱 크게 만드는 훈련이라 생각하면 손 끝은 제법 가볍게 움직입니다.
20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지치고 복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삶 속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안타까운 삶의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하며 이 달에도 다음 달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짭니다.
월말이 되면 제작된 포스터를 전국에 배포하고 참았던 한 숨을 내뱉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다음 달의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나섭니다. 그때의 나는 탐험가가 됩니다. 보물과 같은 아름다운 글을 찾기 위해 책을 뒤지고, 영상을 살피고, 검색을 합니다. 저작권이 비싼 시대지만 여전히 보물과 같은 자신의 글을 내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참으로 귀한 만남입니다. 이 일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거의 매일 읽습니다.
모두 좋은 글이다 보니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루틴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누구나 나눌 수 있는 글, 편안하고, 위로를 주고, 희망을 남기는 글을 만나면
제안하기를 눌러 사랑의 편지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습니다.
금전적인 이익을 드릴 수 없음에도 제법 많은 작가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혹여나 제안을 받게 되신다면 부디 긍정적으로 대답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작가님의 글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저의 믿음이 담긴 제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