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란?

by 류완


정직에 대한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재미 삼아 손도끼로 벚나무를 베어 버렸는데 나무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나무를 베어낸 사람이 누군지 묻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조지 워싱턴은 자기가 그랬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정직한 아들을 칭찬하면서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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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의 전기에도 남아 있는 이 내용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글로 밝혀졌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살던 곳에는 벚나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래전 누군가 교육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전해졌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주인공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인지라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렵지만 여전히 누구는 이 이야기를 진실로 믿으며 재생산하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원고 하나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독일 재무장관을 지낸 마티 바덴(Marty Baden)이라는 사람의 일화입니다. 여행 중 신발을 잃어버려 화가 났지만, 두 다리를 잃은 한 남성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분노를 반성하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얻게 되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글을 작업하기 전에 마티 바덴이라는 인물을 찾아 나섰습니다. 각종 사이트를 검색해 보아도 신발을 잃어버린 이야기 외에는 다른 일화나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가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고 영어로 검색하면 마틴 바덴이라는 잘생긴 미국 영화배우의 기록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화가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허구로 각색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편집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에게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면 가짜 감동일 뿐입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어를 할 줄 알면 독일 정부 홈페이지를 뒤져서라도 마티 바덴이라는 재무 장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겠지만 그럴 능력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다른 글을 찾았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일화도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 랄프 에머슨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송아지를 옮기는 에피소드는 그 글을 전달하는 사람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마당에서 꿈쩍하지 않는 송아지를 우리로 옮기려고 하는데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송아지의 입에 손가락을 넣었더니 어미젖인 냥 빨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어떤 글에는 에머슨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옮기려 했다거나

에머슨이 어린 아들과 송아지를 옮기려 했다고 쓰인 글도 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송아지를 끌고 온 사람은 늙은 하인, 노인, 에머슨의 할아버지 혹은 하녀까지 너무 다양해 누가 주인공인지 찾기가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시대가 오래 지나면 자연스럽게 유명인사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되고 기록으로 남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나폴레옹의 작은 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던 마리 앙뜨와네트의 망언 같이 이제는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이 사료의 검증을 통해 바로 잡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기록이 2차 사료나 시대적 변화에 일치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라고 표현하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록의 왜곡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오래된 사료일수록 사료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한국사를 전공하더라도 일본이나 중국의 문서를 통해 교차 검증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큰 줄기는 변하지 않더라도 사소한 부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발생하고 새로운 논문과 학설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사소한 역사가 큰 줄기를 건드리기도 합니다.


순수 학문이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가 연구하는 모든 역사는 해석하는 주체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위해,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정통성을 목적으로 자의적인 역사 해석을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문서를 들이밀기도 합니다.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큰 줄기를 건드리려는 역사 해석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현장에 있습니다. 좋은 글들은 모아져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모되고 사라지는 글도 있습니다.


좋은 글이란 뭘까요?


오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에는 가짜 나뭇잎이 등장합니다. 아픈 친구가 절망하지 않도록 가짜 나뭇잎을 달아 두어 건강을 회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나뭇잎은 가짜입니다. 진실을 모든 잎은 떨어지고 봄이 되면 새싹이 자란다는 사실이지요. 소설이기에 가짜 나뭇잎에 희망과 사랑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허구의 이야기임을 알고 있기에 소설이 주는 상상력은 자연스럽게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 줍니다.


소설의 힘입니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이야기를 전개해도 특별히 문제 삼을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소설 속 상상이 현실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체험이나 소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상상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때 명작으로 인정받습니다.


오헨리의 소설 역시 상상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공간이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밝히면서 창문으로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환자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환자보다 치료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오헨리의 소설은 기적이 아닌 치료의 더 높은 가능성을 바라본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사실처럼 말하는 거짓된 글입니다. 마치 어릴 적 동네를 돌 던 약장수의 거짓말과 같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강연과 설교, 그리고 인터넷의 글귀에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역사적 사실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이러한 명언이 아브라함 링컨의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돌고 있겠습니까.




"사진과 따옴표가 있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읽은 모든 것을 그대로 믿지 말아라."

- 아브라함 링컨





아무튼 이 말도 그럴싸한 가짜입니다. 아직도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하셨다면 당신은 정말로 순진한 분입니다.






글을 소비하는 모두에게 좋은 글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글이어도 괜찮고, 쉬운 글이어도 괜찮습니다. 재미를 추구해도 좋고, 진지하고 바른 글도 좋습니다. 문법을 잘 지켜야 된다는 생각도 옳지만, 문법에 너무 구애받지 말라는 말도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좋은 글에는 지켜져야 할 기본이 있습니다. 사실인 것처럼 꾸민 거짓, 나만이 옳다는 강요, 교묘하게 불의한 의도를 숨기거나 타인의 글을 내 글인 것처럼 꾸민 글은 쓰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기록으로 남은 글은 사라지지 않고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또 누군가에게는 혼란과 분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글도 말과 같습니다. 정직하기는 어렵지만 자신을 꾸미기에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은 시간이 흐르면 공기 사이로 흩어져 기억에서 멀어져 가지만 활자로 인쇄된 글은 불사르지 않는 한 어딘가에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퇴고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퇴고는 평범한 글이 특별한 글로 변하는 과정입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퇴고는 단지 문장과 단어의 수정만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글 속에 숨겨진 거짓과 불순한 의도를 찾아내는 수고가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마치 단단한 무쇠를 얻기 위해 제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습니다.


퇴고를 마치고도 마지막 작업이 남았습니다. 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입니다.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손을 보면서 개정 증보판을 발행합니다. 새로운 생각이 더해지거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내용을 각색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용기 있게 내용을 삭제하거나 각주를 달기도 합니다.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서 글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올라갑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 할지라도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며 늘 자신의 부족함을 살피는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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