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글의 힘

by 류완



논문 지도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에게 보여주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라.’

머리 나쁜 이의 변명 같지만, 수업 내용조차 따라가기 급급했던 시절에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노력은 사치였습니다. 당연히 초등학생은 물론이거니와 나조차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들이 난무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초등학생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글쓰기로 상도 받고 교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나의 글쓰기는 혼자만의 글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누구와도 글로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글 쓰는 양만 늘었을 뿐 소통은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대학원을 다니며 읽은 책들로 논문을 쓰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님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알 수 있게 쓰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조언 속에서 내 글쓰기의 문제점을 조금씩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이라도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써야 합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언어와 문장으로 써야 공감을 얻습니다. 혼자만의 글쓰기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나만 알면 되기에 내 세상으로 이끄는 안내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통하는 글쓰기는 친절해야 합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습득한 지식을 온전히 이해한 뒤에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와 문장들로 조합해 글을 완성해야 합니다. 좋은 글이란 이처럼 친절한 안내 데스크 직원과 같아야 합니다.






후배의 추천으로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기도 했습니다. 독서량이 많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렸습니다. 서점으로 달려가 저자의 다른 책을 구매했습니다. 멋진 표지에 넉넉한 여백을 보면서 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몇 페이지 읽고 나서 책을 덮었습니다. 드문드문 페이지를 열고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완독을 하기까지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같은 저자임에도 감동이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역자가 달랐습니다. 원문을 모르니 누구의 번역이 더 잘 되었는지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독자의 수준에 맞춰 쉬운 문장과 쉬운 단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물론 독자만을 생각해서 원작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어서는 안 되겠지요.


훑어 내리는 시선과 동시에 글의 내용이 이해되고 그 순간 감동이 함께 전해지는 글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두어 번 반복해서 읽어야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 글이 있습니다. 글을 읽는데 피로감이 밀려옵니다. 어려운 단어를 반복적으로 만나다 보면 어휘력 부족에 대한 부끄러움 밀려옵니다. 지적인 호기심과 문학적 감수성을 채우기 위해 책을 들었지만 반대로 독서에 대한 회의감만 커집니다.


화려한 문장보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을 만들어 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쉬운 글은 유치한 글이 아닙니다. 문장으로 담아낸 내 생각이 정확하고 세심하게 전달되는 글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아무리 철학적 가치가 높은 생각일지라도 이해할 수 없으면 그들만의 세상일 뿐입니다.


The.Matrix.1999.1080p.HDDVD.x264-hV.mkv_20120803_064309.005.jpg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SF영화 '매트릭스' 초반에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시옹'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네오는 부자연스러운 세상을 느낍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의심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의 책장에 시뮬라시옹이 꽂혀있는 이유입니다. 그 어려운 책을 다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실에 대한 탐구욕이 생긴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기계들이 지배하는 진짜 세상으로 돌아가 현실을 직시하고 싸워나갑니다.


그러나 시뮬라시옹이 어렵고 복잡한 사람들에게 빨간약은 사치입니다. 가짜 세상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고, 사랑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데 근근이 삶을 버텨가며 기계와 싸우는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는 건 미련한 일입니다. 워쇼스키 형제의 (지금은 자매) 영화 매트릭스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여러 번 읽어 봤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영화는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냅니다.


혁명의 구호는 간단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와 같이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킬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입니다. 정치적 구호가 그렇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돌아오는 선거의 기간이 되면 우리는 수많은 선동 문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공감을 사지 못하면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단 하나의 문구로 선거를 역전시키거나 유행어가 되기도 합니다. 선거는 만18세 이상 성인들의 투표 행위이지만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말의 싸움일지도 모릅니다. 선거의 슬로건이나 광고의 카피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들려질 때 성공한 문장이라고 평가받습니다.


081105123436_14.jpg 좋은 평가를 받았던 2008년 미국 대선 슬로건


글은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통신 장치이기도 합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소통의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문법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습관입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은 나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됩니다. 내 감정을 온전히 실었다고 생각하지만, 글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왜곡이 심합니다. 솔직하게 기록한 글이라 하더라도 단어 하나, 문장의 구성에 따라 읽는 사람은 다른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표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일지라도 기의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에게 푸른 하늘은 높은 빌딩의 창문에 비친 진하고 어두운 파란색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바다 위 수평선에 맞닿은 하늘색과 흰 구름의 조화로움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쓰십시오. 글은 내 생각을 나타내는 자유로운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글 속에 그려진 나의 생각이 타인에게 얼마나 비슷하게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 할수록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독자에 대한 배려는 읽기 편한 글을 생산하는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배려는 글에 따뜻한 마음을 담게 해주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생각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고자 하는 말을 잃고 타인의 생각에 맞추기만 한다면 잘 팔리고 잘 읽히는 책은 될 수 있을지라도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첫 번째 목적은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글 쓰는 목적은 다를 지라도 글로 표현해 내는 감정과 생각 안에는 소통이라는 내재된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신뢰가 생기고 다시 또 대화를 나누고 싶어 집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글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특별한 생각을 담은 글이 쉽게 이해될 때 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편안한 글의 놀라운 힘입니다.






아내는 종종 아빠가 쓴 글을 막내딸에게 보여줍니다. 딸의 평가가 시작되면 아빠의 귀도 쫑긋 세워집니다. 딸의 평가는 늘 냉정합니다. 쓸데없이 길고 필요 없는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살펴봅니다. 야박한 평가지만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래도 초등학생 딸의 평가는 늘 반갑습니다. 솔직할 뿐 아니라 아주 가끔 "오, 아빠 글 잘 쓴다."라는 칭찬을 하는 날도 있으니까요.


내년에는 중학생이 되는 딸의 시간이 아깝습니다. 이제 더 이상 초등학생의 날이 선 평가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 아빠와 살뜰하게 대화하는 딸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겠지요. 대화는 줄어도 언제나 아빠의 글을 평가해 주는 딸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충고는 언제나 힘이 되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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