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May 07. 2024

떡볶이가 뭐길래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지하철 역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합니다.

가까운 떡볶이 집이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는 아내의 가방에 준비된 양산 하나로 막아야 했습니다.


그 날 만나기 전의 대화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슬쩍 역 근처의 다른 메뉴를 권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비를 쫄딱 맞고 떡볶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젖은 옷을 힘겹게 말리는 남편에게 아내는 미소를 건넵니다.


"왜 이런 것도 추억이잖아."


아니 여보세요. 축축한 양말과 오른쪽 어깨가 추억이 될 순 없지요.

남편은 그저 뽀송뽀송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저 아줌마는 비가 오니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남편을 지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 어떻게 하면 내 불편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저 아줌마가 떡볶이를 맛없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식당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여기 너무 지저분한 거 아냐? 낙서는 왜 이렇게 많아?"

"그게 맛이지. 역시 분식집은 이런 분위기가 딱이야."


아내는 종종 같은 세상 속에서도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떡볶이가 나왔습니다.

유명한 집이라는데 딱히 대단해 보이진 않습니다.

이 정도면 집에서도 뚝딱 해 먹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표현하진 않았습니다.

해달라고 졸라댈게 분명합니다.


보글보글 끌어 오르자 라면 사리를 조심스레 접시로 옮깁니다.

라면이 되지 못한 사리의 안타까움을 위로하며 한 입 후루룩 삼켰습니다.


'오~~~'


짧은 감탄사가 이어졌습니다.

사리가 사리인 이유는 살이 찌기 때문인가 봅니다.

계속 들어갑니다. 멈추지가 않습니다.

입에 물릴 때 즘 단무지 한입으로 중화시키고 나니 다시 사리 침공이 시작됩니다.


"면을 혼자 다 가져가면 어떡해!!"

"난 떡 싫어해. 라면만 먹을 거야."

"안 돼. 나 좀 덜어 줘."


빼앗긴 사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바닥에 눌어붙은 쫄면을 긁어먹습니다.

세상에, 라면 사리보다 더 맛있습니다.

쫄면이 쫄면인 이유는 떡볶이에 졸아붙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다시는 쫄면을 차갑게 먹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냄비 바닥을 박박 긁었습니다.


남편이 사리와 쫄면에 최선을 다하는 동안 아내는 계란 두 개를 홀로 다 드셨습니다.

딱히 불만은 없었습니다.

떡볶이 냄비 안에서 각자 원하는 메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끌려온 것 치고는 제법 만족한 식사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와 양산을 다시 펼쳤습니다.

얄팍한 복수심으로 양산을 살짝 내 쪽으로 기울여 봤지만

조금 걷다 보니 비는 거의 잦아들었습니다.

날씨도 내 편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내는 다음번에는 사리를 추가해야겠다며 식사 후기에 열중입니다.

그러지 말고 쫄면을 추가하면 안 될까 넌지시 의견을 건네어 봤지만 기각되었습니다.

떡볶이 하나 만으로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자면 건강이 아닐까 싶어요.

몸이 조금만 힘들어도 온갖 짜증이 튀어나와 나와 내 주변을 힘들게 합니다.

글을 쓰는 일도 손가락만 움직인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땐 몸의 긴장을 풀고 편안히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별것 아닌 기억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미소가 흐르기도 하지요.

어쩌면 그런 사소한 기억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브런치 가족 모두 건강한 계절이시기를 응원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모두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