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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해하는 아들의 마음

에필로그

by 류완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온 아들은 이제 책을 읽지 않습니다.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고 해설서를 통해 성적을 올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기대한 만큼의 결과는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아빠는 그저 믿고 응원할 뿐 결과와 상관없이 도전의 과정을 즐기고

결과에 수긍하면서 성인으로서 한 뼘 더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마음은 그런 마음이 아니겠지요.

초조하고 불안하고 미끄러지는 순간 인생 망했다고 단정할지도 모릅니다.


'아빠가 살아 봤는데 그런 걸로 망하지 않아.'


힘이 되는 조언 같지만 수험생에게 적절한 위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인생을 훔쳐볼 뿐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기 위해 고군 분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빠로 인정받을지라도 그 시절 아빠는 가까이 사는 타인일 뿐입니다.



고2 때 둘째 모습, 아빠 컴에 저장된 마지막 사진입니다.



아빠에게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은 그렇습니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좀처럼 그런 기회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힘들게 대화의 기회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잔소리로 이어집니다.

응원의 마음으로 시작한 대화인데 양방향이 아닌 일방통행으로 달립니다.

아들은 얼마나 지겨울까요?

들었던 이야기 듣고 또 듣는 마음, 꼰대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아빠도 성인 아들은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며, 환경이 다르며, 경쟁하는 상대와 사랑하는 대상도 생각도 다릅니다.


대화가 줄어든 관계, 조용히 아들이 읽은 책을 하나씩 꺼내어 읽었습니다.

수능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겠거니 싶으면서도 왜 이런 책을 읽고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몇 번 물어보다가 귀찮아하는 것 같아 그 뒤로는 조용히 읽고 가져다 두었습니다.


운동을 하다 뒤늦게 공부에 뛰어든 아이인지라 독해력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답을 찾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시절 아빠는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인생에 대한 고민도 없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나이를 먹을수록 답에서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읽으면 같은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해하는 방향은 서로 다르겠지요.

아들은 수능을 위해, 전공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아빠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펼쳤습니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둘 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은 힘겨워하고 있고 아빠는 아들의 생각이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은 비상구 하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책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순 없을지라도 새로운 시선은 배울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의 생각도 다양하고 방향과 결말도 제각각입니다.

열 권쯤 읽었을 땐 혼돈의 도가니였는데 지금은 모든 이야기마다

저마다의 서사와 새로운 시선이 있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들을 향한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면 친구이자 경쟁자이며 동지이자 적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빠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관계를 더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든 다양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나의 숨겨진 모습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는 노인이 되기도 했고

청춘을 허비하고 인간의 자격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고 이해하려다가 자본주의에 대한 호기심으로 부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문제와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내 안의 다양성을 이해하니 아들의 변화가 불편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자신을 믿는다면 그 길이 아들에게는 행복일 수 있으니까요.

어떤 모습일지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의 이야기들은 아들의 현재이자 미래일 수 있습니다.

아빠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아빠는 삶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세대가 다르다는 건 함께 할 고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함께 책을 읽는 것으로 세대를 넘나 들 수 있으니 이보다 훌륭한 sns가 있을까 싶네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남자들끼리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어 봤자 유치 찬란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궁금할 때면 요즘 무슨 책 읽었냐고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힘든 날이 올 때 추천해 줄 책 한 권 정도 준비해 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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