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 - 유발 하라리
현대 역사가들은 친절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나름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기에 그런 점이 크게 와닿습니다.
2000년 대 이전의 역사, 철학가들의 책은 번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려운 책이 많았습니다.
어렵게 글쓰기 대회에서 상 받은 사람들만 책을 내는 건 아닌가 의심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하려면 원서를 봐야 했고 외국어가 되지 않으면 전문지식을 쌓기가 어려웠습니다.
21세기 이후의 인문학자들은 확실히 다른 느낌입니다.
문장이 쉽고 친절해서 몰입도가 높습니다.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서 그럴까요?
책을 낼 때부터 전 세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용이 아무리 길어도 한 번 책을 펼치면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에 빠져 듭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도 그렇습니다.
사피엔스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최근 발표한 넥서스 역시 그런 기대를 충족시켰습니다.
처음 아들의 책상에 놓인 책의 두께만 보고 덜컥 겁을 먹었지만 막상 읽다 보니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역사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연구는
문화인류학이나 생물학을 넘나드는 다채로움이 있습니다.
역사책이라기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모아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넥서스는 인류가 연결되어 가는 역사를 이해하고 연결된 미래를 고민하는 책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풀어내고 그 연결이 초래한 결과를 분석합니다.
지금 우리를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와 미래에 대한 고민과 비전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AI가 현재와 미래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흐름보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의 관점을 중심으로 풀어내다 보니
역사 연구서라기보다 문화 인류학 또는 현대 철학을 접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읽다 보니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딱히 순서대로 읽지 않고 원하는 챕터 별로 읽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읽기보다 천천히 오래 두고 적당량을 읽는 편이 좋습니다.
글의 흐름이 일정해 정보를 모두 이해하려는 욕심만 없다면
여유롭게 읽어도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급합니다. 연결이 가속화되는 미래 사회를 염려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연결되어 가고 있으며 더 빠르게 연결하는 기술을 연구합니다.
누군가는 꿈꾸는 미래일지라도 누군가는 그로 인해 비극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더 빠르고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피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인류를 위한 투자라고 하지만 그것이 재앙일지 축복일지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알고리즘의 시대, 원하는 정보만 주목하는 현대인들의 선택이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비극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사실 이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고한 학자들은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푸코, 보드리야르, 기 드보르의 책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못했던 이전 인문학자들에 비해
유발 하라리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좀 더 쉽고 간략한 요약본으로 청소년을 위한 넥서스가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연결된 삶을 당연하게 여기고 알고리즘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세대에게
유발 하라리의 시선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합니다.
AI세계가 일상이 될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아들은 요즘 부쩍 정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늘었습니다.
세상에 가짜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이 책만으로 얻게 된 생각은 아니겠지만 스스로 정보에 대해 분석하려는 의지는 대견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쌓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발 하라리도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결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를 위한 새로운 숙제가 아닐까 고민해 봅니다.
우리의 연결된 힘과 새로운 기술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책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