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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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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Feb 18. 2024

부부싸움 후에는 침묵해야 한다.

부부의 갈등을 푸는 언어의 힘과 한계

팬데믹 시기의 어느 날 저녁, 나는 집에서 인상을 쓰고 말수를 줄인 채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아내가 옆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기분 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듣는 둥 마는 둥 대꾸하니, 아내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느냐고. 아니야. 그냥. 하고 나를 걱정하는 질문에 성의 없이 말 끝을 흐렸다. 아닌 게 아닌 표정이라며 왜 그러느냐고 재차 묻는 아내에게 나는 더 이상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아 그만 짜증 섞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냥 냅둬. 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차. 아내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왜 옆 사람 눈치 보게 그러고 있는 건데. 아내가 화를 내고 나서야, 일이 커졌음을 깨달았다. 우리 사이에 다툴 일이 없었는데 다투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날 고객의 무리한 요청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했고, 매장 배관에 문제가 생겨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긴 일도 마음의 짐이었다. 그 와중에 주차를 하다 벽에 사이드밀러를 긁은 것도 잘 풀리지 않는 하루의 마음을 박박 긁어놓았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자영업자의 삶 이곳저곳에서 경고음이 나오자 지금처럼 아등바등하며 계속 살아가는 게 맞는지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생긴 점도 괴로움의 일부였을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오다 무너진 체력도 문제였을 듯하고, 몸에 회복이 불가능한 문제가 하나둘 생기고 있는 것도 우울함의 원인 같았다. 사실 이렇게 나열해 보아도 이게 전부인지 내 기분의 원인을 명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기분의 원인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기분의 문제가 아내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두고 심리학에서는 "감정의 전이"라고 한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다른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으면서, 가장 가까운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날 찰나의 순간, 눈치 없이 꼬치꼬치 캐묻는 당신의 질문이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내가 짜증을 냈던 것처럼.






감정의 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우울함에 휩싸여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상태를 한 발 물러나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경험상 글을 써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글로 적어놓고 읽어보면,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활자의 형태로 나에게서 분리되어 물리적으로 마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활자로 포획된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글쓰기는 이성적 작업이다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성은 감정을 가라앉힌다새벽녘에 써 내려간 나의 글에서 우울을 가라앉히고 애먼 아내에게 짜증을 냈던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대로 하룻밤이 지났고, 다음날 아침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잠이 주는 힘은 강력해서 어제의 감정은 벌써 많이 흐릿해졌다. 게다가 글도 쓰고 잤으니 어제의 갈등은 미안하고도 머쓱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럴 땐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일단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까. 무엇이 미안하냐, 왜 그랬느냐고 되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분명 뭐가 미안한데, 하고 물을 것이다.)


  

실로 언표 불가능한 것이 있다.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문득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철학 속에는 언어 너머의 세계가 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처럼, 우리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들은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통해서 보여질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언어로 포착하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언어로 포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언어의 논리로 풀기 어려운 갈등을 말로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말은 잠시 덮어두고 삶을 통해서 드러나게끔 행동으로 보여줄 때, 의외로 갈등은 쉽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말없이 부엌 정리를 하고 있는 아내를 뒤에서 살포시 안아 주었다. 아내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감싼 내 손을 잡으며 화답했다. 감각적으로 사과를 받아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곧 서로를 마주 보았고, 나는 그제야 말을 꺼냈다. 미안했다고.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뭐가 미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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