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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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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Mar 24. 2024

가족의 서사를 쌓는 일

부부에서 가족의 서사로

나와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새 식구가 생기니 가족 식사 시간에도 활기가 도는 듯했다. 부모님은 아들보다 며느리가 좀 더 편한 것 같았다. 아들만 둘인 데다가  말수가 적은 집안이라 원래는 묵묵히 각자 자기 그릇을 비우기만 했는데, 이제는 며느리를 보며 이런저런 말을 건네시곤 한다. 조금 의아한 점은 한 식탁에 있는데도 아들에게 할 말을 굳이 며느리를 보며 하는 것이었다. 얘 고기 너무 좋아하니까 많이 주지 마. (강아지 간식 급여하는 이야기인 줄.) 집안일은 얘한테 많이 시켜. (이미 지문이 닳고 있습니다.) 식단 관리 좀 하고, 집안일도 좀 잘하라고. 옆에 있는 아들 들으라며 하는 이야기였다.


가족 간에 대화가 일어나니 자연스레 과거 가족 여행을 다녔던 추억도 꺼내 놓았다. 모두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 너무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적어도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예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여름휴가를 국내로 짧게나마 다녀오자고 생각이 모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제천의 한 리조트로 여름휴가를 잡았다.





 

아내이자 며느리인 한 사람의 존재 덕분에 오랫동안 멈췄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2박 3일의 짧은 시간. 제천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가족과 숙소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첫날밤 수다스러웠던 시간이 끝나고 각자 방으로 흩어졌을 때,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아버님은 오빠 어렸을 때만 말씀하시는 거 알아? 제삼자의 시선으로 봐야 보이는 게 있는 걸까. 아내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했다. 아버지는 계속 과거, 나의 초등학생 때의 이야기만 줄곧 하셨다. 우리 부자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휴가 둘째 날에는 가족과 함께 제천 의림지에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내는 말했다. 오빠. 우리 여기 온 적 있어. 그럴 리가. 유구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곳을 우리가 데이트로 올리는 없는데. 자칫 말실수를 할까 봐, 나는 빨리 머릿속을 뒤적이며 사라진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흔들리는 내 눈동자와 길어지는 침묵에 아내가 웃으며 먼저 답을 말해주었다.


학술답사.


국어국문학과 CC였던 우리는 같은 해에 대학교에서 만났다. 아내는 1학년 신입생이었고, 나는 3학년으로 들어온 편입생이었다. 그 해에 우리는 함께 학술답사를 갔고, 그때를 계기로 급격히 친해졌다. 수업을 가장한 MT에 가까운 학술답사는 2학년이 주축이 되어 1학년을 이끌고 방언, 설화, 민요의 흔적을 접할 수 있는 곳을 다녀오는 시간이다. 때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섭외해 표준어에 오염되지 않은 방언을 채록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며 연구하는 법을 익힌다. 아예 학점이 있는 필수과목이기도 하지만, 교수님과 학생들이 여행을 하듯 몇 박을 함께 하는 중요 행사이기도 했다.


아내는 그 시절의 우리 이야기를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꺼냈다. 아들이 어떻게 연애를 했고, 결혼은 또 어떻게 했는지, 과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던 부모님은 의림지와 학술답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무뚝뚝해서 어디다 쓸까 했는데, 집 밖에선 안 그랬다니 다행이다. 아버지는 아들 부부의 연애사 초입부를 듣고는 다행이라 말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끊어진 가족의 서사를 새롭게 잇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족, 그리고 부부의 끈을 더 단단히 묶어주는 것은 시간으로 쌓아 올린 서사다. 공유하는 추억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관계도 끈끈해진다.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가 남다른 유대감과 애틋함을 가지려면, 그만큼 함께 가진 소중한 추억이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제천으로 다녀온 소소했던 여름휴가는 부모님과 우리 부부 사이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끊어졌던 가족의 서사를 이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들과 떠나는 여행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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