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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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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Apr 21. 2024

결핍과 결핍이 만나는 게 결혼이라.

신혼집 구하기는 나를 이해하는 과정

봄을 열한 번이나 함께 보내고 결혼을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잘 몰랐다. 단지 서로에게 익숙해졌을 뿐이었는데 알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결혼이란 거대한 프로젝트는 익숙함을 깨트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고, 결정의 연속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잘 알 만큼 거칠게 부딪혀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게는 결혼식 식권 모양부터 크게는 신혼집을 고르고 채우는 일까지. 끝이 없어 보이는 결정 과정에서 서로의 기대와 욕망은 마찰을 일으키며 조정되었다. 그리고 부딪힘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신혼집을 알아볼 때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다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출퇴근이 쉬운 위치, 쾌적하고 안전하게 잘 정비된 도로, 반짝이는 신축 아파트,  미래의 아이를 생각해 학교까지 품고 있는 단지를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결국 신혼집 고민은 예산의 문제였다. 한정된 자금은 선택지에 제약을 걸었고, 아내와 나는 주거지의 조건에 우선순위를 다르게 매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포기하느냐는 각자의 오랜 경험이 빚은 가치관 차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경제 사정으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 집을 팔고 보증금을 빼서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부모님은 이사의 달인이 되었다. 반지하 월세로도 갔다가 사정이 조금 나아지면 얼른 지상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다 또 반지하를 찾아야 할 때도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런 식의 이사를 구 년 동안 여섯 번 반복했다. 몸을 뉘인 곳이 지상인지 지하인지, 지상이라면 땅에서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가 집안 경제의 지표였다. 다행히 이사의 끝은 한적한 경기도 외곽에 지어진, 당시 기준으로 신축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집이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동네는 아늑하고 집은 쾌적해야 한다는 것. 나에게 집은 머무는 동안이 가장 중요한 곳이었고, 출퇴근은 그리 악독한 문제였던 적이 없었다.


아내의 어린 시절은 나와 반대였다. 초등학생 시절에 같은 동네에서 한 차례 이사를 했던 때를 제외하면, 사실상 평생 한 집에서 부모님과 살았다고 한다. 부모님 댁은 지하철역과 무척 가까웠고, 서울의 중심 지역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대학생이 된 아내는 매일 왕복 두 시간 삼십 분 내외를 지하철과 길에서 보내야 했고, 상황은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한 시간 넘게 이동하는 일은 흔하지만, 평생 그랬다면 결핍이라고 부를만한 문제였을 테다.


우리가 부딪힌 지점이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도 동네가 아늑하고 집 크기도 조금 더 큰 구축 아파트로 가고 싶다고 했으나, 아내는 원룸에 살더라도 일터와 지하철이 가까운 곳이길 바랐다. 결핍과 결핍의 만남. 결혼을 위해 무언가를 맞춰간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신혼집 갈등의 결말은 아내의 양보로 일단락되었다. 결국 아내는 남편의 결핍을 채워주려고 계속해서 긴 출퇴근 시간을 감당하기로 했다.   




결혼하고 해가 네 번 바뀌고,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우리는 이사를 결정했다. 왜일까? 출퇴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출퇴근하는 시간에 걸려서 움직이면 길에서 두 시간 삼십 분에서 길게는 세 시간을 써야 했다. 교통 지옥을 피해서 새벽 일찍 출근하거나 밤늦게 퇴근하기도 했는데, 시간은 조금 단축되었지만 생각보다 극적으로 줄이지는 못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새벽 출근, 심야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그것 역시 체력적으로 오래 할 일 못 되었다. 늘 잠이 부족했다.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줄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나는, 결국 이번 이사에는 아내의 결핍에 맞추기로 했다. 집 상태가 아쉽더라도 쉽게 출근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자고. 




2024년 4월 10일 수요일은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불과 3주 전에 우리는 이사를 했다.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선거인단명부는 이사 전 주소로 확정된 상태라서 투표를 이사오기 전 동네에서 해야만 했다. (사전투표를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터를 옮겼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에, 떠나온 동네를 다시 방문해야 했다.


선거날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어서 추억에 잠기기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도, 야채가게도, 매일 오르내리던 아파트도, 얼마 안 되었는데 왜 이리 낯설고 반가운지.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 동네가 참 이런 아늑한 매력이 있었지. 하고 왠지 모를 감상에 젖은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체증을 마주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와. 하마터면 그리워할 뻔. (이사 온 이유를 잊지 말자.)

 

우리 부부가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은 이사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몇 번은 더 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새로운 동네와 집을 고민할 때마다,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맞춰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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