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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Jul 07. 2024

글쓰기는 마이너한 취미라는 착각

일단 저지르는 용기

작년에 오랜만에 본 지인이 물었다. 그래서 1인 출판사는 시작했느냐고.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깔끔하게 몇 마디로 대답할 수 있어야 준비된 자일 텐데, 나의 대답은 중언부언하며 길어졌다. 1인 출판사를 등록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는 둥, 책을 팔고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게 어려워서 배울 게 많다는 둥,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니 생각할 게 많다는 둥. 말하면서도 둘러대는 것만 같은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속일 수는 없으니까.


돌다리를 심하게 두드려보는 성격이다. 오늘도 두드려보고, 내일도 두드려보고,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두드려본다. 그렇게 두드리는 데 중독이 되어 까맣게 지저분해진 손으로 돌다리만 만지작거리다가 삼십 대가 다 지나가 버렸다.



 

진로를 결정하고 나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타이밍에도 나는 늘 머뭇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2018년에 글쓰기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도 돌다리는 등장했다. 글쓰기가 마이너한 취미라는 생각에 어차피 하나 마나 한 일이 되리라고 짐작한 것이다. 이거 해봤자 반응이 없을 텐데, 괜히 힘 빼지 말자고.


편견은 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사람은 안다고 생각할 때 움직이지 않는다. 


당시 독서 모임 멤버 몇몇과 함께 순전히 재미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글쓰기 모임을 꾸리지 못했을 테다.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가벼운 여가 생활로 시작할 수 있었던 사실이 나를 움직였다. 그나마도 모임장은 맡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운영을 맡게 되었다. 인기 없는 취미 모임이니 조금 하다가 끝날텐데,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승낙한 것이다.


그런데 아찔하게도 글쓰기는 마이너한 취미가 아니었다. 역시 해봐야만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다.


글쓰기는 지독히도 고독한 작업이다. 아무리 여러 사람과 함께 작업하더라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홀로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만 한다. 고요한 밤 어둑한 방안에서,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는 카페에서, 배움을 찾는 사람이 모인 도서관에서, 누군가는 글을 쓴다. 그가 글을 쓰는지, 글을 읽는지, 방송을 보고 듣는지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렵다. 게다가 취미가 글쓰기라 밝히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 않다. 나 역시 취미를 답할 때 글쓰기라고 대답한 적은 없었으니까. 글쓰기는 취미라기 보단 생활에 가깝다고 느꼈던 듯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딘가에 있기야 하겠지만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상형과 같았다. 살아오면서 취미로 글을 쓴다는 사람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드물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글쓰기 모임을 더 반가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 고독하게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네요.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글을 쓰고 있었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글을 썼고,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모임을 꾸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모임 초창기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처음에는 또래 모임이었다면, 지금은 성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함께하기 때문이다. 





 

책 <마케터의 일>에는 네이버 이해진 의장의 "유도탄 이론"이 소개되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업계에서는 유도탄 쏘듯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일단 대략적인 방향만 잡아서 쏘고, 정확한 위치는 날아가면서 조정해야 한다는 것.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정확한 계산을 하고 미사일을 쏜다면, 다른 미사일에 먼저 맞고 만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고 이후는 대응하라는 말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유도탄을 쏘듯 일단 하고 보는 마음으로 지속해온 일이 글쓰기 모임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곳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몇 년간 참 다양한 모임을 진행했다. 날씨가 좋았던 가을에 서울숲에서 야외 글쓰기를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던 열다섯 명이 모여서 시간을 보냈는데, 마치 백일장을 하듯 다 큰 어른들이 흩어져서 숲과 물을 보며 글을 썼다. 송년회를 하자고 했다가 육십 명이 모여서 다급히 공간을 빌리느라 애를 먹었던 일도 있었고, 글쓰기 모임이니 책을 만들어봐야한다며 다짜고짜 문집을 엮어 보기도 했다. 영화 리뷰 쓰는 모임, 서평 쓰는 모임, 작법서를 읽고 스터디를 하는 모임, 함께 글감을 찾아보는 모임, 새벽에 글을 쓰는 모임, 한여름 심야에 무서운 이야기를 쓰는 모임, 술을 한 잔 마신 상태에서 글을 쓰는 모임, 익명으로 비밀 일기를 쓰는 모임, 19금 글을 쓰는 모임, 릴레이 소설 쓰기 모임. 나열하니 숨이 차다.


당시에는 그냥 재미일 뿐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은 의구심도 들었지만, 글쓰기 모임이 처음과는 다른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는데 이 모든 경험이 꼭 필요했다고 나는 믿는다. 


재밌어서 하는 일이라는 보호구 아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람들과 글을 쓰며 마음껏 뛰어 놀 수 있었다. 왜 다른 일은 글쓰기 모임처럼 마음껏 저지르지 못했을까. 사실 돌다리를 그토록 두드렸던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더 잘 준비하면 한 번에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둘러대지 않기로 했다. 올해 1인 출판사를 등록한 것이다. 비록 서류상으로 등록하는 일일 뿐이고, 첫 단행본 출간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질러 보면 보이는 게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마음껏 저지르고 수습하면서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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