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으로 판단하지 말 것.
마음이 분주했다. 곧 시작될 글쓰기 모임에 새로운 회원 두 명이 오기 때문이었다. 기존 참여자에 진행자인 나까지 총 일곱 명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처음 온 사람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을 하던 차에, 처음 보는 사람이 본인 몸 하나 통과할 정도로 아주 살짝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저.. 여기 글쓰기…' 하고 말했다. 나는 여기가 맞다며 활짝 웃는 표정을 짓고는 이쪽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 있겠는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날씨며 여기 오는 길 따위를 물어보았으나,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단답형의 대답을 했다.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느낄 때쯤 구세주가 도착했는데, 두 번째로 온 이 역시 처음 참여하는 멤버였다. 그를 보자마자 외향형 성격의 소유자임을 확신했다. 오늘 날씨며, 오는 길은 어떠했고, 여기 공간 분위기가 좋다며, 내가 묻기도 전에 줄줄 말하는 것 아닌가.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곧이어 기존 회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모임을 하는 내내 신규 회원 두 명의 표정을 계속해서 살폈다. 일단 확신의 외향인 신규 회원은 기존 참여자들과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문제는 다른 한 명이었다. 표정이 없고 대화에 참여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모임이 재미가 없나. 모임의 성격이 기대와 달랐나. 말을 더 걸어주어야 하나. 그냥 두는 게 나을까. 모쪼록 새로 온 두 사람 모두 다음에도 다시 나와주면 좋을 텐데. 모임 초창기여서 사람이 너무 귀했던 때였다. 한 명이라도 다음에 나와 주어야 모임이 순조롭게 성사되던 시절이라 참여자들의 눈치를 많이 살폈다.
나는 자영업자다. 자영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방문율인데, 손님이 한 번 오고 발길을 끊으면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글쓰기 모임도 마찬가지 아닐까. 처음 온 사람이 다시 오고, 결국엔 온전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주어야 모임이 순항할 수 있다. 특히 모임의 초창기에는 재참석률이 정말 중요하다. 인원 미달로 진행하려던 모임이 취소되는 일이 잦으면 모임의 동력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 모임을 꾸렸던 시절에는 항상 신규 회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부디 이 시간이 의미 있다고 느끼길, 재밌어서 또 나오고 싶기를 바랐다. 그들의 만족이 곧 모임의 미래라고 믿었으니까.
사실 나는 원래도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감정과 생각을 빠르게 파악한 뒤, 그에 맞는 태도를 취하려고 한다. 아마도 타고난 성향일 테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표정부터 살피곤 했으니까. 물론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배려하는 건 관계에서 장점도 있다. 덕분에 큰 갈등없이 무던하게 지내왔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억누름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자꾸 삼킨다. 이 말 하면 싫어하겠지? 이 행동은 거슬릴까?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리다보면 어느새 내 감정 따위는 꾹꾹 눌러놓기만 한다. 눈치의 달인이 아니라 눈치의 노예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글쓰기 모임을 꾸준히 운영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더 이상 눈치는 보지 말자고. 그냥 나의 진심만 전하자고. 이 자리에 와줘서 고맙다는 것,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낸 것에 대한 진심 어린 공감과 응원만 제대로 전달하면 되는 거라고. 계속 눈치를 봐서는 내가 먼저 지칠 수 있겠다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그들의 몫이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이 모임을 오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후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심하게 눈치를 보았던 그날을 종종 떠올려본다. 모임이 너무 재밌었다며 다음에도 꼭 오겠다고 활짝 웃던 회원은 사실 그 후로 보지 못했다. 반면에 말수가 없던 그 회원은 꾸준히 참석하며 온전한 구성원이 되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그가 처음 모임에 참여했던 날에 대해 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첫날의 두근거림, "누가 말을 걸면 어떡하지?" 하는 긴장감. 자기소개 때 하려고 반복해서 연습한 말을 다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집에 가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워 날아갈 뻔했다는 그의 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 사람의 마음은 표정만으로 알 수 없는 거였구나. 덕분에 눈치로부터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