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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14. 2024

순서의 차이

1.10-2.0

1.10

일요일에 죽음을 맞이할 오경수 박사에게 오늘은 살아있는 마지막 화요일 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살아가는 날들 중 또 하루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오늘을 맞이했다. 오경수 박사는 죽기 전에 자신의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그녀의 방에 있는 모든 서류와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데이터화되어서 클라우드 서버에 쌓여있는 것이지만 오경수 박사는 오래된 자신의 흔적들을 다시 어루만졌다. 이 물리적인 실체는 오경수 박사가 죽으면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질 예정이었다. 오경수 박사는 서류나 책들 중에 혹시 남겨져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면 첫째 아들인 제이에게 건네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서류와 책들을 뒤적이며 보았다. 그러다가 언젠가 오래전 세미나에서 공짜로 받은 보잘것없는 노트가 눈에 띄었다. 겉면에는 캠퍼스 서울이라고 쓰여있고 안은 듬성듬성 일기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날짜가 적혀있지 않았지만 적혀있는 하루 일과를 조금 읽어보니 적어도 40년 전쯤 막 결혼하고 제이를 낳아 집에 있을 때 적었던 일기였다. 오경수박사는 손으로 쓴 이 오래된 일기장을 제이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정리할게 남았어?” 김정훈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냥 둘러봤어요.” “할 이야기가 있는데.” 김정훈이 머뭇거리며 오경수 박사의 책상 주변에 서있었다. “긴 이야기예요? 여기서 해요.” “음, 윤이 말이야.” 김정훈의 입에서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오경수 박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입만 쳐다보았다. “윤이를 봤다는 사람이 있어. 확실히 윤이일지는 모르지만.” “어디예요?” “제3 구역 안에 술집인데 확실하지는 않아. 아직 나도 영상 자료는 확인은 안 했어.” 오 경수 박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죽음 날짜를 상기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윤이를 봤다는 사람은 어떻게 당신과 연락이 된 거예요? 당장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 사람이 윤이를 데리고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도 잘 알겠지만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고 그 사람들은 특수한 임무를 띤 사람들이야.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윤이를 강제적으로 데려 올 수는 없어. 내 생각에는 일단 영상자료를 확인하고 윤이가 맞다면 그 후에 찾아가는 게 최선이야. 그 애가 우리는 볼지는 모르겠지만.” 


오 경수 박사는 김정훈의 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면 지금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수도 없이 윤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윤이는 자신의 위치가 확인되는 것이 염려스러운지 한 번도 자신의 스케줄러를 켜고 계정에 접속하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에 윤이가 자신의 계정에 있는 메시지를 볼 수 있을까요? 만약 윤이를 본 게 맞다면 내가 직접 윤이를 만나러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정훈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윤이인지 확인해 보고 그다음을 생각해 볼게. ” 김정훈은 방을 나갔다. 지금 김정훈의 머릿속에는 윤이에게 접촉을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떠 올랐다. 하지만 일단 제3 구역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경찰을 통해서 바의 감시카메라 정보를 입수하여 윤이가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 했다. 정훈에게 윤이를 봤다는 정보를 준 사람은 정보감시국 경찰로서 범죄자 체포 업무를 담당하는 정훈의 후배 동료였다. 


김정훈은 오경수 박사의 서재에서 나와서 이수현 경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윤이라고 추정되는 인물을 본 날짜와 바의 위치를 알아내서 그곳의 감시카메라에 잡힌 윤이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분명히 살아있다면 제3 구역에서 살아있을 거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지만 한 번도 윤이의 행방에 대해서 제보를 받은 적은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차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 물을 끓이고 있는데 이 수현 경감으로부터 라이브 메시지요청이 왔다. “여보세요.” “선배님, 이수현입니다. 메시지 보고 연락했습니다.” “그래, 윤이를 본 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줄 수 있을까?” “잘 아시겠지만 제3 구역이라고 해도 개인 사유지의 정보를 함부로 유출할 수는 없습니다. 선배님 뿐 아니라 저에게도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 그런데 내 아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둘째에 대한 소식을 조금이라도 듣고 싶어 해. 내가 나중에 법을 어겨서 벌금을 내거나 벌점을 맞아도 어쩔 수가 없어. 마지막인데 뭐라도 해주고 싶어. 근데 자네한테 피해가 가는 건 미처 생각을 못했네. 미안하네.” “제가 본 것만 말씀드릴게요. 이십 대 중반으로 제이와 닮은 사람을 봤어요. 눈빛만 봐도 우리는 그 지역에서 살 사람이 아닌 것을 알죠. 그리고 제 옷에 그 사람의 땀이 묻어서 디엔에이 검사를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불법적인 정보를 통하는 것보다는 제 옷의 디엔에이 검사를 하고 그다음에 어떻게 컨택하실지 생각해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김정훈은 이 수현 경감의 말에 동의하고 디엔에이 검사로 윤이의 신원 확인을 먼저 하기로 했다. 김정훈은 제이에게 연락하여 윤이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결혼으로 바쁜 제이는 아버지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제이가 생각하기에 우선 윤이의 계정이 활성화되고 어떤 메시지라도 받아들이고 나눌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윤이를 찾는 것에 대한 제이의 생각은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윤이 스스로가 가족들과 컨택할 의사가 없다면 제3 구역에 있는 윤이를 직접 찾아간다 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훈은 최소한 감시카메라에 찍힌 윤이의 모습이라도 오 경수박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2.0

“주 사장이 새로운 여자들을 많이 데려 온 모양이야. 다들 주클럽으로 몰려가고 있어. 오늘 우리는 일찍 문을 닫자. 나는 집에 가야겠어.” 강 씨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주방 쪽으로 들어가면서 윤이에게 말했다. 그는 주방 입구에 있는 냉장고로 가서 먹을 것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이미 생각해 놓은 것이 있는 듯이 냉장고를 열어서 순식간에 이것저것을 꺼냈다. 모두 집에 가서 먹을 음식들이었다. 강 씨는 장사를 일찍 끝내는 날이 늦게까지 하는 날보다 많았는데 그 이유는 집에 가서 먹고 누워있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 갈게.” 어느새 강 씨는 커다란 배낭에 음식을 싸들고 뒤뚱거리면서 계단 쪽으로 가고 있었다. 윤이는 아까부터 바의 안쪽에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강 씨는 자신의 이야기 소리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윤이가 얄미웠는지 일부러 더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다리야. 이놈의 계단이 나를 죽이려고 하네.” 그제야 윤이는 고개를 들어 강 씨의 소리가 나는 계단으로 달려왔다. 항상 하던 대로 윤이는 강 씨의 두꺼운 한쪽 팔을 잡아서 계단으로 그를 밀어 올렸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강 씨의 입에서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이 거친 숨소리가 흘렀다. 항상 매일 밤 가게 문을 닫을 때면 반복되는 일이기에 윤이는 그 숨소리를 개의치 않고 기계적으로 강 씨를 부축했다. 


윤이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강 씨를 일층까지 데려다주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그의 방에서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의 벽장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윤이는 벽장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기다란 책상이 벽 쪽에 붙어 있고 여러 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윤이는 컴퓨터 중에 하나를 들어서 방 위의 침대로 가져왔다. 침대 위에 누워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주 클럽 안에 감시카메라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 8층 건물에 백여 개의 방이 있는 주 클럽이지만 이영의 식별 칩을 추석 하면 어느 곳에 이영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어려울 것은 없었다. 지난번 이영이 처음 방문 한 날에 윤이는 이영이 마시던 맥주컵에서 이영의 디엔에이를 추출해서 그녀의 식별번호와 신상 정보를 알아냈다. 이영의 식별번호를 입력하자 드디어 화면에 이영이 있는 홀의 모습이 보였다. 강 씨의 말대로 주클럽에는 계속해서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영은 출입 카운터에서 예약손님과 서비스 담당자를 연결해 주고 있었다. 윤이는 화면이 다소 지루했는지 다른 화면을 찾았다. 


주클럽의 방에서 손님과 제니스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제니스의 손님은 이번에 처음 온 사람인 듯했다. 젊은 사람이었고 술이나 마약 중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화면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표정은 거칠고 행동은 급했다. 윤이는 화면에 나온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스캔하여 범죄자 데이터 베이스에서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 예상대로 그는 중독보다는 폭력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윤이는 그 사람도 태그 해서 유전자 정보와 범죄기록등 신상 정보를 자신의 보관 폴더에 넣었다. 감시 카메라 화면을 다시 열자 제니스는 그 남자의 옆에 달라붙어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곧 주클럽의 단골이 되어서 실험대상이 되겠군’ 윤이는 속으로 남자의 운명을 비웃고 있었다. 윤이는 다시 화면을 돌려서 이영이 일하는 리셉션을 보았다. 이영은 그 일이 적성에 맞는지 별로 지쳐 보이지도 않았고 아주 친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주클럽에 이영처럼 마약이나 술 또는 섹스에 중독되지 않은 종업원은 없었다. 앞으로 주 사장이 이영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윤이의 관심사였다. 이영이 과연 어떤 실험의 대상으로 쓰이게 될지 윤이는 짐작할 수 없었다. 주클럽의 대부분의 여자 종업원들은 마약과 술을 무료로 공급받고 섹스상대가 되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간혹 중독 증상이 심하지 않은 종업원들은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기도 했는데 주사장에게는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를 생산해서 정부에 공급해 주는 일은 인구 유지에 도움을 주므로 정부에서 포상을 해줬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종업원들이 술과 마약을 파는 일에 소홀해지므로 주사장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윤이는 다시 다른 화면을 불렀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 속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 속은 나무들만 보이고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윤이는 식별넘버를 입력하여 원하는 객체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숲을 줌인하여 들여다보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였다. 윤이는 화면을 멈추고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윤이가 특정한 사람은 나무그늘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이가 일하는 바에 드나들던 이 씨였다. 알코올 중독 말고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며칠 전 다른 사람을 살인하고 도망치다가 윤이가 일하는 바에서 이수현경감에게 잡혀갔다. 그날 윤이는 술에 취한 이 씨가 칼을 들고 뒤에서 감수현 경감에게 달려들 때 이수현 경감을 피하게 도와주었다. 그 상황에서 윤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이었다. 이수현경감이 그의 정체를 특정할 수 있는 빌미를 주더라도 사람이 죽게 둘 수는 없었다. 윤이는 이 씨가 이제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의 예상대로 이 씨는 그가 죽기 전에 짐승의 먹이가 될지 아니면 죽고 나서 먹이가 될지 순서의 차이만 남았다. 


그때 윤이가 보던 관찰 대상자의 화면 뒤쪽에 사람의 모습이 지나갔다. 윤이는 줌을 아웃하여 뒤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주변에 나무 그늘에 기대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려운 눈빛으로 힘없이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사람이 아닌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걸어서 지나갔다. 윤이는 그의 얼굴을 특정해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와 매칭했다. 매칭되어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윤이는 그 사람이 빠르게 나무 덩굴 밑쪽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로 가서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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