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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26. 2023

북한산과 박테리아

도시스케치_광화문

어딘지 곧 고장이 나서 멈출 것 같이 커다란 소음을 내는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역으로 간다. 광화문은 나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 하루를 보내는 익숙한 동네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불완전한 흔들림과 소음을 내던 커다란 통에서 사람들이 나온다. 계단으로 뛰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길게 줄을 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이 거의 다다. 여긴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으면 계단을 오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계단수가 많다. 촘촘하게 차례를 기다려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아서 조금은 답답하다. 옆으로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도 이 선을 이탈해서 걸어 오를까 조금 갈등한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고 싶지 않다. 이제 겨우 아침 여덟 시가 넘었을 뿐이다. 나의 긴 하루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오래된 냄새가 나는 지하도 쪽으로 가기 위해 걷는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같은 지하도이지만 살짝 오르막이고 냄새도 나지 않고 환하다. 얼마쯤 걸으면 오른쪽에는 길게 서점이 있다. 유리벽 안에 책들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힐끔 거리며 책들은 본다. 점점 길은 후 줄 끈 해진다. 바닥도 벽들도 그렇다. 드디어 오래된 지하도와 만나는 부근에서 나는 왼쪽으로 빠진다. 시간의 때가 낀 길로 올라간다. 그 길의 바닥은 항상 느끼지만 미끄러질 듯이 닮고 닮아있다. 잠시 걷다 보면 스멀스멀 오래된 지하도에서 특유의 냄새가 난다. 이 역에서만 나는 냄새다. 때가 끼고 반질하게 달아 빠진 바닥에 사는 이 역의 박테리아들은 다른 역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서울 어느 역을 가도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여긴 정말 오래된 역사의 중심에 있는 역이고 여기 사는 박테리아도 그런 것 같다.  

냄새 생각을 하며 조금 걸으면 오른쪽으로 이 어두운 지하동굴에서 벗어나게 해 줄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사람들은 앞 뒤로 나밖에 없다. 이 출구 쪽에 건물이 많지만 왜 나만 여기로 나오는지 항상 의문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드디어 나는 오래된 신문사 건물 옆 광화문의 지상으로 올라온다.  고개를 슬쩍 돌려 뒤를 보면 북한산이 먼저 보인다. 산은 넓은 광장 뒤로 높지도 낮지도 않게 조용히 앉아있다. 평상시처럼 그저 그런 산이다. 하지만 나는 눈 쌓인 날 우연히 돌아봤을 때 그 산이 주었던 감동을 알고 있다. 그래서 겨울에는 매일 아침 고개를 돌려 산을 본다. 하얀 눈이 쌓인 산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하늘이 푸르다. 내가 서있는 도시의 한 복판에서 산이 얼마나 가깝게 보이는지 나는 문득 공간이동을 해서 산에 들어온 기분이 들정도다.  

이제 좀 빨리 걸어야 한다. 여긴 모두 빨리 걸어서 콘크리트 빌딩 어딘가로 향해야 한다. 이 시간에 별다른 표정 없이 그렇게 걷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우리는 반쯤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길은 널찍하고 건물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그리고 조형물과 갈대숲도 있고 물이 흐르는 천도 산책길도 있다. 하지만 낮에 이곳을 지배하는 누런 종이판을 든 사람도 확성기에서 쏟아지는 외침도 고요한 아침의 광화문에서는 잠시 사라져 있다. 나는 분주하지만 고요한 이른 아침의 광화문 거리가 좋다. 

건물의 일층에서 커피 냄새가 난다. 유명한 커피 전문점답게 아침부터 사람이 꽤 있다. 나는 커피 전문점의 향기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답답한 공기가 엘리베이터를 채우고 있다. 바깥의 공기와는 단절되어 있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아침이지만 여전히 공기는 답답하다. 아무도 없는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멀리서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내 자리에 찾아가 앉는다. 노트북을 켜면 잠에서 깨어나는 노트북에서 사그락 거리며 소리가 난다. 

창문 밖을 내다보면 사람들이 걷고 있고 버스가 지나간다. 거리의 소음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다. 거리의 갖가지 소음이 작거나 크게 그들과 같이 스쳐 지나간다. 길 건너의 고층 빌딩이 반짝인다. 한때 저 앞의 빌딩을 짓기 전에 유적이 나와서 한참 동안 바닥을 파헤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저 길건너에서 높은 건물이 반짝이며 서있다. 광화문의 과거를 덮고 광화문의 현재가 자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광화문의 과거는 오래된 박테리아와 그 냄새 일뿐이라고 나는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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