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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Aug 19. 2023

모자이크

도시 스케치_토론토

1993년 7월의 토론토

한여름의 토론토는 그리 덥지 않았다. 도시는 거대하지만 복잡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백화점에도 관광지에도 사람이 붐비지는 않는다. 거리마다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이지도 않는다. 시내의 뒷골목 주차장의 벽에는 잘 그려진 벽화들이 많다. 너무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은 거리다. 

다운타운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가 신호등에 걸렸다. 앞 차는 빨간색 닷지 컨버러블이다. 운전석에 있던 남자와 보조석에 있던 남자가 서로 고개를 돌려 키스를 했다. 나는 조금 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의 카페를 보았다. 카페는 아기자기하게 예뻤고 포치의 난간에 컬러풀한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2000년 1월의 토론도

빌딩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차가웠다. 건물과 거리는 황량했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건조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나 호기심은 차가운 날씨 앞에 무력했다. 나의 모든 의욕이 얼어 버렸다. 

며칠 동안 호텔 방과 세미나 장소만 왔다 갔다 했다. 외부 공기를 맡는 것을 최대한 줄였다. 너무 추워서 바깥공기에 노출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어둠이 내린 주차장에서 호텔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저녁의 공기가 얼마나 춥던지 몸이 떨리면서 이가 부딪혔다. 나는 멈추려고 입을 꼭 다물어도 실내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 멋대로 떨리는 이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덜덜 덜하고 이빨끼리 부딪히면서 계속 소리가 났다. 그 아찔한 추위의 고통을 보상받고 싶어서 초저녁부터 호텔에 들어오면 나가지 않았다. 따뜻한 호텔 방안의 침대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티브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잠들었다. 

어느 날 새벽 일찍 잠에서 깼다. 호텔 밖의 오렌지 빛 가로등 아래로 떨어지는 하얀 눈이 보였다. 아무 소리도 없이 촘촘히 하얗게 하늘을 메꾸면서 거리로 내려앉는 눈이었다. 아름다웠다. 차갑게만 보였던 거리가 솜이불을 덮은 듯이 따스해 보였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도 울려 퍼질 것 같았다. 


2003년 9월의 토론토

가을이지만 인디언 썸머가 지나는 기간이라 아주 더웠다. 그러나 하늘은 바다를 뒤집어 놓은 듯 푸르고 높아서 차갑게만 보였다. 이 넓은 도시 어딘가 나를 받아 줄 곳이 있을 것 같아 찾아왔지만 끝없이 지나치는 빌딩과 공장지대는 황량해 보이기만 했다. 

나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렀다. 그때 길 위에서 보는 모든 풍경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창문 옆으로 노을이 지나가고 나무들과 끝없는 길이 이어질 때 차 안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았다. 그 가사가 그때의 주변과 너무나 맞아떨어졌다. 

나는 차를 몰아서 그 노래가 담긴 시디를 사러 갔다. 언뜻 라디오로 들은 가수와 노래 이름을 외워서 음악 시디가 있는 곳을 뒤졌다. 다행히도 그 노래가 담긴 시디를 살 수 있었다. 캐나디안 가수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의 노래였다. 

모든 것이 슬퍼 보이던 풍경에서 그 노래는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막연한 의지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방황의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 가을 쓸쓸했던 토론토의 기억은 듣지도 않지만 버리지도 못하는 시디와 함께 남았다. 


2017년 10월의 토론토

비가 내렸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머물던 나는 일행들에게 비를 핑계로 토론토 관광을 제안했다. 특별히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리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활기를 잃어 보인다. 한때 내게 거대해 보였던 도시는 이제 낡고 초라해 보인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우리가 살던 대학교 앞의 아파트를 가보니 너무 낡아서 어떻게 거기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속으로 너의 열망과 꿈이 다 빠져버린 시선이 변했을 뿐 아파트가 문제겠냐고 비웃었다. 이제야 나도 안다. 나이가 들어 가진 것이 많아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잠시 비가 그쳤다. 앞서 걸어가는 동행을 위해 사진을 찍어 준다. 늦가을의 바람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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