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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2. 2023

아름답고 슬픈 도시 2

소설 같은 현실_거기 앉아 있는 자

유럽 도시들은 어느 도시를 가도 중심부에는 성당이 있다. 한국 도시들은 절이다. 서울만 해도 강남의 한 복판삼성동에는 봉은사가 있고 강북의 한 복판 종로에는 조계사가 있다. 


나는 아주 오래전 생존을 위해 동굴에 살면서 굶주림에 지쳐 있었던 적이 있다. 나에게 돌아오는 식량의 몫은 너무 적어서 내 배를 다 채워주지 못했다. 나는 힘이 없고 사냥에 능통하지 못했다. 고로 나는 항상 배고프며 지쳐있었다. 그렇다고 나보다 힘이 세고 사냥에 능통한 사람들이 나보다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들도 사냥을 나갔다가 허탕 치는 날도 있고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나처럼 며칠을 굶었다. 

날이 춥지 않은 날에는 사냥을 하지 않아도 숲에서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굶주림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면 누구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다. 힘이 세고 사냥에 능통하다고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동굴 입구에서 들어오는 찬바람을 피해 동굴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서로 몸을 붙이고 추위를 피했다. 

시간이 흐르면 바람이 줄어들고 풀이 돋아나는 계절이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 닥쳐온 하루의 추위와 배고픔이 주는 고통은 너무나 강력해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죽음을 슬퍼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식량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우리는 이 춥고 배고픈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 소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어떤 이는 동굴 벽에 형상을 그렸고 어떤 이는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냈다. 그러면 시간은 잘 흘러가서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는 고통이 조금 줄어들었다. 우리는 점점 고통을 참아내는 방법을 모아서 같이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냥의 방법과 비슷했다. 모두 자기의 역할을 맡아서 자기 몫을 다하면 되는 거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멀리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천장은 높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의 소원이든 하늘에 닿기를 바라면서 만들어서이다. 나와 천장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는 차갑다. 어둡고 반질거리는 오래된 나무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멀리 보이는 십자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건넨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지 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답하지 않는다. 나를 보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이 자리에 가져온 것이 카메라와 작은 배낭일 뿐인데 무슨 답이 더 필요하냐고 나는 웃으며 반문한다. 십자가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해가 참 밝다. 성당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를 보려고 한 발자국 떨어져 섰다. 한참 고개를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에 가냘픈 십자가가 보인다. 그리고 이제 발길을 돌려 성당 앞의 분수대와 광장을 지나 시끌벅적한 상점이 있는 거리로 나서려고 할 때 검은 뭉치가 보인다. 골목의 중간에 대단히 큰 검은 뭉치가 있다. 자세히 보니 고개를 숙여 몸에 말아 넣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는 사람이다. 성당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당 벽을 기대고 앉아 종이컵을 들고 있다. 기도하는 몸짓도 아니고 구걸하는 몸짓도 아니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옷은 담요도 아닌데 검고 두껍다.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걸까 아니면 구걸을 하고 있는 걸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빨리 걸어간다. 나는 오래전 나의 동굴에서 맞았던 추위와 배고픔을 떠올렸다. 그래서 검은 뭉치의 사람을 알아봤고 무엇을 원하는지 느꼈다. 사람들의 발길은 검은 사람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바라보지만 바라보지 않고 알아보지만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떨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치기 싫다. 우리는 아직도 기도를 하고 그래서 도시는 아름답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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