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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1. 2023

아름답고 슬픈 도시 1

소설 같은 현실_거기 걷고 있는 자

나는 대도시에 산다. 그리고 대도시 안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상업지구에 산다. 시골에 갔다 오거나 강을 건너 오래된 시내에 다녀오면 내가 사는 거리가 크고 화려해 보인다. 높은 빌딩들과 많은 자동차들 그리고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아름답다. 밤이면 자동차의 불빛과 빌딩의 불빛이 어둠을 뚫고 은하수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반짝인다. 아름답다. 나는 그럴 때면 문득 여기 이 거대한 빌딩 숲과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잘 해내고 인정받고 싶단 생각이 든다.  

 

출근 시간이 한참 남은 이른 아침 산책 삼아 거리를 걷기 위해 나오면 도시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지난밤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듯이 조용하기만 하다. 간혹 거리의 바닥에는 지난밤 누군가의 아르바이트였고 누군가의 영업장 홍보였던 싸구려 광고지가 쓰레기가 되어 있다. 그들의 희망은 버려졌고 무심하게 길바닥에서 밟혔다. 날리지도 않고 보도블록에 꼭 들러붙어있다. 차들의 물결도 없고 빌딩의 빛도 없다. 오직 운동 삼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계속 거리를 산책하는 아저씨는 이제는 걷는 게 편해 보인다. 한쪽 팔은 구부러져있고 다리도 한쪽은 뻣뻣해서 뒤뚱거리며 걷는 게 넘어질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이제 그 모습대로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다. 나름의 균형을 잡고 안정적으로 걷는다. 드디어 자기만의 걸음을 완성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여러 명이 큰 소리로 떠들고 산책하는 아주머니 분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걷고 있다. 네 명의 키도 비슷하고 머리 모양도 얼굴의 주름도 비슷하다. 길을 막고 걸어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요령껏 잘 피해서 앞지르면 그런대로 밉지는 않다. 어떤 날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마주칠 때도 있다. 두 번째 봐도 아주머니들은 네 쌍둥이처럼 비슷하게 지쳐 보인다.  


출근 시간이 되면 거리에는 무채색 옷을 입은 무표정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누구 하나 눈이 마주쳐도 서로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이상할 거다. 서로 무관심하게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이 이 도시의 매너다. 때론 사람을 밀치고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걸어가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는 인도에서 걸을 때도 사방을 잘 둘러보면서 가야 한다. 인도인데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나는 오토바이나 킥보드를 알아서 피해야 한다. 게다가 오토바이나 킥보드는 자동차가 사람보다 우선 인체 하는 걸 배웠는지 사람에게 비키라고 경적을 울린다. 인도를 걷는 굼뜬 바보가 된다. 그렇다. 이 도시에서 걸어서 출근을 하면 차를 타고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출근할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길을 지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곳곳에 금연이라고 적혀있지만 빌딩의 뒷골목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연기가 자욱하다. 큰길에는 광고지를 돌리거나 대놓고 길을 막고 붙잡아 부동산 홍보관에 들어가게 만들려는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계를 하고 주시하며 걷는다. 멀리 피해 가거나 부득이하게 앞으로 지나가게 되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발걸음을 빨리해서 다가오지 말라는 절대 거부의 몸짓을 보낸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손을 뻗어 내 앞에 뭔가를 내밀거나 나를 부를 수 있다.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또는 약속장소로 바쁘게 향한다. 차들은 길에 완전히 꽉 들어차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걸어가는 내가 차보다 더 빠르다. 낮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이면도로의 식당과 주점들이 미소를 지으며 환하게 드러난다. 거기에는 내가 가지 않지만 좋아하는 가게가 하나 있다. 반쯤 유리로 된 벽 때문에 안이 들여다 보이는 작은 일본식 술집이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꼬치냄새가 달콤하고 내 마음도 흐뭇하다. 아주 오래전 하루 일과의 삼분의 이 이상을 회사가 차지하던 때는 자주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 술집을 쓱 들여다보면 그때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흐뭇하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거침없었다. 그래서 여기 살아남았다. 


나는 오늘도 무채색의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걷고 있다. 도시는 가끔 슬프지만 여전히 내게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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