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애, 크로머

오늘의 발견 (괄호 넣기)

by 박소진



못된 애, 크로머





난 어느 순간부터 내게 해악을 끼칠만한 존재들에 이름을 붙여 불렀다. 그 의도가 너무 나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총체적으로 '프란츠 크로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크로머와 크로머 일당들은 내가 걸어오는 길바닥 위에 돌로 십자가를 그었다. 다가오는 자를 조롱이 담긴 상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맑은 듯 웃으면서 엑스를 바닥에다 그었다. 처음에는 더하기 빼기 공부를 하는 건가 싶어 별 일 아닌 듯했는데, 계속해서 웃어젖히는 것이 기분이 퍽이나 나빴다. 책가방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보였다. 겨울 추운 돌바닥 위에서 그런 웃음을 띄며 공부할 꼬마들은 없겠지. 눈을 똑바로 마주친 어른 얼굴을 비웃으며 문제를 풀지는 않으니까. 나는 내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었고, 이내 크로머 일당들은 히히히 웃는 듯하면서 엑스를 그어 대다가 내가 다가 오니 벌떡 놀라 웃으며, 열 보 뛰어가서 똑같은 짓을 했다. 등에 멘 책가방이 종처럼 등을 때린다. 나와 내 딸을 보고 엑스를 그었다. 그리고 우리 보고 코로나라고 내뱉었다. 귀를 의심했다.


나 원참, 엑소시스트도 아니고.

너희는 왜 다섯 보 가서 또 나를 보고 웃고 선을 긋고, 밀리듯이 달려가며 또 긋고 달리고 웃고 달리는 것이냐

도대체 너희는 왜 우리를 막아서는 것이냐


뾰족한 턱의 레몬색 머리카락을 날리던 대장 크로머는 쌍둥이였다. 레몬색 머리카락의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는 거다. 그 아이도 크로머다. 레몬색이 이렇게 사람한테 물들면 참 별로다.


"Wieso seid ihr lustig?"

(왜 웃는 거야?)


외국어로 키득키득 웃는 소리를 우리말의 의성어로 쫀쫀하게 바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키득키득, 쿄쿄, 큭큭큭. 킄킄킄 이 모양이 제일 적절하겠네.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대신 나 살려라 도망친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내 자식의 얼굴이 붉어지기도 전에 사회적 책임과 도덕의 잣대로 웃음과 표식은 무엇을 뜻하는 줄 충분히 알았으니까. 좋은 게 좋다는, 부모 친구 사이에 웃으면서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관용과 비슷한 <어린이는 어린이> 그리하여 어린이의 모든 행동은 어린이로서 이해해주자 하는 말이 이번에는 해당 없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난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학교 후문에서 크로머 일당뿐만이 아니라 친구로 보이는 열 명 이상의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 기다렸나 보다. 드디어 내가 등장하자 입을 삐죽거리고 비웃으며 막 달려간다. 학교에 진입했으면 바로 교실로 가야 하는 이 학교의 규율은 어디에 있나. 점점 더 아이들 숫자가 늘었다. 그다음 날은 열 다섯 명, 그리고 목요일은 스무 명.

쭈그러진 고양이가 나타나자 쥐들이 방사형으로 도망치는 형국이다. 내 아이를 교실로 보내고 삼 학년 층으로 갔다. 학교에서 학부모 봉사활동을 해서 꽤 선생들을 알고 지낸 터라 다행히 오전 시간에 뜬금없이 흥분하며 들어오는 나를 선생들은 나쁘게 맞이하지 않았다. 사건을 이야기했고, 외국인들 특유의 눈알 돌리기 리액션으로 이건 도덕적 결함이다, 크로머 일당이 누군지 찍어내라.


너무 대놓고 선별하라 하여 오히려 놀랐지만, 크로머 일당 다섯을 골라냈다. 그들과 나는 교장실에서 만났다. 교장의 훈계가 오히려 무안해질 정도로 강했는데 그 전 너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도덕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 다시 사회적 규범을 재교육시켰으면 한다, 그 아이들 부모와 만나게 자리를 마련해달라 등의 라는 내 말이 학교 운영자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무안했었을까. 이 사람은 어른이고, 진즉부터 이 도시에 살고 있었어. 어른한테 누가 그런 식으로 웃지? 교장은 매우 화가 났다.


그 시간 이후 학교 길목마다 나를 기다리는 크로머 일당의 부모들이 늘었다. 어떤 부모는 자기 아이만을 비호하며 나를 협박했고, 어떤 부모는 내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또 가장 웃긴 케이스는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당신 프리패스 문장을 같다 붙이며 당신 너무 예민하네 라고 했다. 학교에서는 크로머 일당 포함 모든 3, 4학년 학생들이 엄청난 도덕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초등 2학년인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앞으로 나와 본인과 엄마가 겪은 일에 대해 설명하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토론했다고 한다. 같은 반 아이가 대답했다. 그것은 '라시스무스'라고.


< der Rassismus : 인종차별주의 >


담임은 모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누구나 특징이 있어. 어디에 살든, 어디에서 왔든, 어떤 모습을 가지든 우리는 각자 그것만의 특징을 가지고 살고 있어."


여전히 크로머와 크로머 일당들을 학교 주변에서 혹은 이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지만, 그들은 내 눈을 여전히 피한다. 나는 이런 독일에서 살고 있다.



저전거를 타고 가다 전봇대에서 이런 스티커를 발견하고 눈을 의심했다. 무서워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