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기댈 수도 없는

by 박소진



우연에 기댈 수도 없는 누군가의 바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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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놀다가 조금 높은 곳에서 떨어져,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학교 운동장에는 ‘바나나’ 모양의 통으로 된 노란 시소가 있는데, 거기서 신나게 놀다 떨어졌다고 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내게 저들이 할 수 있는 온갖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병원을 가봐야 하는 게 좋겠다고, 머리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심각해했다. 하루 종일 아이를 관찰했고, 괜찮아 보였다. 다행인 듯했다. 내가 보기에 아이는 특별한 게 없었다. 사실 뇌의 움직임을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 일이 없어 아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다행이라는 위안을 가져다 붙였다.


나는 이내 아찔해졌고, 슬퍼졌다. 반대의 확률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했다. 모든 생의 양면들을 꺼내 보았다. 심연의 바닥을 치고 튕길 처절한 외상들을 상상했다. 온갖 사건의 서사 속에 사는 우리는 온통 사소하고, 지루하고, 소란스러운데, 그 속에서 온전한 안전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의 걸음 아래 있는 수많은 좋은 일들과 불행한 일들의 섞인 파편들이 튀어 발등 위에 놓이는 순간에 생을 경험한다면, 그 경험의 확률을 어떻게 셈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걷고 있는 안전해 보이는 길에, 보이지 않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을 나의 어떤 하루에 일어날 일들, 혹은 그 반대의 일들. 완벽해 보이는 하루에 아주 많은 은유를 숨겨둔 삶의 메타포들을 실제로 찾게 되는 나날을.


마음이 아려오는 뉴스들을 요새 자주 보았다. 새벽에 치킨 배달을 하던 가장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사망한 일. 나는 이 문장을 옮겨 오는 중에도 가득 슬퍼졌다. 만약 불운의 파편을 피한다면 누군가는 제게 올 불행을 벗어날 수 있을는지. 그것보다 더욱 아득한 것은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아버지를 살려내지도 못할 한 없이 어둠일 처절한 마음이다. 우연을 기대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간절함에 스러질 사람들의 바람들을 감히 가져와 여기에 둔다. 절대로 확률로 계산되지 않은 예상할 수도 없는 삶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어떤 날은 좀 더 불안하고, 또 어떤 날은 좀 더 세상이 아름답다. 타인의 날들이 나의 날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져 보이면 또 그것에 비례하여 슬퍼진다. 언제나 풍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결핍에 사로잡히는 마음과, 계획했던 설렘에 찼던 시도들이 틀어지는 것을 더없이 자주 목격하는 요즘, 정해진 것은 하나 없이 불안해하는 모든 이의 지금을 들여다본다.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박았지만, 아이가 다치지 않은 것 같은 기적 같은 일을 돌이켜보면, 이 기적의 반대편에 있었을 수 있던 엄청난 큰 절망 속의 세계를 나는 어찌 감당했을까. 비교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은 없다. 모두는 각자의 생에 자기만이 잴 수 있는 크기의 서사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슬픔을 갖지 않은 타인의 그것에 감정을 기대볼 수 있다. 타인의 손등에 잠시 손을 얹을 수 있다. 큰 세상에서 일어나는 마음 아픈 사건들을 마주하고, 우연이라도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의 까마득한 소외된 마음의 편에 선다. 우연에 기댈 수도 없는 가장 쓸쓸한 우리를 위하여. 들리지도 않을 위로를 전해보려는 너와 비슷한 나로부터.




비교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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