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행복에 관한 관성을 갖는다
미국에서 운전이 조금 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를 사 마시는 일이었다. 고작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탈 같은 것이었다. 혼자 운전을 하다 가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는 순간이 나는 좋았다. 한국에서는 운전면허가 없었고, 유럽에는 드라이브 스루를 하는 곳이 별로 없거니와 미국에서 영어로 주문을 하고 커피를 받아 드는 과정은 내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나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았다. 드라이브 스루 통과하면 마지막 작은 창문에서 길쭉한 팔이 쭉 뻗어 나와 커피를 준다. 그리고 Thank you so much.
독일에 얼마 정도 살다가 적응할 때 즈음 미국으로 넘어간 내게 그곳은 너무 거대했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많은 것들을 세차게 훑고 갔다. 강도가 언제나 거대했다. 그래서 넓고 넓은 미국 땅만큼이나,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밀도들이 깊고 깊어서 터져나가고 뻗쳐 나가는 파장도 컸다. 비는 땅을 때리듯 세차게 내렸다. 공사장의 크레인이 분명히 고꾸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서 있나, 불안한 두려움을 담은 날씨들이 평범한 나날을 치고 갔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오늘도 커피숍에 도착해서 스피커 앞에서 주문을 하고 드라이브 스루 길을 따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다음이면 내 커피가 나온다. 사고는 정면을 응시하며 마지막 작은 창문으로 다가갈 때 일어났다. 커피숍이 자체적으로 세워 놓은 램프 기둥이 기둥이 앞으로 스러졌다. 차 위로 내려 꽂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차의 천장이 여자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다. 몇 센티미터 차이였을까, 천만다행이라는 말은 여기에 붙여야 한다. 신의 가호. 다행히 기둥은 여자의 머리는 때리지 않고 지나갔다. 직원들이 나와 난리를 떨었고, 여자는 초흥분 상태로 눈물과 당황이 범벅되어, 거의 기어 나오다시피 어찌어찌해 차 뒷문을 밀고 나왔다. 무슨 정신이었을까, 오 이게 뭐야 나는 조금 전에 죽음을 피했어 오 마이 갓
여자도 나처럼 커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자기 차례였다. 나는 내 차례가 될 만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리 목격하고 나서 정신이 반 나갔다. 뒤에 있던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못 한다. 내게도 예고 없이 일어날 수 있었던 불행의 순서를 기다리던 날이었지 않나. 그 날 이후, 바람이 그때처럼 몰아치지 않는 날이라도 커피를 쉽게 사 마시는 수가 줄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 장면에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그림자들을 떠올리면서 무엇이 나를 그 기억으로 데려갔을까 하며 지난 시간을 더듬는다.
많은 이들은 어떤 순간의 특별한 기억으로 지금의 나날을 사는 걸까? 대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주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라도, 그냥저냥 지내는 특별하지 않은 어떠한 순간이라도 분명 지난 역사의 한 파편에 묻히고 섞인 흔적이 꿈틀거린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든 다른 모양으로 발현한다고 믿는다. 좋고, 싫든, 아름답든, 절망적이든, 슬픔이든, 치열하든 간에. 어떤 날에는 곁에 둔 그리운 이를 닮은 꽃향기와 눈이 부시던 가을빛과 얼굴을 때리고 가는 세찬 바람 같은 것들이 온다. 또 어떤 날에는 누군가 나를 때리고 갔던 시절과, 누가 나를 어루만지던 그 부드러웠던 순간과 희망에 찬 어느 청량했던 장면들이 사무친다. 이러한 잔상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여러 모양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지난 어떤 순간이 여기에 맺힐 수 있는 충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를 행복이라고 부르겠다. 그래서 행복은 돌고 돌아 다시 여기로, 내게로 온다.
이제 나는 커피를 다시 사 마실 수 있게 되었고, 그때 내가 보았던 한 장면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소회 한다. 그리고 죽음을 피했던 그 여자를 생각한다. 그 여자도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예전의 기억들은 분명 지금 곁에 있다. 곁으로 온 이유는 만약 나의 삶이 누군가의 그것보다 하찮아 보이든, 지금 많은 것에 구멍이 나 있어 허무해 보이든 간에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견디길, 곧 괜찮아지길 소원한다. 그래서 결국 문득 알게 되길.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여러 모양으로 행복이라는 분명한 기억으로 맺혀 내가 길어올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