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남아 있을 희망도 결핍이라 이야기하던 청춘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꽤 멋짐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나 적당해 보였다. 여름을 닮았던 청춘은 고작 첫 경험 같은 야릇한 성적 매력 같은 것이었다. 보통의 나날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시간은 모든 이에게 평등했다. 한 세계의 평행우주 같은 것이다. 거기에 네 시대의 청춘임을 증명코자 하는 수많은 너와 내가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언어로 입을 맞췄고, 태양 밑에서 춤을 췄다. 치열했던 우리들의 시도들은 그 자체로 완전해 보였다. 자부할 수 있던 꽤 소용 있는 삶이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면 청춘을 닮은 태양이 구석구석 파고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한 시절을 생각한다. 가엾을 정도로 차가운 맨발이었던 발로 뜨겁게 걷던 청춘의 길이었다. 대학 시절, 체르니 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게는 중요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보였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투명했다. 그래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 취업이 뜻대로 잘 안되어도 계속해서 열심히 두드렸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언론고시에서 마침내, 중견 신문사에 어렵사리 합격한 후, 그 첫날 나의 신념과는 완연히 다른 세계를 경험한 후에야 후회 없이 꿈을 잘라버렸을 때도 나는 무언가를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달릴 청춘의 한 복판에 있었다. 조바심만으로도 인생이 깜깜한 터널에 갇힌 것처럼 보였었던 모든 이들의 청춘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빛을 낸다. 그리고 깜깜한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있을 것임을, 그래서 완전히 뭉개져 보이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은 절대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시절이다. 빛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것. 지금이 청춘일 그대에게 내가 언제나 말하고 싶던 문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잠시 숨어있었다. 그러니까 찾으면 된다.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가장 하고 싶던 것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질문의 회귀다. 어차피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삶 자체가 절망의 은유가 되어도 아름다운 시도가 아닐까? 각자의 삶 곳곳에 스며있는 메타포를 찾는 거다. 나의 청춘에 대한 은유를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의 청춘의 장면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누가 당신 곁을 다녀갔는지. 가장 소중했던 것은 무엇을 닮았었는지, 그토록 피하고 싶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 삶의 은유를 찾는 숨바꼭질은 그 자체로 소용 있는 나만의 놀이다. 나는 나를 찾고, 당신을 찾고, 내가 가졌던 사물을 더듬고, 나의 부모를 매만진다. 오지 않을 약속에 대해 숫자만 세며 기다리기도, 눈 위로 쉽게 벗겨지지 않을 검은 안대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은 너무 쉽게 찾고, 또 어느 날은 찾기도 전에 포기한다. 환한 낮에 크게 뜬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숨고, 찾고, 또 찾지 못한 것들은 또 내 등을 세게 치고 달아나서 보이지 않게 영영 숨어 버린다. 삶의 기둥에 내 팔을 짓눌러 기대고 눈을 댄다. 숫자를 세고, 이제 다 세었다, 하고 됐다 싶으면 시작된다. 내가 술래를 항상 하는 숨바꼭질이. 숫자를 세고, 이제 찾으려 눈을 뜨면 벌써 까만 밤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찾기를 시작한다.
암전 상태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고, 눈이 시릴 정도의 하얀 눈 위를 걸으며 내가 언젠가 숨겨놓은, 결코 알지 못할 것들을 찾으러 다닌다. 내가 욕망하던 것들, 차마 버리지 못할 것들을 나는 찾고 싶었다.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완전히 숨어버린 나. 그런 사람을 술래인 내가 찾아 헤맨 외롭고 놀이를 가끔 생각한다. 모든 것이 여물어 곧 터져 버릴 것 같던 청춘의 숨바꼭질이었다. 지금 여기서 생각하니, 그때가 쓸쓸하게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아무래도 태양 때문이었다. 나는 온통 까만 낮 속을 걸었는데도 가장 밝게 나를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빛이다. 지나온 후 생각하면, 오랫동안 내가 술래임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언제나 나의 숨바꼭질은 온전히 한 낮을 닮아 있었는데 말이다.
언제나 술래였던 나의 놀이에서 이번에는 이제는 가끔 숨어 보는 장면 속에 있기를 바란다. 청춘 한가운데에서 가장 빛났던 그때, 어디였던 지도 모르게 꼭꼭 숨어 있던 내가 이제는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나와 보기를. 나를 정확히 비춰준 그 시절의 뜨거웠던 빛들은 언제나 나를 비추고 있었다. 언제나 거기서 내가 찾던 것들을 친절하게 비춰 주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숨을 수 있는 술래가 되어 가장 밝은 곳에서 나를 잘 찾을 수 있기를.
"당신의 청춘의 장면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누가 당신 곁을 다녀갔는지. 가장 소중했던 것은 무엇을 닮았었는지, 그토록 피하고 싶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