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숲
입김에서 새소리가 났다. 흰 안개 위로 차가운 숨이 쌓인다. 숨을 뱉을수록 안개가 두터워진다. 새소리의 선율이 곡선을 그리더니 이내 숲 속 허공에 부딪힌다. 소리가 서로 부딪히는 자리에서 뭉근한 빛이 퍼져 나온다. 새의 소리는 빛 아래로 차분히 내려 앉는다. 초록의 이른 아침 이슬 위로 소란한 적막이 숲의 고요한 풍경 사이를 열고 들어온다. 차가운 두 입술은 서로 맞닿았다가 또다시 떨어진다. 입술을 계속 열고 닫는다. 얼굴 앞에 작고 흰 구름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눈 앞이 뿌옇다가 투명해진다. 또다시 짙은 농도의 그림자를 만드는 작은 안개가 얼굴을 덮는다. 안개가 머금은 작은 증기가 사라지면, 또다시 호흡이 증가되고 얼굴 앞에 작은 구름 덩어리가 켜켜이 쌓인다. 길이 끝날 때까지 숨은 계속된다. 눈앞은 투명해지다가도 곧 어두워진다. 내 입에서 나온 숨의 여정은 눈 앞에서 익숙한 원근을 그리다가 천천히 다시 터지고, 증발하고, 사라진다. 그러다가 다시 둥글게 다가온다.
숨은 날리고 흩어진다. 숲 속으로 번져간다. 깊이깊이 들어갈수록 입 속의 작은 새도 같이 울어 귓바퀴를 타고 온다. 내 작은 귀로 다시 들어온 나의 숨은 축축하고 먹먹하다. 숨이 입 밖으로 희미하게 번지는 동안에 작은 구름은 계속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계속해서 새가 작은 소란을 입에 물고 내 귓가를 맴돈다. 소리는 내가 만든 작은 구름에 부딪혀 산란된다. 소리와 빛이 만드는 조용한 춤이 입 앞에 맺히는 풍경 속에서 숲 속을 걷는다. 아무래도 숲의 가장 먼 곳, 내가 서 있는 이곳으로부터 가장 깊은 곳이 좋겠다. 그곳은 까만 어둠 뿐이니까. 축축하고 사방은 막혀 있는 음지. 아주 작은 빛도 들어올 틈이 없는 곳, 그래서 그림자도 제 몸을 감추는 곳, 그 속에서 입을 천천히 벌려 숲을 걸으며 모아 놓은 입김을 아주 오래도록 내뱉는다. 입 밖으로 작은 구름이 떠 다닌다. 아주 작은 하늘이다. 여기에 새가 작은 날개로 힘겹게 날아다니고, 제 힘을 다해 얇게 지저귄다. 숲의 나무 사이로 빛이 하늘로부터 새어 나왔고, 그 좁은 자리에 지금을 지나는 이 계절의 색이 묻어 나오고 있다.
삶을 사는 것이 일상의 무게를 매 순간 견디는 것이라면, 무겁게 내뱉어진 숨이라도 숲 속 안에서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까 싶다. 무거운 안개에 나의 호흡이 겹치게 되는 순간, 일상의 다양한 장면들을 자연 그대로의 그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범한 숲 속의 안개에 나의 입김이 섞인다. 어느 날 나의 무겁고, 즐거웠던 모든 면면의 생의 모습이 날숨에 섞여 담담히 내려앉아 버린다. 짧은 호흡의 일상 속에서 숲의 나무들이 빛을 위해 하늘로 솟는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작은 숲이 생겨난다. 그 다음에는 어떤 풍경이 내게 올까. 안개에 섞여 내려앉은 지금의 모습을 바라본다. 여기에서의 일상을 긴 호흡으로 여겨보는 거다.
숲 속에선 수 없이 새로 태어나고, 영원히 사라지기도 하고 그 자리에 있기도 할 많은 이들의 숨의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찢겨 사라지기도 하고, 또다시 태어날 것이다. 많은 이들의, 그러니까 우리들의 숨 말이다. 거기에선 한 계절의 들숨과 날숨이 짧은 일상의 호흡으로 부딪히고 찢기고 서로 부둥켜안는다. 그리고 다시 다음 계절에 만나게 될 호흡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며, 삶의 희망적 태도일 수도 있다.
숲 속에 두고 온 각자의 이야기와 그 속의 온갖 감정들은 깊은 숲 속, 나만의 그곳에 묻혀 있다. 내려 앉은 안개 아래 차곡차곡 덮인 이야기들은 거기서 고요히 소란스럽다.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자기만의 풍경을 만든다. 풍경은 내가 숲을 찾을 때마다 여전히 거기에 있을 테고 계속해서 새로울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된 기억도 어떻게든 이어져 갈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계절을 살 것이다. 이듬해에는 오늘과 비슷한 모양의 오늘이 올 것이고, 그러한 때에 지나간 계절과 시간, 그리고 지금의 여기를 분명 그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