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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Mar 06. 2024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오늘은 부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

딸 대신 집안일을 마무리해놓고 텔레비전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손자 주혁이를 채근해서 도서관에 갔다.
주혁이와 함께 간 곳은 해운대구 복합문화센터 인문학 도서관이다. 아담하고 작은 도서관에서 주혁이는 '엉덩이 탐정'을, 나는 조지 오웰의 '1984'를 펼쳐놓고 각각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열 페이지 정도 읽고 나서 오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군, 속으로 말하며 다른 책을 살펴보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과 눈으로 책등을 쓸어내리다가 딱 멈춘 곳. 노오란 천으로 감싼 두꺼운 벽돌 책의 이름은 '배빗'. 
두 세장 넘겼더니 이 책을 소개하는 친절한 문장을 만난다. 이 책은 실로 꿰매는 정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래서 사철 방식으로 만든 책은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는다. 다정하고 친절한 설명. 문장에는 표정이 담겨 있어서 좋다.
첫 장엔 '이디스 워튼에게'라고 되어 있다.
이디스 워튼은 미국 작가로 '순수의 시대'를 쓴 작가인데, 아는 작가의 이름에 괜히 반갑다.
책 내용보다는 작가의 삶이 더 흥미로운 나는 맨 뒷장에 있는 작가 연보를 먼저 읽는다.
싱클레어 루이스가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구나. 두번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는 그가 평탄한 아니었음 짐작하게 한다.


배빗이라는 뜻은 속물이라는 말이란다. 작가는 평생 의사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아들로서 자아가 분열적 양상을 보였다. 소설속에 나오는 두 인물도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인물이다. 둘 다 스스로가 했던 진로로 나아가지 못했고 아버지의 강권으로 인생의 목적이 좌절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 중 가까운 사람이 생각난다.

바로 남편.

공업을 위주로 살아오신 시아버님은 큰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큰아들에게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공장을 물려주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시켰고 대학도 그런 분야의 과를 택해 보내셨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들의 취향이나 의견을 묻지 않으신거다. 남편은 공장을 운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어렵게 그 얘기를 꺼내는 남편이 공허해 보였다. 그래서 대학도 다 마치지 않고 학업을 중단했고 이후에 아버지의 뜻에 반대되는 길로만 걸어나갔다. 물론 부자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평생 자신의 뜻에 반하는 아들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관계는 틀어지고 추억조차 만들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는 아버지의 삶을, 그 사랑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안타깝고 아쉽다.

조금만 기다려주었다면, 아들에게 달려가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만 옆으로 밀어놓으셨다면 어땠을까?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인 내 마음을 강요하는 게 사랑이라기보다는 욕심임을 알았다.

시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아들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그는 아버지와 화해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가끔 우리 아들이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은지 제 아빠에게 묻는다. 아들의 물음에 '아니, 별로' 라고 대답하는 남편눈은 깊고 무심하다.


책의 제 1장은 배빗의 꿈에 나타나는 소녀와 배빗의 현실이 정반대로 대비되는 내용이다.

제 2장은 그의 인생과 가족과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주를 이룬다. 미국영화에서 많이 나올법한 과장스러운 코미디물같은 묘사가 이어진다.

그러는동안에 주혁이는 엉덩이 탐정 두 권을 끝내고 '빈대가족의 일박 이일'이라는 만화를 읽는다. 제목부터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가족의 여행 이야기임을 알 수가 있었다. 더이상은 읽을수가 없어서 읽기를 그만둔다. 주혁이가 조용히 내 귓가에 할머니, 배고파. 하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우린 함께 떡볶이와 꼬마김밥과 순대를 사 먹고 주혁이는 태권도를 하러 갔다. 헤어지기 싫다며 안아주고 또 안아주는 손자의 마음이 여리고 절실하다.


srt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딸에게서 온 카톡.

주혁이가 태권도 끝나고 집에 와서 할머니 보고 싶다며 엉엉 단다.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눈물이 두레박으로 퍼올려진다. 마음 한편에선 안타깝지만 이것도 자연스레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날 위로한다.



주혁아,
헤어지는 거 힘들지.
손바닥 한번 뒤집어볼래?
손바닥이랑 손등은 셋트잖아.
그런것처럼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어.
그게 한 세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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