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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조금씩만 나눠도 될까?

너 자신을 잘 들여다본다면...

by 캐리소 Mar 21. 2025


딸,

어제 네가 흥분되고 상기된 표정으로 '퀘스크렘 크림치즈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지.

사실 네가 그 대회에 나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고 했어. 아홉 명이나 되는 팀원들을 지휘해서 매장 일을 돌아가게 해야 하고,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늦은 오후까지의 근무시간도 빠듯하다고!


하지만 넌 거듭 그 대회가 너의 뒷목을 잡고 있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지. 부장에게 권유를 받았을 때도 거절했고 다른 동료를 추천하기도 하며 대회에 매이는 너의 마음을 놓아 버리려 했다면서.


그런데도 그 대회는 돌고 돌다가 결국은 네 앞으로 쿵 하고 안겼어. 겉으로 네가 강하게 거부했지만, 네 안에서는 꼭 치르고 넘어가야 할 산이고 과정임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건 너만이 할 수 있는 네 숙제였어.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경향이 있어"*
이건 사샤 세이건의 아버지 칼 세이건이 딸에게 한 말이야.


네가 할 숙제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마음이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넌 아주 오랫동안 그 대회는 네가 꼭 한 번은 나가야 하지만,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자꾸 피하고 있는 네 본심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서 이리저리 헤매게 될 거야.


어때, 이젠 네가 왜 계속 피하기만 했는지 알겠니?


딸아, 사람은 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할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무엇일까?


'알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니?

그것에 대해,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있다는 소리겠지. 근데 우린 친한 친구에 대해 아는 만큼 자기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친한 친구라도 그 애의 취향이나 성격, 가족관계나 함께 했던 시간 정도가 네가 아는 대부분일 테지만.


내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먹고살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고... 그 밖의 너는?

네가 어떤 생각을 하면 기쁜지, 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지, 네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넌 무얼 위해 태어났는지, 네 꿈은 무엇인지...

적고 보니 너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이 많지는 않겠구나.


한마디로 말해서 나대해 의식하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너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네가 아는 일이지.


네 안에는 그냥 한 사람의 너만 있는 것은 아니야.

너를 생각하고 있는 너, 네게 명령하고 있는 너, 너를 바라보고 있는 너도 있어.

이건 다중인격이랑은 달라.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을 만들어서 다시 이야기해 보자.



이렇게 말하는 엄마도 엄마 자신에 대해 잘 몰라.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건 호구조사 하면 나오는 정도의 얄팍한 정보가 다야.

그래도 엄마가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 할 때 가장 눈을 빛낸다는 것 정도는 알지. 엄마도 엄마에 대해 차차 알아가는 중이야.


엄마를 알아가는 방법 중에서 엄마는 독서를 택했어. 생전 읽지 않은 철학책을 읽으며 엄마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추구해 왔던 것들을 철학자들도 고민하고 있었구나 하고 괜히 철없이 반가워하고 그러는 중이야.


그래서 마구 자극받고 감동하고, 뼈를 맞고 울다가 쾌재를 부르기도 하면서 알아가고 있어.

앞으로도 엄마는 엄마를 탐구해야 하니 이런 철학책들을 더 많이 읽으려고 해.

엄마의 부족하거나 구멍 난 공간을 그들이 건네주는 놀라운 것들로 채워서 엄마를 더 쫀쫀하게 세워갈 거거든.


그럼 자신을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력이 아주 나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시력 검사를 마치고 자기에게 딱 맞는 안경을 맞춰서 쓴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컴컴하고 어두워서 두 팔을 뻗어 더듬거리며 걷던 그 사람은 아마 시야가 환하게 밝아져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래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출발점을 알 수가 있겠지. 자기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면 어디로 나를 데리고 가야 할 지도  있게 되잖아.

아마 그 길은 자신에 대해 모호한 지금보다는 더 환한 길일 거라고 생각해.


엄마가 중구난방이지?


사실 너에게 물으면서 속으로는 내게 동시에 묻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엄마도 웃었어.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참된 나만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깊이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엄마도 요 근래 알게 됐거든.

그러니 이런 엄마가 우리 딸에게 무슨 말을 하겠니?


하지만 엄마도 매일 배우고 사유하는 힘을 키울 테니 그 힘으로 우리 딸에게 조금씩이라도 엄마가 배운 것들을 나누는 건 괜찮지 않을까?





* 샤샤 세이건.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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