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엇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by 캐리소


내장안

백내장'에 걸리면 수정체가 흐려지고 시선도 역시 흐려진다.
우리는 사물을 더 이상 선명하게 보지 못한다. 우리가 사물을 예리하게 보는 동안은 사물들도 선명함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를 입히는 이 선명함을 불명확하게 보는 것을 통해 없애버리면, 세상 사물은 상처를 입히는 위험성을 잃게 된다.

불명확하게 보는 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안심하고 거리를 두는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또한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 '백내장'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필요가 없도록 내려치는 블라인드와 같다. 백내장은 비늘처럼 눈앞에 붙어 있다.

P. 214




언제부터인가 눈이 점점 나빠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안심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사물이나, 특히 사람의 표정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세상이 내게 노!!! 하는 것.

사람들이 내게 그게 아니야, 하는 소리를 마음에 들이고 그것을 선명하게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실일까?

그들이 내게 적대적인가?

거절당하고 부인되는 나를 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다.

왜?

나는 거절당하면 안 되나?

나는 언제나 인정받아야 하나?

나는 사람들 모두를 인정하나?


눈이나 보는 것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란,


1. 나는 무엇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2. 나의 주관성이 자기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는가?
3. 어떤 일에서 자신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가?
4. 나는 보는 것을 더 큰 성찰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가?
5. 나는 사물을 선명한 상태로 보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가?
6.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끝까지 살펴볼 수 있는가?
7. 나의 본연의 모습의 어떤 부분을 나는 자주 외면하는가?

P. 218



1. 나는 나의 못남을 보고 싶지 않다.

2. 나에 대한 인식을 가장 강력하게 방해한다.

3.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서.

4. 이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 안으로 들어가 성찰을 넓히는 데 사용하지 못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5. 선명한 상태는 불안을 불러온다. 작고 약한 나를 직시해야 하므로.

6. 있는 그대로 끝까지 살펴보기 두렵다.

7. 외면하는 것은 여리고, 떨고, 무서워하며 숨고 싶은 부분들이다.



나를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당당해 보이고 자신감 넘치며 무슨 일이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게 밖에서 보는 나다.


하지만 양극성의 법칙으로 보자면, 나는 비굴한 면과 좌절감을 가지고 있으며 전전긍긍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애써 골방에 감춰두고 잠깐씩 환기를 위해서만 문을 열어두곤 했다.

그런데 눈에 대해서 읽어가다 보니 골방 속 내가 읽히는 것이다.


양극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

양극성이 가져다준 장점은 인식능력이다. 인식능력은 양극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양극적인 의식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간으로 말미암아 온전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상태를 극복하고 다시 결함이 없게, 즉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P. 44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극복하고 온전하게 되는 길이 있다고 하니까.

양극성을 벗어나 통일성으로 가는 길이 힘들고 상상조차 안될지도 모르지만, 그 길이 있다.


지금 난 그 길에 놓여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방어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영혼이 상처를 입는 것을 그냥 버려두어야만 한다. 그래야 영혼이 그것 때문에 파멸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이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처받기 쉬워져야만 한다.

P. 236




*파란 글씨 : 몸은 알고 있다. 뤼디거 달케.

사진 출처 : 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