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글 쓰는 여자

by 캐리소

글수정이 한창이었다.


이 문장, 저 문장, 이 단어, 저 단어가 맞물리며 자리를 바꿔 말이 되고 설득이 되도록 문장과 씨름 중이었다.


그때 방과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서 누군가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하며 나가봤다.

요란하게 심장이 울리는 큰 소리다.

남편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급체인 것 같다고 해서 등을 두드려주고 손가락을 따주고는 곧장 내방으로 와서 글수정을 계속한다.


한 시간이 지났다.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구토가 멈추지 않은 채 남편이 몹시 괴로워하길래 구급차를 불러 줄까 물으니 그러라고 한다. 정말 많이 아파 보여서 걱정이 된다.


구급차를 불러 타고 응급실에 왔다.

차 안에서도 계속 구토하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글 수정을 못하는 게 내내 맘에 걸린다.


이 상황이 별로 낯설지는 않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이 요로결석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도 난 일단 아이들 단속과 남편이 없을 때를 대비한 가족들의 일상을 먼저 염려했었다.

떠올려보면,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난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일단 일이 생기면 머리부터 차가워진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급한 일이고, 우선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공저 작업에 들어갈 글을 수정하는 것이고 매일 발행해야 할 브런치 글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구토를 멈추게 하는 링거가 남편의 손에 꽂아졌다. 원래보다 더 강한 약제를 투여했는데도 어지러움과 구토는 멈추지 않는다.

CT를 찍었는데 뇌출혈은 없단다. 그러나 MRI가 문제다. 기계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구토를 해대느라 중단하고 나와버렸다.


투여되고 있는 구토진정제가 남편을 잠시 재운다. 그 틈을 타 나는 글을 쓴다.

글 쓸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렇게 또 쓸 거리가 내게 왔다.

내게 글쓰기가 없었다면,

브런치 발행을 매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에 뭘 하고 있었을까?


아마 걱정하면서 아이들한테 전화하고 염려하면서 남편의 괴로운 얼굴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었겠지?

지금 난 남편에게 구토 봉지를 대주기도 하고 휴지를 챙겨주고 으슬으슬 춥대서 시트를 목까지 올려주기도 하며 틈틈이 글도 쓴다.


이런 중에도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할 뿐이다. 그만큼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 손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얻어진 것에 초점을 맞춘다. 집에서의 편안한 글쓰기와 가족의 평안을 잠시 잃었지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집중할 힘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다.

그만큼 내가 절실하고 진지하다는 뜻이니까.


글이 지금 해야 할 일에 나를 집중시킨다.

글이 내 옆에 앉아 있었다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창조하지 않는 한, 나는 정녕 실현되지 않았다.*

못쓴 글, 미운 글이어도 쓴다!

창조된 글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 글이라도 창조되었으니 영혼이 매만져주고 싹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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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MRI 촬영을 끝냈고, 혈액 검사 결과도 나왔다.

뇌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는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내일이나 모레 조심조심 이비인후과에 방문해 귀에서 빠진 돌을 제자리에 넣든지, 자고 일어났을 때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단다.


남편은 무척 괴로웠겠지만, 큰 병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된 오늘, 감사할 일이다.






* 기적수업, 헬렌 슈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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