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뭘로 보이세요?
금방 알아보신 분도 있겠지요?
이 아이는 저 오링(둥근 고리 모양) 때문이라도 독특한 존재니까요.
그래도 언뜻 봤다면 전 몰랐을게 분명해요.
다른 사람의 사진이었다면,
이 아이가 이런 색을 띠게 된 과정을 몰랐다면, 해변의 몽돌인가?
했을 거예요.
얘는 냉동실에서 땡땡 얼어버린 블루베리예요.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단단하면서도 말랑한 탄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국산 생블루베리로 유기농 농사를 지으신 분에게 직접 구매를 했거든요.
배달을 받자마자 냉동실에 얼렸지요.
시폰 같은 얼음면사포를 뒤집어쓴 모습이 애잔하고 고와 보이기도 합니다.
그릇에 담아 좀 방치했더니 많이 녹았네요. 작은 스푼으로 한 알 떠서 입안에서 굴려보면 얼린 홍시식감과 비슷하고 이 사이에서 으깨지는 감각이 언 연양갱의 느낌과도 닮아 있어요.
이 느낌을 섬세하게 느끼고 싶다면, 녹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급하게 털어 넣으면 딱딱한 블루베리를 껌처럼 씹어야 할지도 몰라요.
숟가락만 보면, 작은 티스푼이라도 냉큼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서두름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냉동실에서 막 꺼내놓은 블루베리 알갱이들은 실내에서 조금씩 변화되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해동되는 것을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서히 블루베리의 밀도 높은 식감을 즐길 수 있답니다.
기다려 주는 것!
이건 마음 안에서 단단히 묶인 내 생각과 인식의 텐션을 툭 풀어놓고 상대방의 시간이 되기를 묵묵히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기다려 주. 는. 것!이라고 하나 봅니다.
나를,
내 시간을,
내 마음을 주는
것일 테니까요
블루베리 한 알 같은 저는 그저 여느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있으면 더욱 그랬어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가진 것도 없었고,
보암직한 외모도 아니었고,
똑똑해서 무리 중에서도 낭중지추*인 적도 없었어요.
그저 많은 사람 중 하나로,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지내다가 그렇게 흙으로 돌아갈 거리고 예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
저는 제게 저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월적 자아가 찌그러진 내적 자아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한 세계가 한 세계를 건너는 것처럼 광대합니다.
언 블루베리가 서서히 녹으며 원래의 자신이 되어가는 것처럼요.
제게는 목표도 있었어요.(사실 있는지조차 몰랐거든요) 미아처럼 떠돌던 목표가 존재인 저를 찾아와 똑똑 문을 두드립니다.
제게 저를 보여주고 '너 이런 사람이었어! 너 우주였어. 넌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넓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위대함이 네게 있어.'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영혼과도 행복한 인사를 나누었지요.
완벽한 나의 영혼아, 한번 안아보자.
모든 걸 볼 수 있는 영혼은 제 수호천사처럼 저를 지키고 확장합니다.
제 좁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넓은 곳으로 빠져나옵니다. 그곳에서 관찰되는 저는 고요하네요. 소리가 필요치 않은 우주처럼요.
높은 곳으로 올라야 전체를 볼 수 있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기초를 닦아세우는 터 닦음도 기대됩니다.
원래 낮은 사람에겐 더 낮출 것이 없지마는, 그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발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깊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깊이 변화하고, 얕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티끌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녹는 블루베리의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처럼 제 눈이 더욱 선명하게 영혼을 느낄 수 있도록 깊은 마음으로 바라보려고요.
블루베리를 관찰하다가 그 눈이 내게로 옮겨집니다.
오늘은 블루베리에게 배운 날입니다.
* 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한자성어.
** 왓칭, 김상운, 정신세계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