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답답할 땐 '글'

by 캐리소



답답할 땐 활명수가 아니라 '글'이죠.


이렇게 말하면 제가 뭐 대단한 글쟁이나 쟁쟁한 작가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입니다.

글도 잘 못쓰고, 글 쓰는 게 두렵고, 그러면서도 잘 쓰고 싶고, 글 쓰는 도구인 저를 잘 이해하고 싶은 어리바리 아줌마가 쓰는 글이니 이해하시길 바라고 적습니다.


대화에 서툴고, 그렇다고 제 진심을 전달하는 데도 어눌하고, 그래선지 상대방의 마음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일명 공감에 있어서는 빵점인 사람이라서


부끄럽습니다.


그런 사람이 엄마의 유산에 '공감'이라는 글을 썼으니 부끄럽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자, 이렇게 전 오늘도 글과 삶이 멀어도 너무 먼 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지요.

하지만 빠져 있다는 건 조건만 갖춘다면 언제든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얘기니까 너무 절망적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글과 생은 어떤 특질면에서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글도 쓰면 쓸수록 두렵고 떨리고 어렵고 미궁인데, 인생도 살면 살수록 어렵고 난해합니다.

이만하면 '대충' 알 것 같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늘 제자리입니다. 아마 '대충'이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것이 정확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생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매일 제가 새로워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제의 나를 완전히 잊고 새로운 나를 데리고 하루를 살아야 하니 매일 모르겠고, 정답은커녕 해답도 헷갈리고 그렇습니다.


자식도 마찬가지랍니다.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그들은 제가 알던 존재가 아닙니다. 과거에 생각했던 아이들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어떤 특별한 존재가 저를 엄마라고 부르고 제가 종종 자신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섭섭해할 때는 다소 민망하고 겸연쩍기도 합니다.


저는 얼마나 좁은 인식으로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제가 그들의 겉모양을 낳았지만 어떤 때는 그 겉모양도 굉장히 낯설어요. 과거에 그들을 낯익은 타인이라 인정했지만 요즘은 부쩍 낯선 타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제가 종합한 것이니 다분히 개인적이겠죠? 다른 가족에게 물어보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일반적인 엄마와 같지 않아서 어렵고 서운하고 그래서 친구 같답니다. 어쩌면 저는 철저히 그들과의 분리와 독립을 원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런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른 눈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결론을 얻는 것이고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같은 눈을 가질 수 없으니 다르게 보는 것은 자명하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어느새 제 세계에서 훌쩍 벗어나 더 넓고 깊은 곳으로 가버리고는 제가 생각했던 인식틀을 여실히 깨부숩니다. 사실 제 세계라고 해봐야 좁고 협착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이 아줌마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 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 마음이 이렇고 그래서 저는 글로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는 없으니 이런 마음이 드는 저를 저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비정상'이라는 의미보다는 별나거나 색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저를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뚝 떨어뜨려놓고 싶은 것이지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소화제 대신 글로 스트레스 풀자,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요.


어릴 때 생각이 납니다.

어떤 현상이 제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가거나 제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것을 보면 당황스럽고 난감합니다. 그럴 때 저는 남몰래 울거나 상처 입은 제 마음을 다독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전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고요.


지금 제 아이들도 그렇겠지요?

그들이 애써 숨기고 싶은 눈물을 제가 보았더라도 못 본 척해야겠지요?

그들은 어릴 때의 저처럼 지금 자라고 있는 거겠죠?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이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신과 싸우면서 세계에 자신을 세우고 있는 거겠죠?


생은 살수록 어렵다는 걸 그들도 알아가고 있을 겁니다.

수많은 인생 공부를 통해 자신을 확장시키기를 바라봅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상관은 없지만 또 상관없지도 않습니다.

좋은 것이기를 바랄 뿐이죠.

좋은 어른을 만난다거나, 좋은 지침서가 되는 양서이거나, 좋은 기회이거나 그 모든 것을 식별할 줄 아는 시선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죠.


사실 이 글 쓰는 중간부터 살짝 가벼워진 저를 느낍니다.

자괴감이라는 무거운 허울을 허리까지 벗어낸 기분이니까요.

오늘 이 글을 쓰는 일은 제 무거움을 조금은 벗겨낸 소화제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께 아부하는 중~^^




* 오늘은 그림일기를 쓰는 날인데 여행을 다녀오느라 그림수업에 결석을 했습니다.

다음 주엔 약속대로 그림을 올려드릴게요. 제 그림일기를 기다리셨을지도 모를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굽실~~~)



keyword
이전 26화계속될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