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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8. 2024

종이 카네이션 가슴에 달고 출근할 용기

새벽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이 떠집니다. 본능적으로 손만 뻗어 휴대폰 화면을 눌러 알람을 끕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반만 떠진 실눈 사이로 '오늘의 날짜'가 보입니다. 5월 8일(수)입니다. 어버이날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라는 정철의 가사가 이불속에서 떠오릅니다. 50-60대 꼰대 반열에 드신 분들은 아마 고등학생 때 국어시간이나 고문(古文) 시간에 회초리로 얻어맞으며 외웠을 겁니다. 세 줄 밖에 안되긴 하지만 아직도 입에서 줄줄 나옵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 애닮다 한들 어찌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던 송강 정철이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쓴 '훈민가(訓民歌)' 16수 가사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자식의 효'입니다.


언어와 음률의 각인은 이만큼 무섭습니다. 무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되고 감정을 지배하고 행동을 만듭니다. 초중학교 시절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운율의 시 열 편 정도는 강제로라도 외우게 하는 게 심성과 정서를 예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말이 사람을 만들기에 그렇습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카네이션 달아드릴 부모님이 모두 자연으로 회귀하셔서 썰렁한 빈 손만을 만지작 거리뿐입니다. 자식들이 그 빈 공허를 메우겠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송강 정철의 '어버이 살아 실제 ~' 가사가 확 뇌리에 박혀 떠오른 것일 겁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직장 선배께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만든 엉성한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출근했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모양입니다. 종이 카네이션이 삐뚤빼뚤 접혀있어도 양복 가슴에 달아준 그것을 떼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사무실까지 출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설사 지금 아침 출근길에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종이 카네이션을 달아준다고 회사까지 그냥 달고 올 수 있는 용기 있는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요? 아마 현관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떼어내 가방에 넣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표현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하는 걸까요? 요즘은 생화로 만든 카네이션조차 가슴에 단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 하루는 온갖 효와 사랑에 대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회자되고 심금을 울리는 사연들도 전해질 겁니다. 항상 그렇지만 삶은 하루하루 끊긴 스틸 사진이 아니고 어어지는 동영상입니다. 오늘만 반짝 부모님께 효도하는 제스처를 쓰라고 정해진 날은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날을 정해 놓은 것은 대나무 마디처럼 중간에 확인하는 이정표를 만들어 놓는데 의미를 갖고자 함일 겁니다. 부모 자식 간 천륜이 어찌 1년 중 하루로 만족하고 그치겠습니까?


세상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게을러서 카네이션 한 송이 못 샀다면 이 아침 전화라도 한 통화드려야 합니다. 이미 지난 주말 온 가족이 외식 다녀오시고 부모님 주머니 두둑이 용돈도 챙겨드렸을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 전화 한 통은 또 다른 의미로 부모님의 뇌리에 남게 됩니다. 무슨 무슨 '날'이라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부여되어 있고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자식된 도리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입니다. 감사하다 안아주시고 고맙다고 토닥여드릴 일입니다. 이 또한 같이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되면 눈시울 뜨거워질 겁니다. 꼬옥 안아주시고 사랑한다 속삭여드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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