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되었다 - 정년퇴직 백서 20
정년퇴직 이후, 별도의 돈벌이 없이 연금 수입만으로 살아가기 위한 대차대조표를 그려봤다. 뻔하다. 근로소득은 없고 연금 수입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니 내 돈 내가 빼먹으며 통장 잔고 줄이는 거에 불과한데, 지출은 만만치 않게 고정적으로 빠져나간다는 게 문제다.
나의 대강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보면(https://blog.naver.com/jolielee64/223647492360)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개인연금 및 퇴직연금 수입이 한 달에 대략 250만 원 정도, 이것도 세전수입이다. 여기에 직장의료보험에서 지역의료보험으로 넘어와 오롯이 매달 부담해야 하는 건강 보험료 및 아파트 관리비 등등 고정적으로 지출이 예상되는 액수가 200만 원가량이다. 지난달에는 신용카드 결제로 대략 120만 원 정도가 빠져나갔으니 마이너스 70만 원의 경제표를 받아 든 꼴이다.
어떤 지출을 줄여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다. 신용카드로 지출되는 품위유지비, 즉 용돈이다. 나중에는 자동차도 처분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그나마 나는 와이프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고정비용의 절반씩 나눠 낼 수 있는 조건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혼자 외벌이 하며 버텨온 직장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눈에 선하다. 그 힘들었을 경제적 상황 상황들이.
퇴직 이후에는 안 쓰던 가계부를 써야 한다. 정해져 있는 액수를 쪼개어 지출 할당을 하고 나머지를 가지고 써야 하기에 그렇다. 직장을 다닐 때는 어떻게든 보너스 나오는 달까지 마이너스 통장으로나마 버틸 수 있지만 퇴직 이후에는 그럴 숨구멍이 없다. 딱 정해진 액수의 범위 안에서만 돈이 작동된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져서 돈의 흐름에 구멍이 생기면 메꿀 방법이 없다. 메워질 때까지 굶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근로소득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다. 자녀들이 주는 생일 선물과 용돈이 있을 수 있으나 부정기적 보탬은 그냥 무시해야 한다. 말 그대로 선물일 뿐이다.
퇴직 이후의 돈의 흐름에 대해 대강 추적을 해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눈에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한다. 어떻게? 지출을 줄이고, 있는 범위 안에서.
사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고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없는 돈 쪼개서 저축도 하고 연금도 붓고 해 온 것이다.
그런데 다 좋은데 계획된 노후의 삶에 불청객 두 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발생한다. 두 가지 경우는 목돈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바로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경우와 자녀들의 결혼문제다.
참 이상한 것이 회사 다닐 때는 멀쩡한 듯하다가도 퇴직하면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것도 심각한 병으로 말이다. 회사 다닐 때는 늘 긴장하고 해서 몸 상한 줄 모르고 있다가 은퇴하면 스트레스가 겹쳐지거나 긴장감이 풀려 아픈 부위가 부각돼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관리를 안 하면 아플 나이도 될 만큼 몸을 오래 쓰기도 했으니 은퇴 후 갑자기 아프다는 것은 핑계일 따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면 아픈 몸도 문제지만 병원비가 차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가계비용 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온다. 건강한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현금 10억 원 이상 가지고 있는 거와 같다고 한다. 적어도 건강문제 때문에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나이 들면 건강, 건강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또 하나의 변수인 자녀 결혼문제도 기둥뿌리 하나는 뽑아야 하는 경우다. 무자식이 상팔자이긴 하겠지만 인륜은 그런 무심이 아니다. 자녀들이 지들이 알아서 결혼자금 마련하고 전셋집이라도 마련해서 준비하면 최상이겠으나 알다시피 요즘 세상은 젊은이들이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참 더러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기성세대와 기득권 세력들이 무릎 꿇고 반성해야 한다.
어떻게든 자녀들의 결혼생활을 돕기 위해 부모들이 나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세간살이와 작은 전셋집 만드는데 보탬이라도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 안내는 법정 증여 한도 내에서 지원하는 정도만 되어도 노후를 위해 준비해 놨던 3가지 연금 구조사다리에서 한 축을 빼야 한다. 자녀 결혼 때문에 본인이 계획해 놨던 노후 경제 구조를 궁핍하게 살며 견뎌야 하는 현실로 바뀌는 것이다.
정년퇴직 후의 삶을 돈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통장의 숫자를 줄여가며 사는 인생인데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줄어든 만큼 맞춰 살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살기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있는 돈 아낀다고 너무 궁핍하게 살며 지갑 여는데 전전긍긍하는 것만큼 좀스러운 것도 없다. 구질구질해지지 말아야 하는데, 냄새나는 꼰대로 전락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며 한 얘기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는 그런 늙은이는 되지 않아야 하는데 ---
그런데 꼰대소리 안들을 수 있고, 지갑도 적절히 잘 열며, 냄새나지 않는 멋있는 늙은이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