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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Feb 26. 2020

악인은 보통의 얼굴을 하고 온다

선을 넘는 사람들 (3)

선을 넘는 사람들

(3) 악인은 보통의 얼굴을 하고 온다       



             

“그래서, 우리 오빠가 또 뭘 달라던가요?”       


    

그녀가 대뜸 내게 소리쳤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으니 커다랗고 날카로운 한숨(이전의 나는 ‘날카롭다’는 수식이 붙는 한숨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뭐랄까, 빠르게 내쏘는 단숨에 가깝지만 훨씬 신경질적이고 거친 느낌의 한숨이었다)을 토하고는 다시 물었다.       


    

“돈 빌려줬어요? 얼마나요?” 

“아니, 돈을 빌려준 건 아닌데요.”     


“그럼 오빠를 왜 찾아요?”           



나는 중얼중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아마도’ 당신 오빠의 여자친구인 듯한데 그와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차에 당신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는 그저 사정을 물어볼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고……     



여자가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그러나 여전히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제가 충고 하나 해드릴게요.” 

“충고요?”     


“제가 그 문자를 왜 보냈겠어요? 오빠 여자친구라는 사람한테 받은 전화만 지금 열 통이 넘어요. 그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하게요? 오빠한테 돈을 얼마 빌려줬다, 오빠가 뭘 들고 가서 돌려주지 않는다, 금액도 삼만원에서 삼백만원까지 골고루예요. 이게 다 무슨 소리냐면, 오빠 그게 진짜 개새끼 사기꾼이란 소리예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언니는 피해자니까 쪽팔려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요. 돈, 빌려줬어요?”

“그건 아닌데.”


“그럼 그게 언니가 한 가장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빠 그 개새끼 사기꾼’과 만난 건 중도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나중에 중도는 불쌍하리만치 납작 엎드려 사과했다. 정말 그런 애인 줄 몰랐어,를 반복하며. 그래. 그랬을 것이다. 사람을 알기가 어디 쉬운가. 사과와 용서와 화해가 한바탕 어우러진 뒤 중도가 한 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그럼 역시 걔가 범인이었나?”

“뭐가?”          



중도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대학 시절 자신의 자취방에 친구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물건들이 없어지더란다. 처음엔 브랜드 속옷(아니 속옷을 왜!)과 양말, 슬리퍼로 시작해 두어 달쯤 지나자 씨디와 잔돈, 분명치는 않지만 옷 몇 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처음엔 좀도둑인가 했어. 원룸촌 보안이 허술해서 좀도둑이 많았거든.”           



어느 날은 노트북이 사라졌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잡기 어려울 거란 답변만 들었다. 그런데 그 날부터 ‘그 놈’이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넌 그런 애를 나한테 소개시켜줬다는 거야?”

“아니, 그땐 긴가민가했고. 뭣보다 걔가 도둑놈마스크는 아니잖아.” 

“여자친구가 열 명이나 될 마스크도 아니지.”           



나와 중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그는 솔직히 말해 잘생겼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키가 컸고 유도선수 느낌이 나는 어깨와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 큰 키에 비해 옷태가 멋지진 않았는데 그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두꺼운 다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인상만 따지자면 단번에 시선을 끌 만한 외양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얼굴이었고 미적 기준에 따라 평균보다 좀 못한 얼굴이라고 말하면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여친이 열 명이었다고?”

“응. 그 중 한 명은 아마도 나일 거고. 돈을 엄청 뜯어갔다나 봐. 여동생이 아주 학을 떼더라고. 지 오빠가 사기꾼 개새끼래.”           



나 걔 동생이랑도 안면 있는데. 중도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보통 사기꾼이나 바람둥이나 그런 사람들은 엄청 잘나고 세련된 이미지 아니야? 걔는 오히려 반대잖아. 어디가 그렇게 매력이 넘쳐서 여자들이 돈을 줬지?” 

“그냥 방심한 거 아닐까?”

“넌 진짜 돈 뜯긴 거 없어? 있으면 내가 물어줄게, 말해봐.”     

“글쎄. 굳이 따지자면…… 3900원?”           



굳이 따지자면 그가 내게서 뜯어간 돈은 3900원. 햄버거 1개, 콜라 1개 값이 전부였다. 그건 다행이었을까. 나는 3900원어치만큼 기가 막힌 기분이 되었다.                



             





그는 내게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중도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 그는 어딘가 좀 불편한 얼굴로 앉아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신경이 쓰여 그를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외양과 상관없이 그는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 이상형이었고, 대화가 잘 통하는 유머 있는 사람이 좋다고 주변에 늘 말해왔었다. 그러나 마주 앉은 그는 다정은커녕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앞에 놓인 것을 먹거나 마시는 데에만 몰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애초에 내가 소개를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여친이 생긴 중도가 갑자기 오지랖을 부리며 주변인들의 커플 맺기에 열을 올렸는데, 그 이벤트에 불려나온 게 그와 나인 듯했다. 그냥 밥이나 먹고 헤어지지 뭐. 무시당한 기분에 나 역시 입을 꼭 다물고 앉았다.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도, 인연이 끊길 참이었다.          



“더치페이로 하죠.”           



나는 현금 이만 원을 빌지에 끼워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동안 나는 립스틱을 새로 바르고 이마에 번진 기름기를 찍어냈다. 가게 밖으로 나가자 그가 서 있었다.           



“연락, 하고 싶어요.”           


그가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저한테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요?”           


의외의 상황에 놀란 내가 묻자 그가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였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리는 게 꼭 수줍음 타는 고릴라 같아 웃음이 났다. 어릴 때 푹 빠져 있던 슬램덩크의 채치수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성적인 성격인가. 나는 대충 그런 생각을 했고.     



“연락, 하고 지내죠, 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에게 대답한 뒤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뭐지? 저 생물은 정체가 뭐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은 이후에도 여전했다. 그는 꼬박꼬박 연락을 해왔다. 이상할 정도로 겸손한 문자였고, 때로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나를 칭찬했다. 무뚝뚝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그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미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는데, 아마 자존심이 회복되는 기분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와는 두 번 더 만나 떡볶이와 피자를 먹었다.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바닥에 떨어진 포크를 주우면서도 그는 나를 보았다. 이글이글 뚫어져라는 아니고, 인중언저리에 시선을 두다 오 분에 한 번쯤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다시 시선을 내리는 식이었다.      



뭐지. 대체 뭐지. 나는 좀 안절부절한 기분으로 그와 마주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내심 뿌듯했다. 세 번째 만남은 좀 기묘했는데, 그 만남이 내가 그를 열심히 찾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온도씨. 나는 서울역이에요.”      


불현 듯 전화를 건 그가 내게 와줄 수 있냐, 고 물었다.      


“여기 혼자 있어요. 온도씨가 와주면 좋겠어요.”      



별다른 설명이 없었는데도 나는 서울역으로 갔다. 그는 서울역 광장에, 정말로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해가 진즉 기울어 쌀쌀해진 탓에 나는 겉옷을 여미며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해요?      



“배가 고픈데. 뭘 좀 먹어도 될까요.”          



그가 질문이라기보단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 눈에 띄는 패스트푸드점으로 그와 함께 들어갔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서울역에, 왜 갑자기 나를 불러서, 왜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그러다 돌아보니 그가 입구 옆에 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문 안 해요? 배고프다면서요.”

“돈이 없어요.”          



건조하고 무감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뭐지? 대체 뭐지? 속으로 자문하면서도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거슬러 받은 오천원이 손에 잡혔다. 그가 오천원으로 햄버거 하나, 콜라 하나를 사 와 내 앞에 앉았다. 거스름돈 천 백원을 내 쪽으로 밀어놓고, 그는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어떤 설명도 없이, 손과 입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로.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도통 알 수가 없어서였다. 뭔가 이상했지만 꼭 집어 뭐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가 평소와 다르단 생각이 들면서도 애초에 그의 평소를 내가 어떻게 알지 싶었다. 햄버거를 다 먹고, 얼음을 덜그럭거리며 콜라를 다 마신 그가 앞 뒤 없이 말했다.         


  

“기차를 타려고요.”



빈 껍데기가 담긴 쟁반을 들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어정쩡하게 일어나 그를 따라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나와 마주 서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딘가 간다는 소린가? 어딘가로 오래 가 있어야 해서 보자고 한 건가? 아니면 나더러 같이 기차를 타달라는 건가? 아니, 밥 먹을 돈도 없었으니 나한테 기차삯을 빌리려는 건가? 그래서 다음 말이 뭔데?      



갑자기 그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길고 긴 계단을 올라 서울역으로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쳐다보았다.           





서울역에서의 이상한 만남 이후로 그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의 핸드폰은 줄곧 꺼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문자를 서너 번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의 번호로 문자가 왔으나 그가 보낸 건 아니었다. 그의 동생이라고 신원을 밝힌 사람의 문자는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피해사실이 있다면 저에게 먼저 연락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배상하겠습니다]           



피해? 책임? 배상? 나는 발신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한숨을 뱉는 그녀와의 통화가 성사된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지만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삼만원에서 삼백만원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그의 아홉 명의 여자친구들과 달리, 나는 3900원, 고작 3900원을 손해 봤을 뿐이니까.                







            

일의 전말을 알게 된 건 중도를 통해서였다. 중도는 퇴근하자마자 다급히 나를 찾아왔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 내 양팔을 꽉 잡더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냐고, 아무 피해도 없었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진짜라니까, 나 돈 안 빌려줬어.”           



그가 털썩 무릎을 꿇는 바람에 나는 기겁을 하고 물러섰다. 하도 서두르는 바람에 우리는 지하철역 앞 광장에서 만난 참이었다. 퇴근 시간대라 오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왜 그래? 왜 그러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뜨거워 중도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땅에 머리라도 박을 것처럼 거듭 거듭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다행이다. 그래도 진짜 미안해.”           



형편없는 어휘력으로 중도는 미안해, 다행이다, 잘못했다, 이렇게 세 마디만 반복했다. 나는 그를 질질 끌고 가 광장 구석 벤치에 앉혔다. 중도가 흐르는 땀인지 뭔지 모를 것들을 손등으로 연신 훔쳐냈다. 그가 숨을 돌릴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라도 뽑아올까? 내가 몸을 일으키자 그가 내 팔을 꽉 잡았다.     


      

“그 새끼, 강간으로 잡혀 들어갔대.”           



나는 벤치에 도로 앉았다. 뒤늦게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중도는 여전히 내 팔을 붙잡은 채로 바닥을 향해 머리를 처박듯이 숙였다. 그의 여동생과 친구들을 통해 알아낸 얘기들이 두서없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그는 여러 명의 여성을 동시에 만났고, 그녀들에게 평균 이삼백 만원의 현금을 빌렸으며, 한 명의 집에 무단침입해 물건을 훔쳤고, 한 명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강간한 뒤, 그대로 도망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의 여동생이 변호사 조언에 따라 피해여성들과의 합의를 시도하던 중에 나와 통화했다는 게 중도의 설명이었다.           



“도망쳤다가 잡혔다고?”

“미친놈이 KTX타고 부산까지 도망갔던 모양이야.”          



서울역에서 만났던 그가 떠올라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너한테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다.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중도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진짜, 걔가 그런 놈일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 그렇게 생겨먹은 얼굴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냐 진짜.           



아니지, 나한테 아직 닥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피해자가 있잖아? 너무나 명백한 피해자들이 그것도 여러 명. 게다가 이건 생김새의 문제가 아니야. 강도, 강간범처럼 생긴 사람은 우리 머릿속에만 있어. 우리 머릿속에서만 바람둥이는 매끈한 얼굴로, 강도는 우락부락한 얼굴로, 강간범은 비열하고 치졸한 얼굴로 존재하는 거야. 진짜는. 진짜는 우리 바로 옆에서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하고 태연히, 태연히 거닐고 있어.          



나는 그런 생각들을 입 밖으로 하나도 내지 못했다. 그의 평범한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 얼굴이 광장에서 내 앞을 스쳐가는 수많은 얼굴들과 너무 닮아있어서 나는 소리치지도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남는 건 까마득한 두려움, 두려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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