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인식과 휴머니즘
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쓴 돈은 수백조 원이다. 전담기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는데, 예산권과 집행권 같은 권한을 가진 더 강력한 기구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한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최근 집계된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4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치다. 지방소멸을 넘어 국가소멸까지 거론되는 상황인데, 백약이 무효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살률도 OECD 1위다. 20년째 부동의 1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그것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고령층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출산율을 늘려야 한다. 어떻게든 출산율을 늘려야 하니 전담기구를 만들고 예산을 투입하자? 정책은 당위로 펼치는 게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현실이 바뀌었고 생각은 달라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출산율을 올리겠다는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정책들을 밀어붙이며 수백조 원을 투자한 결과는 초라하다 못해 허무하다. 그럼 어떻게? 답은 언제나 문제와 함께 있다.
첫째, 정책과 예산을 결혼을 원하고 출산을 원하는 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은근히 결혼을 권하고, 출산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은근히 출산을 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월권이다. 그들을 타깃으로 공영방송에 다큐와 예능을 편성하고 공익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낭비이고,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편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개인주의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 말이 안 된다. 미혼자들 내지는 딩크족들에게 결혼과 출산의 장점을 어필해서 한 명을 낳게 하는 것보다는 이미 한 명 내지는 두 명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해서 한 명을 더 낳도록 하는 것이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고 의미도 더 크다. 게다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생명을 두고 수치를 논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정부 정책과 예산의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이미 태어난 이들을 지키는 일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영유아로, 청소년으로, 그리고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한 명의 사회인으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 그리고 투자가 이루어지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런 소중한 한 명 한 명을 너무도 허망하게,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있다. 스스로 생을 마치는 것도 막아야 하고, 이런저런 사고와 재해로 잃는 것도 막아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지켜야 한다. 거부한다고 거부되고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은 이미 아니기 때문에, 다민족국가로의 전환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휴머니즘이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도와주었던 손길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을 나의 이웃으로, 나의 동료로 인정하고 도와야 한다. 그 위에 현실적인 정책으로 튼튼한 제도적 기반을 놓아야 한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민 전부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이나 손실쯤은 감내하거나 무시한다는 식의 어불성설을 용납하지 않겠다.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여기겠다. 그리고 현실적인 정책을 펼치겠다. 아이를 하나 더 낳을까 고민하는 이들을 놔두고 결혼이나 출산은 생각지도 않는 이들을 붙잡거나,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이들이 어디 한 군데 붙잡을 곳이 없어 끝까지 내몰리기까지 방치하거나, 어떻게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보겠다는 이들을 등 돌리게 하거나 내쫓는 일은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