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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대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국토의 개발과 운영

by THE RISING SUN

세종시는 대한민국 유일의 특별자치시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2년 6월 30일 충청남도 연기군을 폐지하고 2012년 7월 1일 출범했다. 미국의 워싱턴, 캐나다의 오타와, 호주의 캔버라와 같은 행정수도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지난한 논쟁이 있었지만, 현재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규정되고 있고, 중장기적으로 대통령실, 국회를 이전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세종시 건설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수십조 원이 투입됐다.


무엇보다 신도시라서, 모든 게 새 거라서 좋은 점들이 꽤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공적 지위로 인해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공적 자금의 투입이 인색하지 않고 씀씀이가 큰 편이다. 이를테면 1천억 원 이상 들여서 만든 금강원형다리 같은 거 말이다. 공무원들의 도시로 영유아 보육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초중고 교육시스템도 나쁘지 않다.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어 여기저기 다니기 편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대도시답지 않은 어떤 여유 같은 것도 있다. 지금의 세종시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그런데, 수십조 원이 투입된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의 관점, 이제는 경제강국, 산업강국, 문화강국이 된 대한민국이 과거의 개발, 효율성 일변도의 국토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멋진 도시를 하나 가질 수도 있었다는 관점, 이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보고 느끼는 우리 국민들이 '왜 우리나라엔 이런 도시가 없지?' 하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꽝이다. 그리고 조금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상, 이념, 명분 같은 허울을 뒤집어쓴 나쁜 정치와 행정이 어떻게 탁상공론과 내로남불로 정책 장난, 세금 장난을 쳐서 국민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첫째, 세종시에는 개발도상국 시대의 도시 개발 방식을 적용됐다. 자연상태의 지형지물을 싹 다 밀어버리고 허허벌판을 만든 뒤에, 그 위에 길을 내고 건물을 올리고, 호수를 파고 나무를 심었다. 도시의 건설과 운영에 있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인데, 오히려 비효율성이 극대화됐다(뒤에서 설명하겠다.). 도시는 시각적으로 소비되고 향유된다. 산과 들, 강과 호수, 건축물, 도로와 다리 등이다. 고정된 자연과 움직이는 자연, 고정된 인공물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인공물이다. 자연은 오직 자연 그대로일 때만 가지는 유니크함이 있는데, 세종시는 그걸 다 밀어버리고 어디에나 있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배치했다. 밑그림이 그저 그렇다 보니 인공물의 배치도 특별할 수 없었다. 리 시대의 신도시는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이다. 행정은 시대 상황에 부합해야 한다.


둘째, 세종시는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론 위에 건설됐다. ‘차 없는 도시, 친환경 도시’를 만들겠다고 도로 폭을 줄이고 여기저기 수십억을 쏟아부어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출퇴근시간엔 1시간씩 차가 밀리는데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가 없다. 텅 빈 간선버스가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주차공간이 부족해 늘 주차전쟁 중인 교통 비효율의 도시가 됐지만, 도로 옆에 인도, 인도 옆에 건물들이 들어서서, 이제 와 도로 폭을 늘릴 수도 없다. 누군가의 빛 좋은 이상이 모두의 현실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는데,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그런데 이걸 또 하고 있는 도시들이 몇 있다.). 행정은 생활인들의 일상이다.


셋째, 세종시는 지역이기주의와 그에 편승한 나쁜 정치 위에 건설됐다. 세종시와 오송역의 거리는 약 20킬로미터, BRT라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왕복 1시간,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1시간 30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비용은 왕복 4천여 원이 소요된다. 최근 집계된 KTX 오송역 연간 이용객은 1천2백만 명이다. 오송읍 인구가 2만 4천여 명임을 감안하면 이용객의 대다수는 공무원 등 세종시 시민 또는 방문객이다. 하루 평균 2만 5천여 명이 왕복 40킬로미터를, 2시간 가까이를 소비해 가며, 4천여 원을 들여 오고간다. 당초 직선으로 세종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도록 건설될 예정이었던 경부고속선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충북 정치권의 지역이기주의와 그에 무릎 꿇은 중앙정치로 인해 곡선으로 휘면서 오송역을 지나게 됐다. 2만 5천여 명의 다른 곳에 쓰일 수 있는 1억 원, 5만 시간이 매일 길에 버려지고 있다. 나쁜 정치는 행정을 망친다.


넷째, 세종시는 생활이 아닌 이념을 구현했다. 세종시의 도시 설계는 현대 지리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연구를 펼치는 지리학자 중 한 명이자 마르크스주의에 정통한 사회주의적 지리학자로 유명한, 세계적인 진보 도시학자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가 총괄했다. 그는 랜드마크나 스펙터클한 시설이 아닌 일상 속 서사가 만들어내는 다원적 민주주의에 걸맞은 도시, 미학적 논리보다는 사회적 문제나 윤리적 측면이 중시되는 도시를 주창하며 세종시에 탈중심적 환형도시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교통은 불편하고, 소비 집적도가 떨어져 상가 공실률이 전국 최고인 이도저도 아닌 도시가 되어버렸다(도시 구상 초기단계에서의 이런 이념의 난입이 도시 설계 단계에서 '차 없는 도시', '수평적 소통의 원형청사' 같은 것들을 불러들인 것 같다.). 난해한 예술품이 도시의 명물이 되기도 하지만 난해한 도시는 쓸 데가 없다. 행정은 학자의 실험실도, 갬블러의 도박장도 아니다.


다섯째, 세종시는 탁상공론과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의 상징물은 누가 뭐래도 1조 8천여 억 원을 투입한 정부세종청사다. 원형으로 연결된 청사의 옥상에 설치된 정원이 3.5킬로미터에 달해 세계 최장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당초 시민과 관광객에게 개방하겠다며 매년 엄청난 비용을 들여 관리하던 옥상정원은 청사보안 문제로 폐쇄되어 공무원들의 산책로, 흡연장으로 이용되다가 최근에야 여론에 밀려 일반에 개방되었다. 원형으로 된 청사의 비효율은 매년 막대한 운영비용으로 유명한데, 그나마 수평적이고 탈중심적인 기관 간 소통을 구현했다는 구차한 명분으로 근근이 버티던 차에, 말도 안 되는 내로남불로 탁상공론의 정점을 찍고 한 편의 코미디로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 2022년 원형 청사의 가운데 빈 공간, 역시 소통의 철학을 담아 비워두었던 공원에, 최고 8층인 기존 청사의 2배 높이인 14층의 중앙동이 우뚝 섰다. 2019년 중앙동 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은, 설계안이 정부세종청사의 기본 철학, 기존 청사와의 조화를 무시하고, 관련 지침에도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사퇴하였다. 그리고 중앙동에는 민간 임대청사를 사용하다 입주키로 했던 기관들이 배제되고, 평소 원리원칙을 강조하던, 소위 힘 있는 두 기관, 정부 예산업무룰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조직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입주했다. 지금 14층의 중앙동은 수평적 소통을 하며 낮게 엎드려 있는 8층의 원형청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파놉티콘처럼. 행정은 감시되고 통제돼야 한다.


여섯째, 세종시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볼 만한 곳들은 꽤 있는데,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없다. 국립세종수목원 유리온실이 국내 최대 규모로 볼 게 많다는 기사를 접하고, 먼저 인터넷에서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 유리온실을 찾아봤다. 그리고 세종시 유리온실을 찾아갔다. 10분 만에 나왔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은 1822년 개장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2020년 개장한 국립세종수목원 유리온실인데,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이 만든 거제 외도 보타니아만큼의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세종시민들과 다른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은 어느 정도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러나 투입된 세금, 국민적 기대, 최대 국책사업으로서의 상징성 등을 감안하면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뭐가 됐든 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건 세종시에 있는 걸 봐야 해.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걸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행정도 경제, 문화, 예술이다.


세종시가 아직 완성된 건 아니다. 앞으로 5개의 박물관이 들어설 것이다. 자연사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 미국역사박물관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을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그저 구색만 갖춘 박물관 5개는 예산낭비이고 애써 멀리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겐 자산낭비다. 대통령 세종집무실, 국회 세종분원과 같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대형 공공건축물들도 예정되어 있다. 건축물 하나가 세계적 예술품이 되고 관광상품이 되는 일이 왜 우리에겐 일어나지 않는 걸까.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 대통령인 나는, 대한민국에 다시 오기 힘든 광역시급 신도시 건설을 계획하며 심사숙고에 빠졌다. 기왕에 국민 세금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도시의 틀을 전혀 새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다. 그리고 한번 정해진 도시의 틀은 바꿀 수 없다. 두고두고 국민의 자랑거리인 도시, 국토 운영의 모델이 되는 도시, 세계가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세종시의 정체성을 행정 등 공공기능이 망라된 대한민국의 행정수도, 대한민국 고유의 자연, 문화와 예술의 총아가 집적된 관광수도로 규정했다(전통적 문화, 예술이 집적된 서울과 차별화해 현대적 문화, 예술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은 물론이고 국토의 중심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도록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만들 것이다. 행정수도는 정치적으로 합의만 이뤄지면 어려울 게 없지만 문제는 관광수도다. 다른 도시에 비해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다른 도시와 비슷해 피해를 주거나 중복투자가 돼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남의 나라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젊은이들을 참전시켜, 목숨들을 대가로 얻어온 빚으로 길을 놓고 집을 짓는 일이 아니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인구팽창으로 급하게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를 올리는 속도전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재정도 충분하고, 첨단기술을 가졌으며, 세계가 우리 문화와 예술을 부러워하고 있다. 경제강국, 산업강국, 문화강국으로서 우리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유토피아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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